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치매 환자가 가정을 떠나 요양병원에 오게 되는 계기는 대개 크게 두 가지이다.
폭력적이거나 또는 용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억력이 떨어져서 오는 문제는 어찌 보면 가정에서 돌보지 못하게 되는 사유 중에는 하위 목록에 해당한다고 본다.
우리 병원에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오시는 분들이 왕왕 있다. 이 분들의 삶이 워낙 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얼마 전에 임종하신 김 할아버지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김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건장하였다. 80이 넘은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 하였다.
몇 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이후 치매 증상으로 딸이 모시면서 인근 정신과에서 치매 치료를 받았는데, 갈수록 폭력 성향이 심해져서 가족이 감당이 안되어 우리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폭력 성향의 치매 환자는 약으로 이상 행동을 조절해야 하는데, 약을 거부하고 의료진에게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
더군다나 주변 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날에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 늘 긴장의 연속이다. 적정량의 약 종류와 용량을 확인하기 전까지 약을 높게 쓸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환자가 심하게 처지거나 때로는 컨디션 저하로 감염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제일 부담이 가는 환자군이다. 솔직히 안 보고 싶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폭력을 동반한 치매 환자는 입원 가능한 의료기관이 별로 없다.
정신과병원에서는 간병을 해야 하는 환자는 보기가 어렵고, 요양병원 상당수는 향정 약물 사용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과량 투여가 필요한 경우는 안 받으려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향정 약물 사용에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한 언론의 탓도 있다고 본다. 안정제가 꼭 필요한 사람이 있고, 적절한 약물 농도는 실제로 투여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용량의 약이 어떤 날은 과량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부족하게 되기도 한다.
컨디션에 따라 투약 용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환자 상태를 봐가면서 계속 조절해야 한다. 야간 증상이 심하면 주사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다음날에는 처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요양병원에서 안정제를 과다투여 해서 환자가 처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뉴스가 몇 차례 있었고, 이후 안정제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치매 환자가 입원하면 설명이 길어진다. 안정제 사용에 대해서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면 환자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의 가족은 이미 너무 지친 심정으로 우리 병원에 온 상황이어서 그런지 약제 사용에 별다른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주사제로 재운 후 콧줄을 사용하여 약제와 식사 투여를 시작하였는데 다행히 별 탈없이 약제 조절에 성공하였다. 투약과 식사에 큰 문제가 없으면 콧줄 제거도 고려할 수 있는데, 중간중간 약제를 거부하고 행동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콧줄을 유지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건장하던 체격은 점차 왜소해 져가고,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 출입을 못하여 기저귀에 용변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내던 어느날 소변에서 피가 섞여나오기 시작하였다. 신장 또는 비뇨기계 암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딸에게 암이 의심되니 정밀검사를 받아보시도록 하였더니 알겠다고만 하고 그 다음 한참 동안 연락이 없었다.
회진 중에 우연히 면회 중인 가족을 만나서 혈뇨 얘기를 꺼내니, 아버지는 치매가 심했고 이제 겨우 안정된 상태지만 이전처럼 걷지도 못하고 누워만 지내시는 분에게서 암을 찾아낸다 한들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이겨내시지도 못할 것 같으니 그냥 지금처럼 봐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80이 넘은 나이, 와상, 심한 치매.... 적극적인 치료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힘든 결정을 한 후 딸은 필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치매 때문에 폭력적이 된 모습에 힘들었는데, 얼마 전 명절에 만났던 주변 친지들이 ’요양병원에 왜 보냈냐, 콧줄 하고 사람 모습이 말이 아니던데 저러다 돌아가시면 어쩌려고 그러냐‘ 해서 더 결정이 늦어졌다고 했다. 어디까지 치료하는게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버지가 설사 암이라 해도 낫는다는 보장도 없고, 더 힘들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누가 이 가족에게 큰 병인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이후 김 할아버지의 혈뇨는 빈도가 더 심해지고 갈수록 야위어 가다 1년 반이 지나 갑자기 돌아가셨다. 환자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딸에게 연락하였고, 딸이 보는 앞에서 김 할아버지의 심장이 멎었다. 할아버지 얼굴에 딸의 눈물이 떨어지고, 아빠 미안해, 암인지도 모른 채 죽게 해서 너무 미안해하면서 오열하는 딸을 뒤로하고 조용히 임종실 문을 닫았다.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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