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장기요양보험은 몸이 불편한 노인 환자가 자택에서 방문 요양 또는 방문 간호를 받거나 요양원과 같은 시설에 입소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이다. 장기요양등급을 받게 되면 각 등급에 따라 요양보호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몸이 편치 못한 분들과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신청 과정에서 의사소견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문제는 많은 분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안좋다는 것이다. 예전 재가센터와 간담회때 그런 분들을 위한 왕진 요청 얘기가 있어 거동이 힘든 와상인 분들의 경우는 우리 병원에서 직접 방문해서 의사소견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집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어렵고,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어서 방문할 때마다 측은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 다녀온 곳은 아주 오래된 아파트였다. 1년 전에 같은 단지의 다른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댁은 내부 수리가 잘 되어 있어서 겉보기와는 다르게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재건축으로 이주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아파트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파트단지가 이전보다 더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두 개 층이 하나의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이 아파트는 외출을 하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반 층 계단을 걸어가야 한다. 계단 보행이 어려운 분들이 살기에는 매우 불편해 보이는 구조라서 혹시나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면서 의뢰인의 집을 방문하였다. 노부부 두 분이 사는 집이었는데, 할머니 상태가 더 안 좋은 상황이었다. 보행 자체가 불가능해서 용변을 보기 위해서 화장실로 기어가거나 방에 있는 간이변기를 사용하여야 했고, 이 과정조차 몸을 가누기 힘들어 늘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었다.
인근에 사는 아들이 계속 돌봐주는데, 본인도 생업이 있는지라 힘에 부쳐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였다 했다. 집안을 둘러보니 밝은 햇살 아래 한눈에 봐도 낡아보이는 살림살이가 더 눈에 띄어 참 오래 이 집에서 사셨겠구나 싶었다. 서류 작성을 위한 간단한 진찰 및 관절 움직임 파악에도 여기저기가 아파서 아야야 하는 소리를 입에 계속 달고 계신 모습을 보면서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 작성을 마치고 보니 벽에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안경 모양을 보아하니 수십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진 속 할머니는 꼬마 손주들과 30대로 보이는 자녀들과 함께 미소짓는 모습으로 있었다. 내 앞에 계신 이 분이 저 때는 한참 활동적으로 즐겁게 세상을 살았을 거라 생각하니 타임머신을 탄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문득 이 아파트가 재건축 때문에 이주중인 것이 생각나 자녀분께 이사하려면 그것도 큰일이겠네요 하고 말을 건넸다.
"오래 살았던 집이고 이 분들은 여기서 평생 계셨던 분들이가라 이사하는 것보다는 그냥 여기서 쭉 사셨으면 좋겠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아마도 아드님 역시 이 곳에서의 추억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인사를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저 낡고 초라해 보이는 아파트 벽면과 대비되게 아파트만큼이나 키가 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잘 자란 나무는 이제 뽑혀나갈 운명이겠지.
오늘 내가 서류를 써 드린 할머니는 앞으로 얼마나 사실 수 있을까...
사람의 인생이 곧 재건축이 진행될 아파트에 대비되면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낡아가는 집을 새로 짓지 않을 수도 없고, 쇠락해가는 몸을 어찌 할수도 없고... 왠지 모를 인생의 허무함과 나이들어가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휘몰아쳐 내 발에 밟히는 낙엽과 귀퉁이가 부서진 낡은 보드블럭마저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모쪼록 두 노부부가 잘 지내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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