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원장님, 저 수혈 하는거 원치 않습니다.

수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로 보호자께서 말씀하셨다. 환자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로 치매가 심하고 누워서 눈만 깜빡이는 것이 전부인 어떠한 의사소통도 안되는 분이다. 자식들도 못 알아보는 상황에서 수 년째 조금씩 컨디션이 나빠져 가고 있었다. 

이 환자는 우리 병원에 오기 전부터 계속 빈혈 문제를 갖고 계셨다. 그런데 최근 빈혈 수치가 급격히 나빠지는 양상이었다. 수혈을 해도 잠시 뿐, 다시 일반 성인의 절반 수준의 수치를 보였다.

두세 달에 한번꼴로 수혈을 하였는데,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수혈을 위해 통화하던 중 보호자께서 힘겹게 속내를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수혈 안하면 제가 불효인 것 같아서 차마 수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 못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형제들하고 얘기해보니, 이렇게 계속 수혈 하는 것이 어머니를 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원장님께서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뜻은 그렇습니다. 이번까지만 하고 더 이상은 안 하렵니다.

아차 싶었다. 환자의 나이가 몇이든, 평소 상태가 어떠하든 필자는 의사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의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수 년째 호전될 가능성도 없는 상태에서 연명치료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보호자의 의사에 반하여 무조건 의학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비윤리적(?)일지라도 보호자의 뜻에 따라줘야 하는 것일까? 

이런 일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필자가 일하는 요양병원에서는 흔하게 겪는 딜레마이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모르겠다. 요양병원 경력 10년차인 필자에게도 매 번 그때그때 생각이 달라진다. 환자의 상황이 다르고, 보호자의 성향이 다른데, 무슨 수학 문제마냥 정답이 딱 떨어지게 답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럴 때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저 보호자라면, 지금 이 환자가 내 부모님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실 수혈을 지속하는 것은 여러 위험이 따른다. 자주 반복되면 여러 종류의 항원에 노출되어 어느 순간 수혈 부적합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한편으로는 수혈 자체로 인한 부작용으로 환자가 잘못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빈혈이 지속되었을 때 생기는 문제보다는 낫다고 판단하여 수혈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없고, 법적 대리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수혈을 강제할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결정을 내린 보호자를 의학적인 잣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그 뜻을 전달하기까지 몇 번을 망설였을 마음을 보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가능한 한 가족들의 판단을 존중하고, 그렇게 해 주려고 한다. 그 마음까지도 치료하는 것이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힘든 결정이었을텐데, 말하기 어려운 속마음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혈은 이번까지만 하고, 다음번에는 시행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저희가 잘 돌봐드릴거고, 혹시 다른 상의드릴 일 있으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 어머니는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실텐데, 빈혈은 조금 더 심해졌지만 철분주사와 비타민 주사를 대신 사용하고 있고, 이전보다는 기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잘 계신다. 하지만 불꽃이 사그라지는 것처럼 조금씩 더 나빠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번 봄은 넘기시려나, 여름은 맞이하시려나 늘 걱정이다. 얼마 전 가족 면회 후에 잠자는 듯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보호자분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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