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2월이 되면 정든 친구들을 뒤로 하고 새 친구를 만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어영부영 보내다 새 학기를 맞이하였다. 

새 선생님은 늘 가정환경 조사서 같은 서류를 제출하라 하셨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자가인지 전세인지부터 해서 소득수준 같은 것은 그냥 중간으로 체크하면 그만이었지만 취미와 특기 란은 늘 비워두고 마지막에 채워넣었다.

학교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게 지내는 것이 편안했던 필자는 남에게 내세울만한 특기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운동은 남이 보는 것을 부끄러워할 수준이었다. 어린 마음에 거짓말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빈 칸으로 냈는데, 머리가 굵어지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슬쩍 물어보니 ‘없음’ 이라고 적는 요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취미는 달랐다. 친구들 다 다양하게 무언가를 적어 냈고, 꾸밀 수도 없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는데, 빈 칸으로 내자니 무언가 크게 부족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막판까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독서.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많았나보다. 나중에서야 ‘취미: 독서, 특기: 없음’ 으로 살아온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취미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는데, 필자의 취미는 원예였다."

이걸 마흔이 넘은 나이에 깨닿게 되었다는게 한편으로는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어려서 손바닥만한 마당에서 딸기 모종도 심어보고 길가에 핀 봉숭아꽃 씨를 받아 심어보기도 했다. 옥수수 낱알도 심어봤고, 수업시간에 받아온 강낭콩도 키워봤다. 결과는 다 신통치 않았지만 싹이 나서 자라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즐거웠던 것 같다.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는 화분이 많다. 다육이도 있고, 팔손이나무도 있고, 수국도 있다. 화려하고 잘 가꾸어진 것들은 아니지만 우연히 얻게 된 작은 식물을 꽃이 졌다고 버리기에는 마음이 불편해서 계속 키웠더니 이제는 처치 곤란할 정도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참 와 닿는다. 그래서 시들어서, 볼품 없어져서 가치(?)가 떨어져도 그냥 계속 키우게 된다. 강아지가 커서 더 이상 귀엽지 않다고, 집안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나이들어 뒤치다꺼리가 힘들다고 해서 유기하는 것이 죄악인 것처럼 식물도 그렇게 막 함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화려한 멋은 없지만 화분 하나 하나 우리 집에 들어올 때 사연이 있고, 잘 돌봐주다 보니 싹 틔우고 커가는 것을 보는 기쁨이 있다. 탐스런 꽃을 보면 어찌나 이쁘고 기분이 좋은지 꽃이 질 때까지 내내 행복하고, 꽃이 지고 나면 그 식물이 대견스럽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봄이 되면 분갈이 해주고, 비료도 주고 추운 겨울 베란다에서 고생했으니 올 한 해도 잘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것저것 돌봐주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 시들거나 병들면 내가 무언가를 잘 못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지 인터넷을 뒤져보고, 비슷한 증상을 찾아서 공부하다 보면 조금씩 더 식물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같아 배움의 기쁨도 얻게 된다. 여담이지만, 물주기만 잘 해도 반은 성공인데, 아침 저녁으로 식물을 보다가 약간 시든 느낌이 있을 때 물을 흠뻑 주면 된다. 아니면 손가락 한 마디 흙을 찔러봐서 말라있을 때 주면 된다. 햇빛은 식물마다 달라서 이름으로 검색해서 알아봐야 한다. 해를 많이 보는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 식물을 잘 키우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비단 식물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는 관심을 가져 주면 더 잘 큰다. 아이도 그렇고, 부부도 그렇고,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도 그렇다. 관심을 가지면 작은 변화를 바로 알아챌 수 있다. 좋은 일이면 같이 즐거움을 나누고, 안좋은 일이면 지혜를 모아 함께 헤쳐나가면 된다. 

바라보면 기분 좋은 대상, 가꿔가며 더 행복한 것은 비단 식물 뿐 아니라 세상 만물에 적용된다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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