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그리스 신화에는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가 있다.

이 신은 앞머리는 길지만,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기회 역시 나타났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으나 지나가고 나면 다시 붙잡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간경화 환자는 손이 많이 간다. 복수 관리도 해줘야 하고, 부종도 신경을 써줘야 한다. 간질환에 동반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환자도 힘이 들고, 의료진도 힘이 많이 든다. 의식이 명료하기에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심하고, 현실적으로 회복 가능성도 간이식 이외는 없어서 암 만큼이나 나쁜 병이라고 생각한다. 

A 환자는 간경화 환자로 복수가 심해져서 왔다. 수차례 자발성 세균성 복막염으로 인근 대학병원에서 항생제 치료를 받았으며, 복수를 빼기 위해서 응급실 출입이 잦았던 환자이다. 

최근 복막염이 더 자주 발생하여 항생제 치료를 받다가 우리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입원하는 날 환자와 보호자로 온 남매에게 왜 복막염이 생기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드렸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놀라웠다.

여태껏 왜 우리 어머니가 복막염이 생기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건지 한 번도 못 들어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번 복막염이 올 때마다 항생제 치료해서 집으로 갔으니 그냥 저렇게 복수 관리하면서 괜찮을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복수가 발생하여 복수천자를 할 정도면 5년 생존율은 30%로 낮아진다. 그 와중에 다른 합병증이 발생하면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암 만큼이나 무서운 질환인데, 벌써 수차례 고비를 넘겼음에도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A 환자는 기운이 없는 모습이었고, 식사량도 적었다. 늘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낙이라고는 자녀들이 찾아와 면회하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지내다가 다시 복막염이 발생하여 주사항생제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A 환자와 면회 중인 남매를 만났다. 

다행히 항생제 반응이 좋아서 조만간 항생제 치료를 종료할 예정이었음을 설명하였고, 가족들은 항생제 치료가 끝나면 날씨도 좋으니 하루 외출하고 싶다고 하였다. A 환자는 그냥 오늘 날씨 좋고 컨디션도 괜찮으니 오늘 외출하고 싶다고 했고, 자녀들은 오늘은 미처 준비를 못 하였으니 이번 주말에 다시 오겠다 했다. 
 

“주말까지 어떻게 기다리니...” 하면서 못내 서운해 하였지만, 면회는 그렇게 마무리짓고 헤어졌다.

그 주 금요일 오전부터 환자가 의식이 처지기 시작하였다. 관장을 하고, 필요한 처치를 하였지만 의식은 더 나빠져갔다. 항생제 치료 중에도 황달 수치가 내심 걱정이었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 전화로 상태를 알렸고, 상급 병원 진료 여부를 문의하였으나 더 이상의 대학병원 치료는 엄마가 너무 힘들어해서 안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내일 엄마랑 소풍가기로 하고 준비했는데, 그걸 못하게 되어 너무 아쉽다는 말을 하였다. 필자도 며칠 전 면회에서 소풍간다고 했던 일이 생각났다. 항생제 치료 종결 직전이어서 ‘오늘 외출도 괜찮지만 좀 더 컨디션 좋을 때 가시면 어때요‘ 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날 다녀오시게 할 걸... 그 날도 날씨가 참 좋았는데....

장례를 치르고 A 환자 가족이 인사차 병원에 방문해 주셨다. 음료수 상자를 건네주면서 그 때 소풍을 갔어야 했는데, 그게 못내 너무 아쉽다는 말씀을 하였다. 대학병원에서 간병하던 때 어머니께서 자꾸 구토해서 토 좀 그만하라고 짜증을 냈던 것이 너무 생각나서 돌아가시고 한참을 울었다는 말이 맴돌았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 법...

이 말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하루하루 그날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어찌 보면 스쳐 지나가는 카이로스를 놓치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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