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눈 앞에 있는 의사의 판단을 존중하고 믿어주세요!
“한국은 저 신뢰사회다”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OECD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국가신뢰도에서 아주 낮은 위치에 있다. 쉽게 말해 상대방을 잘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필자 역시 얼마 전에 집 인테리어를 하면서도 느꼈고, 정찰제가 아닌 상황에서 무언가를 구입할 때 머리가 복잡해진다.
생각해보면 이런 모든 일은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파는 사람은 많은 것을 알지만 사는 사람은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일 때 심해지는 것 같다.
의료는 대표적인 비대칭 상황에서의 구매이다. 내가 먹는 약에 대해, 내가 받는 치료에 대해 의사만큼 잘 알 수가 없고, 알아볼 수도 없다. 청구서는 일방적이고, 흥정의 여지는 없다. 또한 나쁜 결과가 동반될 때 비용 지불에 대한 저항감은 더 높아지게 된다. 의료인의 선함에 기대기에는 무언가 찜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보의 비대칭을 상호 동등하게 만들 수도 없다. 국민 모두가 의사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불편감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일까?
필자는 상호 신뢰가 해결책이라 본다. 의사를 믿지 못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보호자를 만난 적도 있고, 100% 믿으니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보호자도 있었다. 의료비는 결과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대가이다. 악결과가 발생하여도 법원의 판단 역시 좋지 않은 결과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의사의 과오가 없는지를 판단하고, 일반적인 의사가 행하는 주의를 다 한 것이라면 나쁜 결과라 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병원은 요양병원이기에, 장기로 입원하는 경우도 많고, 마지막에는 좋지 않은 결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다. 자택에서 도저히 돌볼 수 없어 입원하게 되는데, 이렇게 쇠약한 상태의 노인 환자들은 감염에도 취약하다.
폐렴이나 요로감염에 걸리는 경우가 많고, 예기치 못한 낙상이나 그 밖의 안전사고가 흔하게 발생한다.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도 어디선가는 문제가 발생하는게 우리 병원의 일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로서 판단하여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지 상급 병원으로 전원할지 고민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보호자와의 신뢰관계이다.
보호자가 앞뒤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의 치료 방침에 따라준다면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한다. 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경우 당연히 상급병원으로 후송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신뢰관계가 쌓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환자의 컨디션이 저하되는 경우에, 병원이 무언가 잘못 해서 그렇게 나빠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보호자의 경우 과연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하는 것이 옳을까.
필자는 그런 경우는 상급병원에 가시도록 안내한다. 충분히 치료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잘 치료가 된다면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치료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약한 신뢰관계는 바로 불신으로 바뀌고, 최악의 경우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이 위험성을 떠안을 의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무조건 병원을 믿으라는 말은 아니다. 신뢰는 상호 존중하는 상황에서 쌓을 수 있다.
환자의 작은 컨디션 변화에도 고민하여 예측 가능한 문제를 감안한 치료 계획을 세우고 이를 보호자와 공유하면 대다수의 보호자들은 의사를 신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나 스스로 상대방을 믿지 못하면서 상대방이 진실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가끔 지인들이 연락을 해서 병원에서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게 맞는건지 물어볼 때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 말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의사의 판단을 믿어보세요...그게 맞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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