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6개월쯤 입원해 있던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도 가끔 얼굴이 생각나는 분이다. 아마 남들보다 더 잘 웃는 분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 분은 뇌경색이 있었으나 특이 후유증 없이 일상 생활을 하시던 분인데 갑작스러운 의식 소실이 발생하여 대학병원에 입원, 요로감염으로 인한 패혈증 및 급성 신장 기능 저하로 치료받았다. 이후 보행이 되지 않아 자택으로 갈 수 없어 우리 병원으로 오시게 되었다. 뇌 검사를 포함 여러 검사를 해도 걷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재활 치료를 해도 반응이 없었고, 어찌 보면 걸으려는 의지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와서 설득하고 때로는 울고불고 하면서 걸어야 집에 갈 수 있다고 하여도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항상 집에 가고 싶다고만 하셨다. 하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24시간 계속 옆에서 간병을 할 수도 없으니 집으로 모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걸어야 집에 간다’ 와 ‘집에 가면 걸을 수 있다’ 두 의견은 늘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기저귀를 교환할 때 엉덩이를 살짝만 들어주어도 간병인이 정리하는데 훨씬 수월한데 그것도 하지 못하여서 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면서 용변을 치워주어야 했다. 의식도 멀쩡하고, 인지에도 크게 문제가 없던 분이라 그 상황이 어찌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게 몇 달을 누워서만 지냈다. 어찌 보면 참 아무런 낙이 없는 삶 같았는데, 회진 때 인사를 건네면 늘 배시시 웃었다. 배시시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더 이상의 호전이 없고, 재활 치료에도 반응이 없어 필자 역시 보행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보존적 치료를 지속하였는데, 어느 날 엉덩이 살이 짓무르기 시작했다. 덩치가 워낙 있던 분이라 욕창이 생길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상처는 걷잡을 수 없이 넓어져 수일 만에 완전히 욕창이 자리잡아 버렸다.

욕창 발생 시에는 체위 변경을 더 자주 해 줘야 하는데, 이 분은 늘 똑바로만 누워 있으려 하였다. 쿠션을 이용해서 옆으로 뉘면 어느새 다시 바른 자세로 누워 있기 일쑤였다.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속상하였다. 집에 가고 싶다는 무언의 시위인가 싶기도 했지만, 막상 말을 해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렇게 한고비를 넘기고 상처가 얼추 회복될 무렵 갑자기 전보다 기력이 없는 모습이었다. 혈액검사를 해도 약간의 염증 수치 상승이 보였으나 크게 의미 있는 정도가 아니어서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영양제를 쓰면서 경과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갑자기 열이 나고 환자가 의식 소실을 보였다. 순간적인 심정지가 발생하여 심폐소생술을 하였다. 

다시 맥이 뛰었지만, 의식은 없었고 혈압이 낮았다.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상황 설명을 하고 상급병원 전원을 권하였으나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심폐소생술 원하지 않고, 큰 병원에도 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 어머니가 저리 누워만 계시고 나아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른 데 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우리 어머니가 원장님 좋아했어요. 원장님이 잘 해주세요...’

평소 무슨 일이든 적극적인 모습과 정반대되는 반응에 놀랐지만, 보호자 의견을 존중하여 본원에서 치료하기로 하였다. 

주사항생제를 시작하고, 혈관이 좋지 않아 중심정맥관을 삽입하였다. 혈압도 회복되고, 산소 포화도도 안정권으로 들어와 한숨 놓았다.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직 의사에게 인계 후 퇴근하였는데 한 시간 정도 지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사망하셨다는 것이었다. 순간 무언가에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오늘 사망하실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기도 했거니와 응급 상황에서 차분하게 본인의 의견을 말하던 보호자의 말과 배시시 웃던 할머니 얼굴이 다시 생각났다.

날 좋아해 주셨구나. 그래서 항상 그렇게 웃어 주셨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이라도 더 손을 잡아 드릴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며칠이라도 더 있다 가시지 왜 그리 급히 가셨을까 싶지만, 한편으로는 다음 세상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지내시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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