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20년쯤 전에 있었던 일이다. 선배가 부친상을 당하여 문상을 갔었다. 집안 어른이 아닌 분의 문상은 처음이었다. 잘 모르면 물어보기라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약간의 분위기 파악을 하면서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방명록도 처음 써보고, 생각해보니 부조금을 준비하지 못해서 한쪽 구석에서 부랴부랴 봉투에 돈을 넣는데, 한 분이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젊은 친구,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으니 내 알려줄게.
돈을 넣을 때는 앞뒤를 섞지 않고 차곡차곡 정리해서 하는거에요.’
1초의 멍한 시간이 흐르고...아 네,
하고는 말씀대로 돈을 정리해서 봉투에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에게 말씀을 해주신 분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어떻게 문상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있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부끄러움과 화난 감정이 같이 올라왔다. 괜한 참견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것도 몰랐나 싶어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가르침 덕에 필자는 지금도 남에게 돈을 건네줘야 할 때 봉투에 돈을 넣기 전에 한 번 더 가지런히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이 변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기성세대의 늘 그런 말일까. 아무튼 요즘은 타인에게 가르침-이라 쓰고 지적질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음-을 주기가 힘든 세상이다. 괜히 남을 자극해 안좋은 일이 벌어지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에서 전해 듣는 이야기는 자극적이어야 클릭 수가 늘어서 그런 걸까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뉴스가 넘쳐난다. 특히나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교사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이렇게 바뀌었나 싶어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학생은 學生이기에 계속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가르침은 지식적인 것뿐 아니라 태도와 예의범절, 가치관도 포함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은 또래와의 어울림을 통하여, 그리고 아이들을 지도해주는 교사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옳게 자라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칭찬받아 어깨가 으쓱할 수도 있는 거고, 때로는 지적을 받아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잘못을 지적받아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그것이 정서적 학대로 아동복지법 위반이라는 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지적을 하는 표현의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평가했는데 우리 애가 좋은 평가를 못 받아 의기소침해 있고, 그것이 학대라는 논리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런 주장에도 아니라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참 답답하다. 물론 가르침에서 제일 중요한 곳은 가정이다.
나부터 내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있는지 반성하고, 나 역시 미흡한 사람인지라 나의 허물을 아이들이 배우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정에서 하기 어려운 사회에 대한 교육을 대신 해주는 학교 선생님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하고 있음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아, 물론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 유치원 시절 선생님들에게도 우리 부부가 일하는 동안 대신 잘 돌봐주고,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은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목소리가 너무나 당연하기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일 것이라 생각한다.
공자 말씀에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 한 명은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남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자신의 무지함을 깨달아야 하고 그에 따르는 부끄러움도 감수해야 하는 과정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자신의 무지함을 들키는 것에 부정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누군가가 가르침을 준다면 그것만큼이나 고마운 것이 없다는 진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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