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보험은 몸이 불편한 노인 환자가 자택에서 방문 요양 또는 방문 간호를 받거나 요양원과 같은 시설에 입소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이다. 장기요양등급을 받게 되면 각 등급에 따라 요양보호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몸이 편치 못한 분들과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신청 과정에서 의사소견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문제는 많은 분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안좋다는 것이다. 예전 재가센터와 간담회때 그런 분들을 위한 왕진 요청 얘기가 있어 거동이 힘든 와상인 분들의 경우는 우리 병원에서 직접
얼마 전 문상을 다녀왔다. 동문회에서 문자가 와서 확인해보니 대학 동기였다. 평소 연락을 주고받는 절친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끔 통화를 하던 친구인데 갑자기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장례식장으로 찾아갔다.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보니 낯익은 얼굴이 몇 명 있었다. 코로나 이후 전체 모임이 없다보니 다들 몇 년만에 만나게 된 대학 시절 친구들이었다.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얼굴을 보니 다들 얼굴에 나이만큼의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못 느꼈던 생경한 느낌이었다. 기억 속의 친구들의 얼굴은 대학생때 모습인데, 내 앞에 앉은 중년의 아저
치매 환자가 가정을 떠나 요양병원에 오게 되는 계기는 대개 크게 두 가지이다.폭력적이거나 또는 용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억력이 떨어져서 오는 문제는 어찌 보면 가정에서 돌보지 못하게 되는 사유 중에는 하위 목록에 해당한다고 본다. 우리 병원에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오시는 분들이 왕왕 있다. 이 분들의 삶이 워낙 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얼마 전에 임종하신 김 할아버지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김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건장하였다. 80이 넘은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
그리스 신화에는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가 있다. 이 신은 앞머리는 길지만,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기회 역시 나타났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으나 지나가고 나면 다시 붙잡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간경화 환자는 손이 많이 간다. 복수 관리도 해줘야 하고, 부종도 신경을 써줘야 한다. 간질환에 동반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환자도 힘이 들고, 의료진도 힘이 많이 든다. 의식이 명료하기에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심하고, 현실적으로 회복 가능성도 간이식 이외는 없어서 암 만큼이나 나쁜 병이라고 생각
얼마 전 아버지가 필자의 병원에서 입원하였던 적이 있었다. 1년간 총 네 번의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평생 건강히 지내시다 생긴 갑작스러운 변화에 가족 모두가 적잖게 당황을 했다. 가장 큰 수술은 암 수술이었다. 건강검진으로 발견하고, 원격 전이 전에 수술하여 병소를 절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진단에서 수술 결정까지, 그리고 수술 전 검사 과정은 참 복잡하였다.하루에 검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수 차례 병원을 방문해야 하였고, 시간 맞춰 가더라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루는 매번 두 분만 가는 것이
출근하자마자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원장님, 환자가 숨을 안 쉬어요!”병동으로 가서 환자를 진찰해보니 이미 심정지가 온 상태였다.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는다는 보호자의 의사 표시가 있었던 분이었다. 보호자에게 전화로 현재 상황을 말씀드렸다. 30분 후 도착한 보호자 앞에서 사망 선언을 하였고, 환갑이 넘은 보호자 부부는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어떤 위로의 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힘들지 않게 가셨다는 말을 뒤로 하고 방을 나왔다. 서류를 정리하면서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
6개월쯤 입원해 있던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도 가끔 얼굴이 생각나는 분이다. 아마 남들보다 더 잘 웃는 분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 분은 뇌경색이 있었으나 특이 후유증 없이 일상 생활을 하시던 분인데 갑작스러운 의식 소실이 발생하여 대학병원에 입원, 요로감염으로 인한 패혈증 및 급성 신장 기능 저하로 치료받았다. 이후 보행이 되지 않아 자택으로 갈 수 없어 우리 병원으로 오시게 되었다. 뇌 검사를 포함 여러 검사를 해도 걷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재활 치료를 해도 반응이 없었고, 어찌
원장님, 저 수혈 하는거 원치 않습니다.수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로 보호자께서 말씀하셨다. 환자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로 치매가 심하고 누워서 눈만 깜빡이는 것이 전부인 어떠한 의사소통도 안되는 분이다. 자식들도 못 알아보는 상황에서 수 년째 조금씩 컨디션이 나빠져 가고 있었다. 이 환자는 우리 병원에 오기 전부터 계속 빈혈 문제를 갖고 계셨다. 그런데 최근 빈혈 수치가 급격히 나빠지는 양상이었다. 수혈을 해도 잠시 뿐, 다시 일반 성인의 절반 수준의 수치를 보였다.두세 달에 한번꼴로 수혈을 하였는데,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수혈을
연말 연시는 다들 바쁘다. 그동안 눌려 있던 모임 수요가 폭발해서일까, 필자도 오래간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다. 만나서 하는 대화는 모임의 성격마다 다르지만 이야기꽃이 활짝 피면 다들 건강, 특히 비만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필자가 입방아에 오른다.왠만한 모임에서 필자보다 마른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노파심에 밝혀두지만, 필자의 체중은 정상 범위에 있다.) 굳이 관리를 하지 않는데, 20년째 몸무게가 큰 변화가 없는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당사자에게는 고민이기도 하다.
30을 바라보던 시절에 흔히 듣던 말이 “결혼할 때 집안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사람이 중요하지 왜 자꾸 배경을 따지려 할까. 속물근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보게 되는 일이 많다 보니 이제는 결혼과 같은 중대사에는 반드시 집안을 봐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A 할머니는 첫 인상부터 참 선한 얼굴이었다.말기 암 환자로 통증 조절이 안되어 입원하였다. 순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응급실 몇 번 다니다 보니 너무 고생스
아빠, 뇌를 버려!운전 중에 뒷자석에 있던 아이가 필자에게 외쳤다. 가족 나들이 중 차량 정체가 심해지고, 네비게이션마저 최소시간 경로에서 갈팡질팡할 때 필자는 여지없이 네비게이션의 지도를 이리 저리 살펴본다. 샛길이 있지 않을까? 혹시 이 길로 가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하지만 이 길을 가봐도 저 길을 가봐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네비게이션이 예상한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네비게이션을 불신하고 운전해 얻은 것이라고는 좁고 낯선 길에서 불편하게 운전하며 얻은 긴장감과 피로감, 그리고 다시는 그 길로 진
잘 살다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웰빙을 넘어 웰다잉을 생각하는 요즘, 얼마 전에 돌아가셨던 한 할머니 생각이 난다. 이 분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본인 집에서 지내던 분으로 먼 친척이 같이 살면서 살림 일부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사회활동을 지속하며 살았다. 가끔 힘들 때는 자식들 집에서 1~2주 지내기는 하였으나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최근 기력 저하가 심해지고 전보다 좀 건망증이 있어 보여 치매 검사를 하였는데, 치매 초기를 진단 받으셨다 하였다. 식사량이 적고 기력 저하가 길어져 영양제 등을 맞고 싶어 우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명절 이후는 급작스럽게 입원 문의를 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멀리 계신 부모님을 찾아뵈었는데, 아무래도 건강이 안 좋아진 것 같아 자녀들이 모셔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건강수명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건강한 노년기를 맞이하기를 바라며 일본 건강 장수 의료 센터 연구소에서 발표한 건강 장수 가이드라인을 소개해볼까 한다. 건강 장수를 위한 12개조1. 식생활: 골고루 먹어서 체중감소와 영양부족을 방지하자.2. 치아 건강: 치아를 잘 보
필지가 전공의 시절 일이다.하루는 선배가 본인이 쏜다면서 의국 회식을 잡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퇴원한 환자가 촌지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좀 뜨악했다. 돈 받은게 무슨 자랑이라고 저리 말하나 싶었는데,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얘기를 해 주었다.말인 즉슨, ‘환자나 보호자는 적지 않은 병원비를 내고 퇴원하는 상황에서 의사에게 봉투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들에게 잘 해주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일 아니겠느냐. 이건 그분들이 내게 주신 상과 같은 선물이라
부부는 살면서 많은 부분이 닮게 된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심지어 외모가 닮은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외모가 비슷해서 서로 부부의 연이 된것인지, 살다 보니 외모마저도 닮아가는건지 진실은 잘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부부는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기에 질병도 닮아간다는 것이다. 노노간병이라는 말이 이제 낯설지 않은 요즘, 배우자 수발 때문에 힘들어하는 시니어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 관심사가 환자에게 맞춰지다 보니, 정작 간병을 담당하는 본인의 건강상태, 특히 정신적 건강에 대해서는 소홀
”까톡~“아침에 출근하여 일을 시작하려는데 아내로부터 연락이 왔다. 두 줄이 나온 코로나 키트 사진과 함께. 머리가 하얘졌다.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아프던 작은아이가 급기야 열이 나고 혹시나 해서 한 자가진단 키트에서 양성이 나왔다. 아이는 PCR 검사를 받으러 갔고, 나는 서둘러 퇴근을 했다. 다음날 아침 아이의 확진 소식에 큰애와 아내도 PCR 검사를 했다. 주말에 일이 있어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나는 난감해졌다. 퇴근 이후 집안에서 마스크는 물론이고 페이스쉴드까지 쓰면서 방에 있었지만 불안감은 더
봄이다! 추운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필자는 봄이 오는 것을 겨울이 시작할 때부터 기다린다. 그래서 2월 말이 되면 곧 다가올 봄 생각에 움츠렸던 어깨도 펴고, 바깥활동을 늘릴 궁리부터 한다.오미크론 때문에 가뜩이나 위축된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나마 야외활동은 감염 위험성을 줄이면서도 신체 활동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올 봄에 필자는 한가지 제안을 해보고 싶다. 그것은 ‘낯선 곳에 가서 운동하기’ 이다.운동은 운동인데 왜 낯선 곳일까 하고 생각 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 운동을 하면서 몸을 건강하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2월이 되면 정든 친구들을 뒤로 하고 새 친구를 만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어영부영 보내다 새 학기를 맞이하였다. 새 선생님은 늘 가정환경 조사서 같은 서류를 제출하라 하셨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자가인지 전세인지부터 해서 소득수준 같은 것은 그냥 중간으로 체크하면 그만이었지만 취미와 특기 란은 늘 비워두고 마지막에 채워넣었다.학교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게 지내는 것이 편안했던 필자는 남에게 내세울만한 특기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잘 그리는
2022년 임인(壬寅)년이 밝았다.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한다. 모 시리얼 회사의 선전처럼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 모두의 삶이 더 활기차게 되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올해는 하나 더 소망하는 것이 있는데, 소통을 하지 못해 닫힌 마음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미개인과 문명인(로마인 자신)을 나누는 기준으로 공감능력을 꼽기도 하였다. 험한 절벽 아래 동료가 떨어지더라도 개의치 않고, 짐승처럼 행동하는 것은 야만인이지만,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고, 전쟁에서 상대방의 고통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문명인이라 보았다. 아마도 이
지난 11월 필자의 병원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부스터샷 백신 접종이 있었다. 지난 3월과 5월에 각각 1차와 2차 백신 접종을 하고, 약 6개월만에 다시 백신 접종을 한 셈이다. 백신 접종을 할 때마다 뉴스에서 들었던 부작용이 나에게도 나타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지만 다행스럽게 큰 탈 없이 지나갔다. 부스터샷을 맞은 주변 다른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면역학에서는 집단 면역이라는 개념이 있다. 감염성 질환의 경우 전체 구성원 중에서 일정 비율 이상이 면역력을 갖고 있게 되면 질병의 전파가 저하되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