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필지가 전공의 시절 일이다.
하루는 선배가 본인이 쏜다면서 의국 회식을 잡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퇴원한 환자가 촌지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좀 뜨악했다. 돈 받은게 무슨 자랑이라고 저리 말하나 싶었는데,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얘기를 해 주었다.
말인 즉슨, ‘환자나 보호자는 적지 않은 병원비를 내고 퇴원하는 상황에서 의사에게 봉투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들에게 잘 해주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일 아니겠느냐. 이건 그분들이 내게 주신 상과 같은 선물이라고...’
그 때는 잘 이해를 못했다. 하지만 아무튼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기고 고기를 맛있게 먹었었다.
요양병원은 단기 입원이 별로 없다. 대개 가족이 돌보기에는 동반된 질환이 너무 많아 수시로 병원에 가야 하고, 이런 저런 사유로 집에서 지내기 어려워 입원하는 것이라 한 번 입원하면 장기로 있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동반 질환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미봉책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기에 어떤 때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경우도 많다. 사실 오늘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보호자와 통화할 일이 잦은데, 대화가 잘 되는 보호자들과는 마치 내가 이 사람들과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인 양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게 되고, 내 가족이면 이 환자를 어떻게 판단하는게 좋을지 물어보는 경우도 흔하게 겪는다.
90이 넘은 K 할머니는 처음에는 잦은 낙상으로 골절은 아니지만 타박상이 심해 며칠간 통증 조절을 하려고 입원하였다. 처음에는 분가했던 아들 집에 손주들 키워주려 합가하여 평생을 아들 내외랑 살았던 분이라 가족들도 통증만 좋아지면 퇴원하려고 하였던 경우였다. 그런데, 통증으로 한달 가까이 침상안정을 하다 보니 고령인지라 보행에 문제가 생겼다. 이 경우는 전형적인 근감소증 상황인데, 문제는 할머니가 걸으려는 의지도,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가족들은 걷는 연습을 해 달라고 하는데, 할머니 스스로 전혀 걸을 생각을 안 하셨다. 아무리 설득해도 화장실 출입조차 안 하려 하였고 이 문제로 보호자와 수 차례 얘기를 나누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 분이 치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기능간이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좀 낮았다. 하지만 과거 기억은 나쁘지 않고, 가족들도 치매일 리가 없다고 하여 간과했던 부분이었는데, 회진때 아침 메뉴를 물어본다거나 바로 전의 일을 다시 물어보는 것을 하면 여지없이 기억을 못해서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수 차례 대화를 진행할수록 최근 기억력에 확실히 장애가 있는 것 같아 보호자에게 치매 정밀검사를 권하였다. 처음에는 그 연세에 그 정도 건망증은 괜찮은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검사를 하였고, 치매 초기임을 확인하였다. 인지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 부모가 치매환자임을 알게 된 보호자들은 침통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치매를 조기에 확인하고 치매약을 복용하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것이기에 오히려 전화위복인 상황일 수도 있는 것이고, 이런 설명을 해 드렸더니 얼굴빛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 가족들 면회가 있었고, 내 책상 위에는 작은 케이크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잘 봐줘서 고맙다는 메모지 위 손글씨가 단정해 보였다. 갑자기 예전 뇌물(?) 사건이 떠올랐다.
뇌물과 선물의 경계는 어디일까? 잘 모르겠지만 케이크는 달콤했고, K 할머니는 여전히 아침에 드신 국이 뭐였는지 물어보면 멋적게 웃어 넘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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