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임인(壬寅)년이 밝았다.

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한다. 모 시리얼 회사의 선전처럼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 모두의 삶이 더 활기차게 되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올해는 하나 더 소망하는 것이 있는데, 소통을 하지 못해 닫힌 마음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미개인과 문명인(로마인 자신)을 나누는 기준으로 공감능력을 꼽기도 하였다. 험한 절벽 아래 동료가 떨어지더라도 개의치 않고, 짐승처럼 행동하는 것은 야만인이지만,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고, 전쟁에서 상대방의 고통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문명인이라 보았다. 아마도 이는 스스로를 높이고, 로마 영토 밖 외부인을 낮게 보는 데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공감 능력은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일까?

많은 연구에서 동물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정 부분 무리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는 파킨슨병 할머니 한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은 서서히 기력이 쇠하여 식사도 삼키지 못하여 콧줄을 사용하였고, 급기야 몇 달 전에는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다. 임종이 임박했다고 판단해서 보호자 면회까지 했었는데, 기적적으로 좋아져서 다시 재활 치료를 하고 있다. 최근 컨디션이 더 좋아져서 회진때 작은 소리로 “밥줘, 밥좀 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거의 말도 못하시던 분이고, 눈 마주치는 것도 쉽지 않았었다. 삼킴기능 문제로 콧줄을 사용하고 있으며, 몇 달 전 상태를 생각해 보면 그 분이 다시 입으로 음식을 드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더군다나 파킨슨병은 계속 나빠지는 만성질환이 아닌가. 그런데, 할머니의 눈빛은 좀 달랐다. 무언가 힘이 느껴진다고 할까, 어느 순간 예전과 다른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기적으로 콧줄을 교체하는 날, ‘삼키세요’ 라고 하니 바로 삼키는 느낌이 있었다. (콧줄을 시술하다 보면 환자가 협조적으로 삼키는지 억지로 밀어넣는지 느낌이 있다.) 할머니와 내가 뭔가 통한 느낌이 든 것이다. 그래, 한 번 검사를 받아보게 해보자. 

파킨슨 환자에서 삼킴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눈 앞에서 음식을 삼키는 것 같아도 식도 부분에서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흡인성 폐렴이 발생하고,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콧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빼기가 어렵다. (만성 질환이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해서 콧줄 사용을 미루면 폐렴이 와서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오해하는 분이 없기 바란다.)

그래서 아직 삼킴 기능이 남아있는 경우 그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하여 이에 대한 재활치료를 하는데, 그 전에 삼킴기능검사를 해서 객관적인 상태 파악을 하는 것이 필수이다.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인근 종합병원에서 삼킴기능 검사를 해 보시도록 안내하였다. 결과를 받아보니 재활치료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으로 죽 종류를 섭취할 수 있는 컨디션이었다.
식사때 가보니 참 잘 드신다. 한술 더 떠 요즘은 나에게 밥을 달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건 안되어서 어렵다고 말씀드린다. 안되는건 안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전에 비해서 죽이라도 드시고, 콧줄 안 한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따지고 보면 할머니가 나에게 내가 삼킬 수 있으니 콧줄을 빼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판단하고, 그저 콧줄을 하고 있는 가엾은 할머니로 동정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무언가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 섞인 공감이 만든 작은 이벤트가 아닐까 싶다. 

죽음 문턱까지 갔다 회복되고, 더 나아가 콧줄까지도 필요 없어진 할머니 모습이 가족에게는 연말 연시에 큰 선물이 되었다. 올해에는 공감 레이더를 좀 더 키워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함께 울림을 만드는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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