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30을 바라보던 시절에 흔히 듣던 말이 “결혼할 때 집안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사람이 중요하지 왜 자꾸 배경을 따지려 할까. 속물근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보게 되는 일이 많다 보니 이제는 결혼과 같은 중대사에는 반드시 집안을 봐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 할머니는 첫 인상부터 참 선한 얼굴이었다.

말기 암 환자로 통증 조절이 안되어 입원하였다. 순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응급실 몇 번 다니다 보니 너무 고생스러웠다고 하였다. 한 주에 두세 번 오는 급격한 통증 때문에 입원하자니 다른 컨디션이 양호하고,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게 내심 싫어서 입원을 몇 번이나 망설이다 자식들이 병수발 하는게 미안하다며 입원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하였다. 

입원 초기에는 통증으로 고생하다 어느 정도 약이 맞아 들어가니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였다. 마음은 이해되는데, 문제는 통증이었다. 그래도 말기 암환자는 언제 어떻게 상태가 악화될지 모르기에 퇴원하여 며칠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하기로 하고 퇴원 일정을 조율하였다.

그런데 하필 퇴원 전날 갑자기 통증이 심하여 퇴원은 취소되고, 어쩔 수 없이 입원을 지속하기로 하였다. 사실 이런 일은 말기 암환자에게는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A 할머니가 기억에 남는 것은 평소 통증을 호소하면서 보이는 모습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일단 참을 수 있는 데까지는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참는 것이 통증 조절에 안 좋으니 그리 하시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려도 바쁜 사람 불러서 이런 저런 얘기 해서 뭐 해달라고 하는게 미안해서 그렇다고 하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딸과 상의하였다.

어머니를 닮아 눈매가 선했던 분인데, 우리 엄마 안아프기만 하면 좋겠다고, 회사에서 일하다가 전화 받고 응급실로 뛰쳐갈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었다. 말기암 환자의 보호자는 신경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단어 선택에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보호자는 오히려 우리 직원들을 더 배려해 주었다.

”우리 어머니가 귀찮게 해드려도 잘 봐주세요, 바쁘신거 알지만 많이 아픈 사람이니 잘 부탁해요.“

대개는 다른 사람보다 내 가족을 먼저 챙겨달라고 하고 그 과정에서 소홀함이 있으면 감정적으로 불편감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 딸을 포함 3남매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매 번 우리 직원이 민망할 정도로 고마움과 배려심을 표현해 주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이 환자에게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고 더 세심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마지막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임종을 지켜드리고 싶어 수 차례 위독하다고 연락을 하였다.

사람 목숨이라는게 참 알 수가 없어서 어떤 분은 당분간은 별 일 없이 있을 것 같은데 갑자기 돌아가시고, 어떤 분은 이 A 할머니처럼 몇 번이고 금방 사망할 것 같은 상황이 되다 다시 안정화되는 경우가 있다.
두세 번 왔다 갔다 하게 되면 보호자도 지치고, 연락하는 우리도 죄인 아닌 죄인이 되는데, 이 가족은 고비를 넘긴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연락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고 갔다.

그렇게 1주일 넘게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는데 병동에서 호출이 왔다. A 할머니 보호자께서 면담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인격 수양이 덜 된 필자는 귀찮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더 해 드릴 말씀도 없을뿐더러 다른 급한 일 해결하느라 당장 병동에 갈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말씀인가 싶어 임종실로 갔더니 어머니 고통이 지속되는게 마음이 아프니 산소를 그만 중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필자의 작은 그릇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아예 중단하면 돌아가시고 나서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니 줄이는 것으로 설명을 하고 산소 밸브에 손을 가져가는 찰나, 심정지 알람이 울렸다. 그 순간에 가실 줄이야. 마지막 진찰을 하고 사망 선언을 하는데, 그 가족들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엄마, 우리 잘 키워줘서 고마워. 그동안 고생했어. 고마워. 사랑해.“

항상 남을 배려하고, 늘 고맙다는 말로 사람들을 대하던 A 할머니의 음성이 겹쳐지면서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다.

할머니,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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