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아버지가 필자의 병원에서 입원하였던 적이 있었다. 1년간 총 네 번의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평생 건강히 지내시다 생긴 갑작스러운 변화에 가족 모두가 적잖게 당황을 했다. 

가장 큰 수술은 암 수술이었다. 건강검진으로 발견하고, 원격 전이 전에 수술하여 병소를 절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진단에서 수술 결정까지, 그리고 수술 전 검사 과정은 참 복잡하였다.

하루에 검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수 차례 병원을 방문해야 하였고, 시간 맞춰 가더라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루는 매번 두 분만 가는 것이 안타까워 모시고 갔던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수술 전 검사 결과를 듣고 수술 설명을 듣는 날이었다.

아무래도 의사 아들이 같이 갔으면 하시길래 아침부터 서둘러서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향하였다. 대학병원은 언제나 그렇듯이 주차가 참 힘들었다. 서둘러서 왔는데도 자칫하면 외래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예약시간에 바로 진료를 했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모님을 먼저 내리시게 하고 주차 후 부랴부랴 외래진료실로 갔다.

처음 가보는 병원은 어찌나 크고 복잡하든지 미로가 따로 없었다. 헐레벌떡 들어간 대기실에서 환자 명단을 찾아보니 예약시간이 30분이나 지났는데도 우리 차례는 한참 남은 상황이었다. 뭔가 속은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진료실 안의 의사는 또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대기를 하면 이상하게도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귀를 쫑긋하며 우리 차례를 기다려 예약시간 한 시간이 지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수술전 검사에서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아 이전에 정한 날자에 수술 가능하다며, 수술에 관한 통상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설명을 잘 들었다는 서명을 하는 동안에도 왠지 긴장되고, 수술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사실 저도 의사입니다 하면서 좀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 상황에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뒤에도 기다리는 환자가 많았고, 담당 의사는 본인 설명 후 바로 처방을 하느라 이미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통성명을 비롯한 여유로운 대화는 언감생심이었다. 

이후 다시 대기하다 입원 전 안내를 받고 원무과에서 결제까지 하고 나니 오전 10시 반 예약이었던 진료는 1시가 다 되어 끝났다. 이른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다시 일하러 가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어차피 늦어버린 상황이 되어, 집으로 모셔다드리는 길에 비싼 고깃집으로 갔다. 평소 잘 먹기 어려운 음식이라도 대접해서 괜히 효도하는 척하고픈 심산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리 복잡한 병원 진료를 나몰라라 했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픈 것도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수술을 잘 받고, 우리 병원에서 얼마간의 회복기를 거쳐 이제는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나이는 못속이는 법이다. 언제 어떻게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고, 어찌 보면 내가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이전과 다르게 보호자의 마음으로 환자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병원에 입원하는 분들의 가족은 우리 가족이 겪은 것보다 더 힘든 상황을 겪고 온 분들이다. 특히나 응급실, 중환자실을 거쳐 오는 분들은 더 그렇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 측은하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 자꾸 안좋은 상황이 발생해서 다시 상급병원으로 전원하고, 회복해서 다시 오고 하는 일을 몇 번 겪는 것을 보면, 과연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나 요즘 체감하는 것이 우리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의 나이와 내 부모님의 나이가 크게 다르지 않고, 보호자들의 나이 역시 나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상황이 이제는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요즘 느낀다. 

“있을 때 잘해”

평범한 이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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