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두희 원장 ㅣ 수원 센트럴요양병원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출근하자마자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원장님, 환자가 숨을 안 쉬어요!”

병동으로 가서 환자를 진찰해보니 이미 심정지가 온 상태였다.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는다는 보호자의 의사 표시가 있었던 분이었다. 보호자에게 전화로 현재 상황을 말씀드렸다. 30분 후 도착한 보호자 앞에서 사망 선언을 하였고, 환갑이 넘은 보호자 부부는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어떤 위로의 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힘들지 않게 가셨다는 말을 뒤로 하고 방을 나왔다. 서류를 정리하면서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중에 다른 보호자가 문제제기를 하면 뭐라 말을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기록 정리를 끝내고 오전 회진을 돌았다. 오늘따라 왠지 이 분도 걱정이고 저 분도 갑자기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같이 일하는 동료 의사가 일이 있어 일찍 퇴근하면서 환자 한 분이 걱정된다고 이따가 한 번 가서 봐달라고 했다. 어떤 환자인지 기록을 확인해보고 병실로 갔는데, 낮빛이 창백했다. 진찰을 시작하려는 찰나, 등골이 서늘했다. 의식이 없었고, 호흡도 없는 상태. 손이 약간 찬 느낌이었으나 얼굴이나 몸은 따뜻했다. 같은 방에 있던 다른 환자나 간병인조차 환자의 심정지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 환자는 위급시 심폐소생술을 원하는 환자이던데, 심정지라니. 급하게 처치실로 옮기고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였다. 산소포화도 75%. 희망이 있었다. 기관삽관을 하고 흉부압박을 하면서 제세동기를 작동시켰다. 심장 박동 없음 신호만 나왔다.

산소포화도는 더 떨어지고, 보호자는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고.... 식어가는 환자의 몸이 야속하기만 했다. 머리가 하얘졌다.

뭐라고 설명하지? 왜 상급병원으로 안 옮겼냐고 따지면 어떻게 답해야 하지?

그냥 갑자기 내가 죄인이 된 듯 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이 없어도 잘못이 없다고 증명하는게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필자는 정공법으로 나간다.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불리한 발언이 될 지라도 말이다.

한시간이 지나서 보호자가 도착하였다. 그 분들에게 내 설명이 귀에 들어올까 싶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드렸다.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본 시각, 그리고 내가 심정지된 상태를 발견한 시각. 그 이후 우리가 한 응급처치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니까. 의사는 응급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살리지 못했다고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가족들의 오열 속에 사망 선언을 하고 처치실을 나왔다. 잠시 후 보호자가 보자고 했다. 필자는 갑작스런 심정지의 원인에 대해 부정맥이 있던 기존 병력으로 추정하여 설명을 하고, 급작스런 소식을 전하는 것에 대한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며칠 후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두 보호자를 시간 차를 두고 다시 만나게 되었다. 상을 치르고 행정 절차가 남아 내원하신 것이다. 먼저 돌아가신 보호자는 기존에 필자가 담당했던 분이고, 평소에 이런 저런 전화 상담을 해왔던 터라 크게 부담 없이 만났고, 그동안 잘 봐줘서 고맙다는 인사로 마무리가 되었다. 몇 시간 후 두 번째 보호자가 담당 의사가 아닌 나와의 면담을 요청한다는 메시지가 와서 괜히 긴장이 되었다. 왜 나를? 하지만 만나서 말씀을 나눠보니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큰 병을 짧은 기간 동안 겪어 급속도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길게 고생 안하고 임종하신 것에 대한 안도감이 뒤섞인 감정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받게 해 드렸어야 했는지, 그랬으면 심정지가 안 왔을지 필자에게 물어보셨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누가 알 수 있을 것인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눈 후 보호자는 아버지께서 마지막에 고통 없이 가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건네주셨다. 

필자는 요즘 요양병원 일이 의사의 일 중에서 가장 바닥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호전되기 보다는 현상 유지가 목표이고, 아무리 잘 해도 크고 작은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게 요양병원의 일상인데...요즘 언론에서는 모든 요양병원이 문제가 많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논조 일색이어서 저 사람들이 과연 이곳의 현실을 알고 뉴스를 쓰는건가 싶었다.

그 와중에 어떤 간병인의 일탈로 인한 뉴스가 회자되어 괜히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두 분의 보호자로부터 부모님 마지막 가는 길에 힘들지 않게 잘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받게 되었다.

의기소침했던 그간의 불편한 감정을 떨치고 필자가 하는 일에 감사해주는 그 분들의 마음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열심히 해도 필연적으로 오게 되는 좋지 않은 결과에 같이 슬퍼하는 요양병원 종사자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신 것에 대해, 이 지면을 통하여 감사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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