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작가
2022 "딸에겐 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저자
2020 '완벽한 하루' 저자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전태일 열사가 아무리 호소해도 바뀌지 않는 노동환경을 고발하고자,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울부짖은 몇 마디가 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친 한 마디가, 자신의 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였다. 자신이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외치는 이 몇 마디가, 꼭 현실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애원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병원으로 달려왔다.
전태일 열사는 코와 입만 빼고, 온몸에 붕대가 감겨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또렷했다. 죽기 전, 자신의 어머니한테 굳게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앞장서 달라는 당부였다. 죽는 순간까지 그분은 노동자들 걱정뿐이었다. 자신이 목숨 걸고 만든 기회의 불씨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묘비명에 이렇게 적혀있다. ‘노동자의 어머니’. 어머니는 끝까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셨다. 
 

어제 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된 내용이었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전태일 열사의 모습을 그린 영화인데, 전태일 열사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유는 전태일 열사가 메모했던 글을 바탕으로 해석하고, 그의 생각을 최대한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제작을 위한 준비 기간도 꽤 길었다고 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열사의 이야기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분들이 많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람답게 살 권리를 찾기 위해 많은 분이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행동으로 옮기셨다. 책을 통해서 혹은 영화를 통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먹먹하기도 하고, 대단한 용기에 고개가 숙어지기도 한다. 가만히 보면 그분들도 그냥 평범하게 살아간 한 시민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떤 계기가 그분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그 불이 곧 자기의 희생으로 마무리되었다.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과거를 기억 못 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원문은 이렇다.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스페인 출신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조지 산타야나’ 교수님이 한 말씀이다. 이 한마디는,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한다. 목숨까지 바치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한 정신을 잊지 않아야, 그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 된다. 말도 안 되는 잘못된 역사를 지나치면, 그에 따른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게 된다. 또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분들이 희생했는가? 아니면, 희생하게 했는가?

처음에는 당연히 전자가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아니었다. 후자였다. 희생을 한 것이 아니라, 희생하게 했다. 그들의 외침을 듣고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런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지 않고, 함께 한 발짝을 내밀었다면 또 혹시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희생하고 있는가? 희생하게 하고 있는가?

내가 해야 할 역할에 한 발을 빼고 있거나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희생하게 하는 거라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니면 누군가는 그 역할과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희생이 꼭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일어나지 않아도 될, 모든 피해라고 말할 수 있다.

최소한 자신의 역할과 책임만 감당한다면, 누군가의 안타까운 희생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최소한 희생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진 않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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