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볼 때, 가장 영화 같다고 느끼는 장면들이 있다.
사람이 날아다니고 한 손으로 자동차를 부수고 건물 여기저기를 넘나드는, 그런 장면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소신을 절대 꺾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역사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실존 인물이라는 생각에, 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영화 같다’라는 표현은, ‘비현실적이다’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여기에 감정을 좀 섞으면, ‘나도 저랬으면 좋겠다’가 되겠다.
현실에서는 자기 소신을 꺾지 않기가 쉽지 않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먹고살기 위해서다. 일해야 먹고사는데, 일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상황이 발생한다.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도 있지만, 도저히 마음이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억울한 상황이 그렇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내가 잘못했다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일감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억울함을 벗기 위해 싸워서 이길 수는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졌다는 느낌이 떠나지 않는, 정말 뭐 같은 상황도 있다.
억울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오래된 일인데, 학회 행사였다. 학회 사무국 담당자하고 친하게 지내던 터라, 업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때 행사도 좋게좋게 잘 준비했다. 시작 전에는 사무국 담당자하고 농담도 하면서 하하 호호하고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학회 임원 한 분이 책자를 들고 나와 한 업체를 지목하면서, 사무국 담당자에게 왜 광고가 실렸는지 물었다. 사무국 담당자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 마음은 이렇게 답을 했다. “당신이 넣으라고 해서 넣었잖아!”
경위는 이렇다.
그때 당시 몇몇 업체에서 이슈가 생겼다. 학회는 그 업체들이 광고에 참여할 수 없게 조치를 했다고 한다. 나는 전혀 몰랐었다. 그런데 그 업체 중 하나가 버젓이 광고 지면에 실렸다. 그래서 난리가 난 거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학회 회장이 그 업체에 뭐 받고 넣어준 거 아니냐는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매우 심각한 문제였던 거다.
사무국 담당자는 평소에도 건성건성으로 답을 했었다.
우리가 작업해서 컨펌을 받으려고 보내면, 대충 보고 알아서 잘 해달라고만 했다. 그래서 오타 등 우리가 잡아낼 수 있는 건 잡아내고, 이상하다 싶은 건 물어봐서 바로잡았었다. 하지만 광고가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건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사무국 담당자는 왜 광고를 넣었냐며 물었다. 묵혀두었던 분노가 발끝에서부터 머리를 치고 올라왔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담당자님이 넣으라고 하셨잖아요?”
나는 있는 그대로 내 억울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사무국 담당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임원분은 빨리 수습하라고 한마디 하시고 가셨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회사 책임자까지 나서서 수습을 진행했다. 어떻게 수습이 됐는지 기억은 없다. 다만, 나의 억울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책임자는 나를 위로하면서도, 세상이 다 그런 거니 어쩌겠냐고 했다. 우리 같은 을은, 잘못하지 않아도 잘못했다고 해야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더럽고 치사해도 어쩌겠냐고 했다. 결국, 사무국 담당자는 나랑 일하는 게 불편하다면 담당자 교체를 요청했고 그렇게 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내가 사무국 담당자에게 사과했다.
그래야 관계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관계가 불편하면 일하는 다른 사람도 불편하다. 편하게 넘어갔던 일을 걸고넘어지고, 드러내진 않지만 까칠한 반응이 이어진다. 광고를 넣어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지만, 내 마음은 달랐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마음속으로는, 학회 임원이 있는 앞에서 그렇게 말한 것을 사과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잘못했어도, 난처하게 만든 건 잘못이니 말이다. 최소한의 소신을 지켰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랬다.
소신 있게 밀어붙이는 용기를 갖고 싶다.
<낭만닥터 김사부 2>에서 나온 대사를 다이어리 앞에 써놓았는데, 소신을 갖는 데 힘을 주는 말이다. “야! 불편하다고 무릎 꿇고 문제 생길까 봐 숙여주고 치사해서 모른 척해 주고 더러워서 져주고 이런저런 핑계로 그 모든 게 쉬워지고 당연해지면, 너는 결국 어떤 취급을 당해도 싼 그런 싸구려 인생 살게 되는 거야.” 그렇다. 항상 그럴 순 없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 모든 게 쉽고 당연한게 아니라고 말해줘야 할 때는 말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 대사 아래 이렇게 내 마음을 한 문장으로 적어놓았다.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을 용기를 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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