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깨달음을 담은 천년 옛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한 문구 하나, 걸을 때 내가 살아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이미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 선재길은 그런 길이다.

험하지 않은 길, 그렇다고 너무 쉽지만도 않은 9KM 아름드리 숲길을 따라 일상의 힘듦은 내려 두고 하루 쉼을 얻어보자.

▲ 선재길 @김진규 에디터
▲ 선재길 @김진규 에디터

서울에서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식당가에서 제법 든든하게 아침을 먹어 둔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상원사로 올라가서 월정사 방향으로 선재길을 걸을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아침 식사가 필요하다. 코스모스 핀 버스 정류장에서 상원사까지 올라가는 버스를 타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해 본다.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에 자리 한 상원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원래의 절은 신라 성덕왕 시절인 724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상원사 법당인 청량선원에는 국보 제221호인 목조문수동자좌상이 모셔져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에 얽힌 세조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세조가 병을 고치기 위하여 월정사에서 참배하고 지금의 선재길을 따라 상원사로 향하던 중에 몸에 난 종기를 씻기 위해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근처에서 한 동자승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불러 등을 씻겨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임금의 몸에 종기가 있는것을 남들에게 알리기 싫었던 세조는 동자승에게 임금의 몸을 씻겨줬다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 것을 부탁하자, 그 동자승이 말하기를 “임금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 보살을 직접 보았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깜짝 놀란 세조는 다시 그 동자승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오랜 시간 세조를 괴롭히던 종기가 흔적도 없이 나았다고 한다. 이에 세조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동자승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을 그리게 하고, 그 그림을 바탕으로 문수동자좌상을 조각하게 하여 이 곳 상원사 청량선원에 모셨다고 한다.

아담한 규모의 상원사는 둘러보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사찰 경내에 위치한 상원사 동종은 성덕왕 시절인 72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469년 조선 예종의 명에 따라 지금의 안동 지역에 위치해 있던 동종을 상원사로 옮겼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라고 한다. 상원사를 가면 잠시 앉아 마음을 씻고 올 수 있는 청량다원이 있다.

▲ 김진규 에디터 제공
▲ 김진규 에디터 제공

이른 아침 출발하여 든든히 아침을 먹었으니, 차 한잔 하면서 잠시 쉬어 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사찰에 있는 다원이다 보니 잔잔한 명상 음악과 함께 잠시 앉아 마음 에 안정을 주는 글귀들을 읽다가 가도 좋다. 30분 정도 앉아 차를 즐기고는 서서히 몸을 움직여 본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길이기는 하나 9KM 거리의 산길은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계곡을 따라 물들어 가는 단풍도 설레고 천년 치유의 길인 선재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는 것, 그 자체가 설레는 길 이다. 지금의 도로가 나기 전에 스님들과 불교 신도들이 걷던 산길,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길을 오르고 또 내려왔을 까?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풀내음과 함께 몸과 마음이 정화 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오대산이 주는 느긋함에 빠져 보자. 

상원사를 출발하여 출렁다리, 자생식물 관찰원, 월정사를 거 쳐 전나무 숲길까지의 긴 거리를 너무 서두르지 말고 오히려 몸과 마음에 쉼표를 찍어 주면서 천천히 걸어 보자.

▲ 김진규 에디터 제공
▲ 김진규 에디터 제공

잠시 쉬는 시간을 포함하면 4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탐방로 곳곳에는 고사목들이 늘려 있는데, 마치 원시림을 걷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자연 그대로가 주는 편안함에 일상에서 가져온 모든 번뇌와 아픔들을 다 내려 놓게 한다. 선재길을 내려오다 보면 중간 중간 다리를 통해 좌우를 왔다 갔다 하게 되는데, 오대천 뒤로 보이는 오대산의 웅장한 산세를 닮은 시원한 물소리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시원해지 는 느낌이다.
자연 그대로를 느끼면 최대한 천천히 걷는 것이 선재길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인 것 같다. 선재길을 걷다 보면 과거 화전민 마을의 흔적들도 표시를 해 두었는데, 1960년대 화전정리 사업을 하면서 지금은 그 흔적들만 표식으로 남아 있다. 

선재길 중간 중간에는 쉬어 갈 수 있는 쉼터 들이 있는데, 목적지만 바라보고 서두르기 보다는 잠시 쉬어 가면서 자연이 주는 치유의 기운을 듬뿍 받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게 선재길을 택한 이유일 것이기 때문이다.

▲ 김진규 에디터 제공
▲ 김진규 에디터 제공

 

평소 목표만 보고 달려가던 몸과 마음에 쉼을 주는 것, 일상과는 쉼표를 통해 거리를 두어 보는 것, 과거 세조가 그렇게 했듯 쉼을 통해 몸과 마음을 충분히 회복하는 것, 아마 이런 것들이 선재길에서의 깨달음이요 힐링일 것이다. 

오대산 자생 식물 들을 복원하기 위하여 만들어 둔 자생식물 관찰원에서도 잠시 머물며 야생식물들을 보고가자. 운이 좋으면 막 꽃망울을 터트리는 야생화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소하나 명확한 선을 그리는 야생화는 자연의 변화에 따라 그 여린 생을 만들어가고 또 다음 시간을 위하여 꽃을 피우고 씨를 흩날려 보내는 반복의 삶을 만들어 간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것이 이런 것일게다.

탐방로에는 과거 화전민들의 주요 통로가 되었을 법한 섶다리도 재현해 두었다. 
길 중간 중간에서 만난 누군가의 소원이 올려진 작은 돌탑들 그리고 어떤 작가들의 숲속 작품들도 이 길을 걷는 재미다. 월정사로 가까워질수록 계곡의 물은 풍부해지고, 물살은 더욱 힘차다. 계곡을 보는 것으로 또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월정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로 오대산의 대표적인 사찰이며, 고려시대 석탑인 팔각 구층 석탑(국보 제 48-1호) 으로도 유명하다. 탑은 팔각모양의 2단 기단위에 9층 탑신을 올린 뒤, 머리 장식으로 마무리를 하였는데, 그 앞에 공양하는 모습의 석조 보살 좌상(국보 제 48-2호)이 마주보고 있다. 과거 자장이 중국 유학할 때 문수보살을 만난 뒤 다시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하여 정진한 터라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세조 때의 전설과 더불어 문수보살과의 관계가 깊은 곳이다.

문수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반야경을 편찬한 보살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월정사도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하여 많은 행사들을 주관하고 있으며,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비보이 공연도 한참이었다. 잠시 앉아 공연을 즐긴 후에, 국내 3대 전나무 숲으로 유명한 월정사 전나무 숲으로 향한다.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있는 전나무 숲은 그 짙푸름이 세상과의 차단을 줌과 동시에 푸른 기운을 한껏 뿜어내 준다. 삼림욕이란 단어를 굳이 가져올 필요도 없다. 그 길을 걷는 것 만으로도 그리고 그 속 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치유와 힐링을 느낄 수 있다.

▲ 김진규 에디터 제공
▲ 김진규 에디터 제공

일상에 지쳐 쉼이 필요하다면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요, 치유이고 힐링인 오대산 선재길을 걸어보자. 조금 일찍 나선다면 당일치기로도 충분하고,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진고개를 넘어 동해 바다를 볼 수도 있다.
주문진 영진해변에 들러 도깨비 촬영지도 들러 보고 해산물로 만든 꽤 괜찮은 식사를 하고 와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며 일상으로 돌아갈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면 다시 세상과 마주할 용기와 힘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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