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과육 제대로 우러난 차 한잔에 곁들이는 잔잔한 음악, 그리고 편안한 작품들
전등사를 품은 산길따라 봄을 맞이하고, 맛집까지 쉼의 자유를 내어주는 강화도

 

죽림다원
죽림다원

2월은 설날 연휴로 일하는 날이 작고, 3월은 첫 날부터 3.1절 행사로 공휴일이다. 근무일수가 적다고 해야 할 절대 업무량이 줄지 않는 직장인들은 꽤나 바쁜 일정으로 숨이 턱턱 막혀올 것이다. 주말아침,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이불 속에서 뒹굴 거리며 쉼을 구걸하기 보다는 뭔가 의미 있는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을 선택한다. 문득 문득 머리 속을 맴도는 곳, 차를 몰아 안개 속으로 달려 본다. 서쪽으로 이동할수록 가시거리는 줄어들고 마치 영화를 보듯 전설 속으로 빠져든다.

주차비를 지급하고는 입장권을 발급받는다. 그리고 잠시 걷는다. 평상시 같으면 전등사에 들러 머물다 내려가는 길에 잠시 사진만 찍고 지나쳤을 터인데, 오늘은 다르다. 

죽림다원에 들어가 가장 인기 좋은 메뉴가 무엇인지 묻는다. 1등이 대추차라고 한다. 주문을 하고는 적당한 안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차 한모금을 넘긴다. 대추 속살의 질감이 그대로 들어오면서 함께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입천장이 데일 듯하다.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나이테가 선명한 테이블과 대추차 그리고 낮게 깔리는 편안한 음악은 지쳐있는 방문객에 편안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잘 살고 있는가”, “대추차의 뜨거움만큼이나 강했던 그 열정은 그대로인가” 문득 떠오르는 두 가지 질문.

그래 이 두 가지 질문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구나. 다원 구석구석을 장식한 작품들이 주는 정감과 편안함 속에 약간의 미동도 없이 테이블 나이테만 뚫어지게 바라다 본다. 다원 밖으로부터 전설이 깃든 500년도 넘은 은행나무 그늘이 드리우는 이 곳은 쉽게 지나치기 쉬운 절에 딸린 작은 다원이었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이 곳이 주는 편안함의 의미를 알게 된다. 왜 그토록 머릿속을 맴돌았던 지도. 지쳐 있었구나. 그래 꽤나 힘들었구나. 
 

죽림다원의 내부장식들
죽림다원의 내부장식들

차 한잔을 비워갈 때쯤 죽림다원의 내부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휙 돌아보고 나갔을 때는 보지 못했던 아기자기함. 복잡한 듯 단순한 작품 배열 그리고 천정을 드리우는 장식들. 야외 테이블 하나 하나까지 꽃을 놓아둔 정성. 단순한 찻집이 아니다. 찾는 이 하나하나에 쉬어갈 공간을 내어주기 위한 정성과 배려가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직접 달인 대추차가 주는 깊고도 깊은 맛이 나지막이 드리우는 음악 그리고 아기자기한 작품들과 잘 조화를 이루며 지친 이들의 상처를 봉합해 준다.

벽을 따라 진열된 작품들을 돌아보던 중,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있어 옮겨본다. 생명을 상징하는 봄과 고찰이 주는 공양이라는 의미가 오묘하게 어우러진다.
 

공양송
이 밥은 숨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이 밥으로 땅과 물이 나의 옛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이 밥으로 우주와 한몸이 됩니다. 그리하여 공양입니다. 온몸 온마음으로 온생명을 섬기겠습니다.

수경의 글을 이철수가 새기다. 
 

전등사
전등사

죽림다원을 나와 전등사로 향한다. 꽤 방문을 했던 곳이라서 모든 풍경이 익숙하다. 가을이면 은행나무를 담기에 좋고 여름이면 푸르름이 좋고 봄이면 새싹과 꽃이 좋다. 

아무것도 없는 때라도 전등사 기둥하나하나까지 깊이가 있어 그 자체로 좋은 곳이다. 여행작가 과정 졸업작품 전시회를 준비하며 전등사 기둥을 담은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솟대를 세우고 소원지를 달아둔 곳을 배경으로 방문객들의 웃음이 배어 나온다. 아침 일찍 길은 나선지라 아직 시간이 이르다. 전등사 주변은 서해랑 길이라는 이름의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쌓아둔 작은 돌탑들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걸어 본다. 가끔 산책을 즐기는 몇 분이 보인다. 
 

정족산 정상에서
정족산 정상에서

나즈막한 정족산 정상이다. 손글씨로 적은 222.5m 높이의 정족산 정상을 알리는 나무 팻말도 세월을 그대로 담았다. 서해 바다의 너른 갯벌이 펼쳐지는 길을 따라 다시 절로 향한다. 이 곳 전등사 점심 공양은 참 맛있는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점심특선을 광고하는 블로그 글귀를 따라 원두막 가든으로 향한다. 

큰 기대 없이 갔는데, 혼자 점심으로 먹기에는 과한 반찬이 차려진다. 가마솥밥 정식은 가마솥밥에 우렁쌈장과 된장 뚝배기 그리고 이 곳 특산물인 순무김치 등 9가지 반찬이 나오고 쌈이 더해진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데, 9가지 반찬 모두 정갈하고 맛이 있다. 

일반 식당에서 구색으로 내어 놓는 반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떻게 남김없이 다 비울까를 고민하게 한다. 밥과 적당한 비율로 쌈을 싸서 우렁된장을 올리고, 된장국과 9가지 반찬을 차례로 맛을 본다. 혼자 먹기 과하나 남기지도 못할 맛이다. 식사를 했으니 커피를 한잔 마셔야 하는데 마땅한 정보가 없다. 전국 커피집 투어를 하는 아우에게 전화를 하니, BLACK PEARL이라는 곳이 괜찮다고 한다. 주소를 물어 찾아간 곳에는 나즈막한 외딴 건물에 간판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 
 

젊은 사장님의 라떼아트 솜씨가 좋은 '블랙펄'
젊은 사장님의 라떼아트 솜씨가 좋은 '블랙펄'

내부를 들어서니 창밖으로 보이는 서해 갯벌과 그 너머로 초지대교가 얹어진다. 핸드드립을 주문할까 잠시 고민하다 이 집 젊은 사장님 라떼아트 솜씨가 좋은 것 같아 라떼를 한잔 주문한다. 종이컵 2개가 나와서 1잔 주문했는데 라고 말을 흐리니, 한잔은 물이라며 혹시 커피가 모자라면 더 드리겠다는 넉넉한 웃음을 보인다. 

블랙펄의 존재이유는 자유라는 글귀가 보인다. 야구선수 출신인지 매장 곳곳에 야구 선수들의 사인이된 머그잔들이 전시되어 있고, 식물들이 매장을 채우고 있다. 어떤 이유로 자유라는 말에 의미를 두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지만 자유라는 말이 주는 편안함은 죽림다원에 이어 또 다른 편안함을 준다.  

창 밖의 시원한 풍경과 쉼 없이 바쁜 차들을 조용히 품어주는 초지대교. 어쩌면 바쁜 일상과 쉼을 연결하는 다리다. 넘어가면 다시 바빠질 것이고, 넘어오면 쉼과 함께 편안해 질 것이다. 안개까지 자욱한 날은 그 신비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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