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팅힐은 영국 웨스트런던 즉, 하이드파크 북서부에 위치한 곳이다. 지역의 다른 특성들 보다 로멘틱 코미디 영화 ‘Notting Hill’로 더 유명한 그 곳, 출장길에 짬을 내어 노팅힐 촬영지로 들어가 본다.
주말 아침 시간을 내어 도착한 노팅힐은 영국의 날씨가 그러하듯 약간의 비가 내리고 있다. 큰 비는 아니기 때문에 길거리 상점에서 우산을 하나 구매하기로 한다. 영국 국기, 유니온잭으로 디자인된 그래서 기념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간이 우산이다. 길거리에는 클래식한 차들부터 건물까지 수십년을 거슬러 올라온 듯한 느낌의 거리다.
어디로 카메라 렌즈를 맞춰도 꽤 괜찮은 사진이 나올 듯한 그런 느낌이다. 웨스트런던(65 Portobello Rd, London W11 2QB)에 위치한 노팅힐은 지하철을 타고 Notting Hill Gate역에서 내리면 된다.
런던을 대표하는 쇼핑가로 멋진 카페, 가게, 레스토랑들이 많으며, 이곳은 1950~1970년 대에 카리브 해안과 서인도 제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노팅힐 포토벨로 거리에는 벼룩시장 개념의 포토벨로 로드마켓(Portobello Road Market)이 매주 토요일에 펼쳐지는데, 2000개 이상의 가게들로 구성된 런던 최대의 벼룩 시장으로 골동품, 일용잡화,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한다.
토요일이 아닌 날에 방문한다면, 골동품 가게가 많은 상점 북쪽으로 가보자.
평일에도 노천 시장이 열리기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으로 볼거리가 많다. 그리고 매년 8월 마지막주 토요일에서 월요일까지는 노팅힐 카니발이 열리기 때문에 이 시기에 런던을 방문한다면 꼭 노팅힐을 가볼 것을 추천한다.
노팅힐 카니발은 1950년대부터 카리브리아인들이 밀집한 지역에서 생겨난 축제로 카리브 해안 스타일로 분장한 연출자들이 춤과 거리 공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한때 150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큰 길거리 축제 중 하나로 손 꼽힌다.
필자가 런던 방문중 굳이 노팅힐을 찾은 것은 세계적인 대배우와 평범한 일반인의 사랑을 재미있게 그려낸 영화 ‘Notting Hill’의 현장을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애너스콧(줄리아 로버트)과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의 이어질 듯 끊길 듯 이어지는 사랑이야기가 두시간이 넘는 영화 상영에도 그대로 몰입하게 하는 노팅힐, 그 배경이 된 이곳은 유럽의 일반 주택가라고 보기에는 독특한 특성이 있는 배경 그리고 영화에서 봤던 그 곳을 직접 찾고 싶었다는 욕심이 더 컸을 것이다.
영화에서 봄직한 익숙하지만 상당히 특색이 있는 노팅힐의 거리는 우연히 발견한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고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책을 구매하게 한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보다는 생각날 때 읽으면 편안한 그 책은 아직도 서재에 보관중이다. 길거리 어느 가게를 들어가도 기념품으로 소장하고 싶은 물품들이 있어 마음에 드는 몇 가지를 골라 담는다. 런던의 일반 관광지에서 판매하는 것과는 뭔가 느낌이 다른 조금은 더 올드한 또는 전통적인 느낌이랄까? 한국의 인사동에서 뭔가를 집어드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지금도 눈앞에 스토리 전개가 펼쳐지는 꽤나 인상 깊었던 영화, 노팅힐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1999년 개봉한 노팅힐 영화는 개봉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속에 그 잔상이 깊게 남아 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스토리라고도 볼 수 있지만, 줄리아 로버트와 휴 그랜트의 대사 하나 그리고 표정 하나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래서 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보다는 DVD Player를 켜고, 제법 나이가 있는 홈시어터를 통해 그 대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영화다.
쥴리어 로버트(극중 애너 스콧, Anna Scott)의 웃는 얼굴을 크게 담고 그 밑에 포스터 앞을 지나는 소심하나 다정해 보이는 휴 그랜트의 모습이 영화, 노팅힐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또한 포스트 속 부제와 같은 문구 하나가, “Can the most famous film star in the world fall for the man on the street?”, 영화 전반의 내용을 잘 담아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신데렐라의 남성형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휴 그랜트(극중 윌리엄 태그, William Thacker)와 같은 집에 사는 괴짜 친구 리스 이판(극중 스파이크)도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영화의 재미 요소들을 더한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웨스트 런던의 노팅힐에 사는 이혼남인 윌리엄 태커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로 노팅힐 시장에서 작은 여행전문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 하루의 반복된 일상을 이어 나가고 있던 어느 날, 유명 영화배우 애너스콧이 우연히 윌리엄의 서점에 들러 책을 사가는 일이 생기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더 큰 우연은 오렌지 주스를 사오던 윌리엄은 골목 모퉁이를 돌던 애너와 부딪히면서 그가 들고 있던 음료가 쏟아져 애너의 옷이 다 젖게 된다. 당황한 윌리엄은 애너를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씻고 옷을 갈아 입게 하는데, 집을 나서던 애너가 갑자기 윌리엄에게 키스를 한다.
세계적 대스타의 충동적인 행동일까 아니면 윌리엄의 호의에 대한 순간적인 끌림일까.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내면에 흐르는 어떤 감정선이 그녀를 건드린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참으로 영화다운 이야기의 전개는 결국 두사람의 결혼으로 이어지고, 한가로운 공원 벤치에서 임신한 애너가 책을 읽고 있는 윌리엄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는 참으로 여유롭고 행복한 모습으로 마무리가 된다.
영화의 OST인 ‘SHE’라는 노래도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데, 영화의 내용과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The meaning of my life is she. She. She…어쩌면 두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이 앤딩 장면은 세계적인 대스타로서의 화려함과 그에 따르는 쉽지 만은 않은 일상들을 뒤로한 애너의 작고 소중한 꿈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하면서 길고도 긴 여운을 준다.
무대에서의 화려함 그리고 많은 좋은 것들을 누리는 반면 행동 하나하나가 노출되는 마치 유리관 속에서 사는 듯이 자유를 구속당하는 대스타의 삶과는 정면으로 대조되는 설정. 어느 오후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공원에서 여유롭고 쉬며 느끼는 작고 소중한 행복의 가치.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많은 생각으로 그 여운은 더욱더 길고 잔잔해진다.
아쉽게도 영화 속 윌리엄이 운영하던 서점은 다른 가게로 바뀌어서 그 모습 그대로를 보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아마도 다른 서점에서 시간을 더 보낸 것 같다.
독특한 분위기의 노팅힐 거리는 영화에서의 잔상만큼이나 긴 여운을 주는 여행이다. 길거리 카페에서 정통 영국식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걷고 사진을 담고. 그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주말이 끼어 있는 출장은 또 이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움을 준다.
삶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노팅힐에서의 하루는 긴 인생 여정에서 톡 튀는 하루일 것이다. 유럽의 다른 도시와는 다른 특별한 문화를 가진 노팅힐은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이곳을 기억하게 하고 또다시 이곳을 찾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언젠가 시간의 여유가 더 있다면 시내의 호텔보다는 이 곳에서 몇 일을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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