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1 _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김예채 컬럼니스트

‘이제 당신이 행복할 차례입니다’ 저자
‘마음에도 길이 있어요’ 저자
유튜브 '역사투어하는 여자' 채널 운영중

▲ 중국 상해 임시정부 입구
▲ 중국 상해 임시정부 입구

바쁘게 살던 어느 하루, 문득 지금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멈춰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정말 원하던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싶었어요. 저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제가 있는 자리에서 떠날 필요를 느꼈던 거죠. 

제 안의 수많은 질문에 답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장소로 택한 곳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였어요. 중국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여덟 개 지역으로 청사를 옮겨가며 활동했는데, 상하이 청사는 임시정부가 처음 세워진 독립운동의 근거지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앞날을 알 수 없는 불안함 속에서 임시정부를 세웠던 그들의 마음이 지금의 저와 같다는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안함은 늘 기대감과 공존하잖아요. 첫 임시정부 청사를 향해 가는 제 마음에도 그곳에서 만나게 될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과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함께 일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끌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백범일지’에 기록된 당시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당시 상해에 있는 한인은 500여명 가량 되었다. 그 가운데 약간의 상업 종사자와 유학생, 열 명 남짓의 전차 회사 검표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본국, 일본, 미주, 중국, 러시아 등에서 모여든 지사들이었다. 국 13국 각 대도시는 물론이고, 궁벽한 항구나 시골에서도 독립만세를 부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물 끓듯 했고, 해외 우리 한인들도 어디에 거주하든지 정신으로나 행동으로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중략)
상해에 모여든 여러 청년들 중심으로 정부 조직이 운동 지전에 절대 필요하다는 소리가 안팍으로 점차 높아져, 각 곳에서 상해에 온 인사들이 각각 대표를 선출하고 임시 의정원을 조직하여 임시정부를 만드니,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 중국 상해 임시정부 입구
▲ 중국 상해 임시정부 입구

임시정부는 1번부터 10번까지 호수가 붙은 2층짜리 건물들 가운데 3번부터 5번까지를 청사로 사용했습니다. 이 중에는 아직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곳도 있어 소란을 피우거나 통행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놓았고, 그러한 건물 앞에는 여전히 번호가 붙어있었죠.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쓴 현판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작아서 저는 그만 지나칠 뻔했습니다. 아무래도 임시정부 청사이니 건물도 크고 알아보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작은 구멍가게를 보는 듯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죠. 빨간 벽돌 위에 붙은 금색 현판은 너무 작은데다 그늘에 가려 반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임시정부 청사는 큰 도로가 아닌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었죠. 
이렇게 좁은 골목 안, 그중 작은 방 한 칸에 청사를 마련했다니!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상황과 환경을 따지고 최소한의 틀 정도는 마련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이 작은 방 한 칸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열악한 상황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를 넘어서서 임시정부를 세우도록 그들을 이끌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작은 방에서 임시정부를 시작하게 됐을까요? 

꼭 해야만 하는 어떤 선택이나 결정 앞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숨어버리거나 거절해왔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온갖 핑계는 그럴 때마다 더 많이 고개를 내밀었고, 저는 한 걸음 떼기보다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데 익숙했어요. 

▲ 중국상해임시정부 푯말
▲ 중국상해임시정부 푯말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작은 방 한 구석에서도 나라의 미래와 독립에 대한 꿈을 가졌던 그들의 용기를 보며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꼭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여건이나 환경을 탓하고 갖추어진 조건이 생겨야 할 수 있다는 핑계와 변명을 댔던 제 자신이 창피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습니다. 남의 나라 중국의 뒷골목에 방 몇 칸 얻어두고 정부 청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일 수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라 잃은 것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금의 저도 방이 작고 건물이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꿈이 작고 가슴이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 작은 방에서도 나라만을 생각하며 서로 용기를 주고 독립이라는 큰 미래를 꿈꿨던 그들처럼,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저는 상황, 환경, 학벌, 부모에게 물려받은 조건을 탓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크기를 넓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죠. 제가 지금 서있는, 제게 주어진 작은 방 같은 곳. 그곳에서 작은 용기로나마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방은 작아도 꿈은 컸던 그들을 닮고 싶어졌어요. 

아마 저에게 필요한 건, 저들이 환경과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뛰어들었던 용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모해 보이지만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단단한 의지가 있는 용기. 현재의 저를 사랑스럽게 그러나 냉철하게 마주하는 용기. 골목을 들어서면서부터 저는 이미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더 자세하게 그리고 천천히 이곳을 둘러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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