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유네스코에서도 인정받은 한국의 산사
절이라는 말보다 정원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곳
나만의 숨겨진 힐링 장소 1순위

순천 선암사
순천 선암사

“가이드님은 지금까지 다닌 여행지 중 어디가 가장 좋으세요?”

나는 현재 글을 쓰고 있는 기자이면서 가이드이기도 하다. 2003년부터 시작한 여행가이드라는 타이틀 앞에 이제는 베테랑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전국으로 패키지여행을 다니며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바로 내가 다닌 곳 중 어디가 좋은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사실은 나만 아는 숨은 비경들을 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SNS의 발달로 지금은 무의미해졌다. 그리고 선암사가 들어간 패키지 코스가 모객이 잘 되어야 내가 가이드를 갈 수 있으니, 이제는 발 벗고 나서며 내가 좋아하는 곳을 널리 알리고 있다. 

가끔 손님에게 순천 선암사를 이야기하면 고창 선운사로 잘못 알아듣는 분이 있을 정도로 아직도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선암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종교를 떠나서 이곳이 주는 따뜻함과 아름다움 때문이다. 

봄이 오는 소식은 고목에서 피어난 선암매로부터 시작한다. 단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 키우는 매화나무가 아니다. 600년이 넘도록 이곳 선암사에서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선암매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은 다른 매화 향과는 기품이 다르다. 

매화가 지고 나면 그다음 순서는 마치 꽃다발을 연상시키는 겹벚꽃이다. 겹벚꽃 나무 역시 고목이어서 그 자태를 보면 자연스레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는 말을 뛰어넘어 멋지다는 말을 하게 된다. 겹벚꽃이 떨어지고 나면 바닥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다. 그 분홍빛 카페트에 앉아 사진을 찍었던 나의 20대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서 가끔 이 시기가 되면 템플스테이를 하러 선암사를 찾아간다.
 

순천 선암사
순천 선암사

매화와 벚꽃 다음으로 차례를 기다리는 꽃은 철쭉과 영산홍이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철쭉과 영산홍은 오래된 산사를 아예 짙은 분홍색으로 색칠한다. 그렇게 선암사의 봄은 순서대로 꽃들이 피기위해 대기하고 있다가 꽃망울을 터뜨린다. 가이드로 선암사를 매주 다니면서 나는 이곳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선암사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님도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추천한 사찰이 바로 이곳 선암사이기도 하다. 책에서 유홍준 교수님이 외국인 손님에게 이곳을 “Deep mountain”이라고 설명하자, 외국인 손님이 처음에는 영어에는 그런 단어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직접 선암사에 오더니 “Deep mountain”의 뜻을 알겠다고 했단다. 그만큼 선암사는 산 깊숙이 숨어있는 절이다.

물론 그렇다고 선암사를 올라가는 길이 험난하다는 뜻은 아니다. 평지로 걸어서 20분정도 올라가면 바로 선암사에 도착을 한다. 간혹 템플스테이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일주문까지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지만,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올라가는 길을 꼭 걸어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왼쪽에 흐르는 계곡 때문이다. 

계곡물이 너무 깨끗해서 선녀도 내려와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계곡을 걷다보면 강선루(降仙樓)의 2층 누각과, 승선교(昇仙橋)라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선녀가 강선루로 내려와 목욕을 하고 승선교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다. 그러니 이 계곡을 차를 타고 지나가면 멋진 풍경을 주마간산으로 구경만 하는 것이다. 
 

선암사 승천교
선암사 승천교

승선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무지개다리(홍교虹橋)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힌다. 보성 벌교의 홍교도 선암사 스님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승선교가 바로 선암사의 대표 포토존이다. 무지개처럼 보이는 아치형 안에 강선루가 보이는 장면이 바로 선암사의 대표 얼굴이다. 그렇게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오른쪽에 작은 연못이 보인다. 삼인당이라는 연못이고 여름이면 상사화로 이곳 역시 붉게 물든다.

삼인당에서 일주문까지 올라가는 흙길 오른쪽으로는 예전에 이곳 주지스님이셨던 지허스님이 재배한 자생차밭이 나온다. 

우리나라에 800년이 넘은 자생차밭이 바로 이곳 선암사 뒤쪽에 있다. 이곳은 스님들이 참선을 하기 위해 재배한 차밭이어서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다. 매표소 앞에 그림지도에도 그려져 있을 정도로 이곳은 아주 유명한 곳이다. 

일반 녹차가 아닌 우리나라 자생차는 그 맛이 누룽지처럼 구수하다고 하다. 일부러 재배하기 위해 키운 차밭이 아니다보니 라인을 맞춰서 예쁘게 정리된 밭이 아니다. 그냥 자연 그대로의 차밭이다. 가끔 스님들이 드시고 남는 차는 일주문을 지나 기념품가게에서 소량 판매하고 있다.

선암사는 영화 취화선, 아재아재바라아재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같은 임권택 감독님 작품이라는 것이다. ‘지허스님의 차’라는 책에 따르면 임권택 감독님은 이곳 선암사를 매우 좋아하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자생차보존협회 회장님이시기 때문이다.

선암사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차 부뚜막도 있다. 차를 수확하고 가마솥에 덖어 말리는 작업과 찻물을 끓이는 차 주전자가 대롱대롱 달려있는 차 부뚜막 역시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선암사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꼭 해우소에 들렸다 가자. 일명 냄새가 나지 않는 해우소. 그곳에 가면 ‘깐뒤’라고 적혀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면 뒤깐이고, 한 칸 띄워 이야기하면 ‘깐 뒤’로도 읽혀질 수 있다. 이곳이 일명 ‘냄새가 나지 않는 화장실’로 유명한 이유는 나무 창살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옆에 칸막이는 있고 문은 없는 정말 재래식 화장실이지만 이곳 선암사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이다. 정호승 시인도 이곳에서 <해우소>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선암사에서 빠뜨리고 지나치면 서운한 곳이다.

영화 동승에도 나온 선암사는 가을 단풍도 아름다운 곳이다. 겨울에 눈 덮인 산사 역시 멋진 곳이어서 나는 선암사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사랑한다.

나를 기다리는 핑크빛 꽃방석과 봄의 꽃향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선암사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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