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김정민 | 앙상블 안음 대표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륵 잠이 듭니다.

▲ 김정민 소프라노 제공
▲ 김정민 소프라노 제공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지막이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우리나라 자장가 중에서도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섬집아기’의 가사이죠. 가장 연약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로 태어나는 아기가 세상에서 제일 먼저 듣게 되는 노래는 엄마의 ‘자장가’입니다.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엄마의 음성은 낯선 세상에 있는 아기에게 친숙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멀리서 들려오는 엄마의 노랫소리에 아기는 반응하고, 평온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 자장가들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음이 높지 않고, 박자는 느린 편입니다. 단순하면서도 반복되는 구절 덕분에 누가 들어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지요. 언제부터 자장가가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플라톤도 자장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 아마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것 같습니다. 

태어난 후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소리로는 여전히 연결된 엄마와 아기의 자장가가 지닌 신비를 알아보고자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중 토론토 대학의 산드라 트레헙(Sandra Trehub)팀의 실험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팀은 스트레스 지수를 알 수 있는 코르티솔(Cortisol) 수치를 측정해 엄마의 노래가 아기의 스트레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줄 것만 예상했던 그들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답니다.
코르티솔 수치가 높은 아기들은 예상대로 낮아졌지만, 실험 전 이미 수치가 낮았던 아기들은 엄마의 노랫소리를 들은 후 적당한 수준으로 높아졌던 것입니다.

즉 엄마의 노랫소리는 흥분한 아기들은 진정시켜 주고, 활력이 없는 아기에게는 좋은 자극이 되어주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목소리로 부르는 자장가가 아기와 부모의 애착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반복되는 멜로디는 아기에게 예측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대화보다 더 안정감을 느낀다고도 합니다. 잠을 재우기 위한 방법으로만 생각했던 자장가에 이렇게 큰 역할이 있었다니. 아무리 좋은 노래들이 많이 만들어져도 오직 한 명의 관객에게만 불러주는 애정과 사랑이 듬뿍 담긴 자장가는 대체될 수 없겠지요.

최초의 자장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가장 유명한 자장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불리는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의 ‘Wiegenlied(자장가/비겐리트/1868년 작)’입니다. 요람의 뜻을 가진 ‘Wiege’과 노래라는 뜻의 ‘Lied’가 합쳐져 자장가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상상이 되지 않나요. 아기는 요람에 평온하게 뉘어있고, 엄마는 아기가 잠깰라 요람을 살며시 흔들며 나긋나긋 부르는 모습이 말이죠. 

▲ 김정민 소프라노 제공
▲ 김정민 소프라노 제공

 

브람스는 슈만, 클라라와 인연이 깊은 독일의 작곡가입니다. 슈만 부부의 인정과 서포트 덕분에 무명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 음악가가 되었고, 생이 다할 때까지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다양한 나라와 도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그는 고향이었던 독일 함부르크의 여성합창단 지휘를 맡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의 브람스는 합창 단원이었던 베르타 파버(Bertha Faber)를 사랑하게 되었지요. 베르타는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만든 빈(Vienna) 스타일의 왈츠 곡을 종종 브람스에게 들려주었고, 브람스는 그 노래 듣는 것을 꽤나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훗날 베르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고, 그녀는 둘째로 태어난 아들에게 브람스의 이름을 붙여 ‘요하네스’라 불렀습니다. 유명 음악가였던 브람스에 대한 존경 때문이었는지, 브람스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람스는 그 소식을 듣고 그녀와 아이를 위한 선물로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브람스는 클레멘스 브렌타노가 1805년에 쓴 독일 민요 모음집인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에 나오는 시에 베르타가 즐겨 부르던 왈츠 선율을 입혔습니다. 출판되고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1절만 있었던 자장가는 2절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2절의 가사는 독일의 작가 게오르그 쉐러가 1849년에 만든 <독일 어린이 그림 동화(Illustriertes deutsches Kinderbuch>에서 나왔습니다. 자장가를 부르는 엄마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원어에 가깝게 번역해 보았습니다. 

잘 자라, 잘 자라
장미로 덮이고, 정향으로 꾸며진  
요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일 아침 일찍
너는 다시 깨어나리.

잘 자라, 잘 자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고,
꿈속에서 너에게 
아기 예수 트리를 보여줄 것이니
이제 행복하고 달콤하게 잠들 거라.
꿈속에서 천국을 보려무나.

이 시가 쓰인 당시 독일의 많은 문학작품은 신의 섭리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인간의 겸손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시는 아기를 향한 신의 긍휼뿐만 아니라 엄마의 간절한 바람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장미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장미로 요람 지붕을 덮음으로서 사랑으로 아기를 보호하고픈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정향’도 함께 주곤 했는데 향이 좋을 뿐만 아니라 해충을 쫓고, 통증 완화와 항염 효과도 있었다고 합니다.

위생 관념이 약하고 공중보건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던 시대였기에 영유아들은 질병이나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성스레 장미로 장식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향을 꽂는 모습은 아기를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엄마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선율은 안온하고 아기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없이 다정했지만, 그 안에 감춰진 내일의 불안함으로 더 간절히 불렀을 자장가. 평온하게 잠이 들고, 건강하게 눈을 뜨는 하루하루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 김정민 소프라노 제공
▲ 김정민 소프라노 제공

브람스의 자장가는 가장 아름다운 자장가라 평가받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생기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럽의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브람스가 음악인으로 성공을 달리고 있을 무렵 유럽은 자유를 위한 혁명과 나라 간의 전쟁이 잦았고 이로 인한 경제적 불황과 빈곤은 커져만 갔습니다. 이때 많은 독일 사람들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었고, 그렇게 흩어진 사람들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죠. 그렇게 브람스의 자장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장가가 되었습니다. 

브람스는 곡을 완성한 후 이런 편지와 함께 봉투에 넣어 그녀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베르타, 어제 당신의 아들을 위해 자장가를 만들었소.

당신이 아들을 위해 이 자장가를 부를 때면 아마도 이 노래가 사랑을 속삭이는 한 남자의 노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겠지”

분명 아기를 위한 자장가였지만 브람스는 그것을 핑계 삼아 어지러운 시대 속에서 사랑했던 여인의 안녕 또한 바랐던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를 보호하고픈 마음은 사랑의 가장 강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미처 깨닫지 못한 수많은 보호 속에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이겠지요. 작고 소중한 아기를 재우기 위해서는 크고 화려한 그 어떤 소리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아기에게만 집중된 작은 소리입니다.

하지만 알고 계시나요? 그 작은 소리를 내는 엄마는 무엇보다 가장 큰 존재라는 것을요.

<음악감상>

제가 좋아하는 소프라노 중의 한명인 Elly Ameling의 Wiegenlied와 
아름답게 편곡된 소프라노 조수미의 Wiegenlied를 함께 나눕니다.

Elly Ameling https://www.youtube.com/watch?v=z2Br9LAh3cM

조수미 https://www.youtube.com/watch?v=BBJpI2LGD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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