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친해지기 #2

소프라노 김정민 | 앙상블 안음 대표

남: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여: 저는 브람스의 ‘Piano Quartet No.3 in C minor, Op.60을 좋아해요.’
남: 아... 저... 그게... 무슨 곡이지요? 

저는 어릴 적 노래를 좋아하고 곧잘 불렀지만, 클래식을 즐겨 듣던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본격적인 성악 공부도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시작하였으니 사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인 사람이었지요. 그런 제가 성악을 공부하게 되면서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접하게 되었는데 마치 수학 공식처럼 보이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악곡에 붙여지는 제목들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크게 기악곡과 성악곡으로 나뉩니다.
기악곡은 바이올린, 첼로 등과 같은 악기로만 구성된 곡이고 성악곡은 사람의 목소리로 연주되는 곡입니다. 기악곡은 독주곡(Sonata, 소나타), 협주곡(Concerto, 콘체르토), 교향곡(Symphony, 심포니) 등으로 나뉘는데 독주곡은 하나의 악기가 솔로로 연주하는 곡이고, 협주곡은 솔로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협동하여 연주하는 곡입니다. 교향곡은 오로지 오케스트라로만 연주되는 곡이지요.

성악곡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페라(Opera)와 독창과 중창과 합창이 있지만, 의상이나 연기 없이 서서 연주하는 오라토리오(Oratorio) 그리고 시에 곡을 입혀 만든 가곡(Lied, 리트) 등으로 나눠집니다. 

가곡은 작곡가가 시에 멜로디를 붙여 만드는 형식의 음악이기에 시의 제목이 자연스럽게 곡의 제목이 됩니다. 오페라에서는 대사를 말하듯이 부르는 레치타티보(Recitativo)나 멜로디와 함께 부르는 아리아(Aria)의 첫 소절이 제목으로 불리게 되지요. 이런 제목들만 익숙하던 저에게 기악곡의 제목은 좀 딱딱해 보이기도 했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너무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기악곡의 제목에는 작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숨겨져 있었답니다. 

‘저는 브람스의 ‘Piano Quartet No.3 in C minor, Op.60을 좋아해요.’

이제 그녀가 좋아하는 곡이 무엇인지 해석해 볼까요?

제목의 처음에는 작품의 악기 구성이 나옵니다.
Piano Quartet(피아노 콰르텟)은 피아노를 포함한 4명의 실내악이라는 뜻입니다. 실내악은 두 개 이상의 악기로 구성된 소규모 편성을 의미하는데 편성된 악기의 수에 따라 명칭이 달라집니다.

보통 바이올린, 첼로가 포함된 3개에서 5개 악기의 편성이 많으며 3명일 땐 Trio(트리오, 삼중주), 4명일 땐 Quartet(콰르텟, 사중주), 5명일 땐 Quintet(퀸텟, 오중주)으로 불린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목을 보고 이 곡은 피아노를 포함한 4개의 악기가 나오는 실내악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협주곡이나 교향곡이라면 Concerto(콘체르토) 또는 Symphony(심포니)로 표기되어 있겠지요. 이어서 나오는 No.(Number, 넘버)는 작곡가가 같은 형태의 음악으로 작곡한 작품 순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No.3은 브람스가 피아노 실내악 사중주의 형태로 작곡한 3번째 작품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나오는 Key(조)와 major/minor(장음계/단음계)가 이 작품의 기본이 되는 조성을 알려줍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실내악 사중주 3번은 다 단조(C minor)의 조성으로 작곡되었네요! 

다양한 브랜드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Op.(Opus, 오푸스)는 마지막에 등장하고 있는데요, 라틴어로 ‘일, 작업’이라는 뜻을 가진 오푸스는 출판된 작품번호를 의미합니다. 기악곡이든 성악곡이든 또는 실내악이든 교향악이든 장르에 상관없이 작곡가가 작곡한 모든 곡의 순서에 따라 붙인 번호이지요.

앞에서 이야기한 넘버가 같은 장르 안에서의 작품 순서라면 오푸스는 전체 작품에서의 순서라는 점이 다릅니다. 오푸스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출판된 작품의 인세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인세를 받은 작곡자 중에 한 명이 베토벤이랍니다. 모차르트나 하이든 같은 베토벤 이전 시대의 음악가들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궁정에 소속되거나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그들과 달리 독자적인 활동을 해 나갔고 잘나가는 1세대 프리랜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악보 출판업 또한 호황을 이루던 시기여서 베토벤은 인세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편적인 오푸스가 아닌 다른 알파벳으로 적힌 작품번호도 있답니다.
오푸스가 적극 상용화되기 이전에는 작곡가의 작품을 정리해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작품번호를 나타내기도 했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작품은 그의 곡을 연구했던 Köchel(쾨헬)의 첫 스펠링을 따서 K, 
모차르트의 Piano Concerto No.20 K466
슈베르트의 작품은 그의 곡의 권위자였던 Deutsch(도이취)의 D, 
슈베르트의 Symphony No.9 D944 
바흐와 헨델은 독어로 Werk Verzeichnis(작품목록)의 첫 스펠링에 바흐와 헨델 이름의 첫 스펠링을 붙여 BWV, HWV로 나타냅니다. 
바흐의 Violin Sonata No.2 in A minor, BWV 1003, 
헨델의 Cello Sonata in G minor HWV 287

우리는 그녀가 좋아하는 곡이 브람스의 작품번호 60번인 피아노 콰르텟 3번 다단조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또 이야기합니다. 

“그중에 3악장을 제일 좋아해요.”  
악장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악장은 작곡가가 하고 싶은 긴 이야기를 장면별로 또는 소재별로 나누어 놓은 에피소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내악을 포함한 협주곡, 교향곡 등의 기악곡 대부분은 보통 3개에서 4개 정도 되는 악장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된답니다. 각 악장은 특정한 제목이 없이 빠르기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브람스 피아노 콰르텟 3번은 4개의 악장을 가지고 있군요.
    
I. Allegro Non Troppo (1악장, 너무 빠르지 않게)     
II. Scherzo: Allegro (2악장, 스케르초(익살스럽게) 빠르게)
III. Andante (3악장, 조금 느리게)    
IV. Allegro Comodo (4악장, 빠르지만 편안하게)

지난 칼럼에서 공연 감상 중 악장 사이의 박수는 지양하자는 이야기도 바로 이 악장을 이야기 한 것이지요. 악장은 Mov.(Movement)로 표기되기도 한답니다. 이제 남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그녀가 좋아하는 곡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암호와도 같고 기호와도 같았던 제목들! 
어쩌면 이 제목 때문에 클래식을 들어보려 했다가도 더 멀고 어렵게 느껴진 적이 있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제목의 정체를 알았으니 한 걸음 다가서서 클래식을 듣기 좋은 계절인 가을, 함께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yAiXNAZ5WE&t=9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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