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김정민 | 앙상블 안음 대표

▲ 베토벤 초상화 @김정민 소프라노
▲ 베토벤 초상화 @김정민 소프라노

어느 날 갑자기 내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혹시 이런 상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이지만 우리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듯 살아갑니다. 세상엔 가슴 아픈 일들이 너무 많지만, 나의 이야기가 되길 바라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런 절망스러운 사건이 내게 벌어진다면, 우리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헝클어진 머리, 고집스러운 표정, 날카로운 눈빛.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초상화는 그를 누구보다 괴팍한 인간으로 묘사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대표곡인 <운명 교향곡>의 시작 ‘빰빰빰빠-’의 멜로디 또한 베토벤을 비극적이며 강한 음악가로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의 다른 초상화를 보면 마치 다른 사람인 듯 순박하고 평범한 얼굴에 놀라게 된답니다. 왜 이렇게 다른 이미지의 초상화가 남겨졌을까요. 누군가 말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내게 보여지는 모습이 그의 전부가 아니다.’ 베토벤의 삶을 들여다보면 깨닫게 됩니다. 찡그린 그의 얼굴은 처절한 삶을 이겨낸 흔적이었던 것이지요. 

음악가들의 삶은 베토벤을 기준으로 달라졌습니다.

베토벤 이전 음악가들은 궁정이나 귀족 가문에 속해서 경제적인 후원을 받아 활동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야 했고 마치 배경음악처럼 행사나 유흥의 한 부분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음악이 한번 연주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행에 따라, 필요 때문에 소비되는 것이 아닌 ‘예술’로서 남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지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다는 것은 멋진 도전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안전장치가 없는 곳으로 걸어가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베토벤은 숙련된 ‘연주자’가 아닌 ‘예술가’로서 살기 원했습니다. 그런 베토벤에게 어딘가에 속해지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이런 행보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고,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점점 그의 음악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났습니다.

베토벤은 당대 가장 잘 나가던 피아노 연주자이자 자신이 연주할 곡을 작곡한 작곡가였으며,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출판업계의 호황으로 작품집에 대한 수입도 점차 늘어났으며, 팬이 된 귀족들의 도움과 후원으로 음악가로서의 부와 명예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 믿을 수 없는 불행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1796년인 20대 중반의 베토벤에게 청력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30대에 접어들면서는 더욱 악화되었고, 1817년 그의 청력은 완전히 상실되면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은 끝나게 되었습니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연구가들은 발진티푸스라는 병에 걸린 뒤 생긴 후유증일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베토벤은 청력 이상 외에도 평생을 폐렴, 만성 복통, 간경변, 황달, 류머티즘 등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나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찾아오는 절망.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요. 베토벤은 낫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의사들이 처방하는 것들을 성실히 따랐지만, 귀는 점점 악화될 뿐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음악가로서 인간관계도 원만했던 그는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때로는 대화를 먼저 막기 위해 괜히 화를 내며 자리를 뜨기도 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성질이 고약한 이미지의 베토벤은 이 시기에 생긴 것이 아닐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베토벤에게 의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인 하일리겐슈타트에서의 요양을 추천했습니다.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떠나 정서적인 안정을 누리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지요.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동생들에게 유서를 남기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찾아온 고독과 절망을 벗어나지 못했던 베토벤은 결국 죽음을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 나의 병은 점점 더 악화되었고, 나아질 것이란 희망은 포기했다. 이 때문에 사교적이던 나는 사람들을 떠나 고독하게 살아야만 했다. (...) 나를 고집스럽고 괴팍하다고 말하는데 그들이 나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가!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저는 귀가 안 들려요. 조금 더 크게 이야기해주세요.”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누구보다 완벽한 감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이런 결함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 나는 너무나 고독하다. 필요한 때에만 사람들을 만나지만 혹시나 그들이 내 병을 알아차릴까 두려워 급하게 자리를 떠나기도 한다. 비참하다.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모두 듣는데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 너무 절망적이어서 나는 죽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나를 다시 삶으로 이끈 건 예술이었다. 내게 주어진 이 사명을 다 마치기 전까지 나는 세상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비참한 삶을 이어가기로 하였다. (...)

-1802년 10월 6일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작성한 유서 사진 @김정민 소프라노
▲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작성한 유서 사진 @김정민 소프라노

 

이 유서는 사후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상실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예술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베토벤은 세상을 등지기 위해 유서를 쓰다가 오히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 희망을 찾았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소리를 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사명을 지키고자 한 그의 의지가 얼마나 숭고하게 느껴지던지요. 마음먹은 이상 천재적인 음악가였던 그에게 청각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면의 선율들은 아름다운 화성을 창조하였고, 연주자의 활 움직임을 보며, 몸짓을 보며, 악보에 쓰여진 음표들을 보며 눈으로 음악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 시기 동안 <교향곡 영웅(Eroica)>, <발트슈타인(Waldstein)>, <열정(Appasionata)>, <바이올린 협주곡 4번>, <피아노 협주곡 황제(Emperor)> 등 대작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베토벤은 가족문제로 또 한 번의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긴 침체기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금 작품들을 만들며 드디어 그 유명한 <교향곡 9번(Symphony No.9)>을 작곡하게 됩니다. 마지막 4악장은 당시 최초로 시도된 매우 혁신적인 곡이었습니다. 기악곡인 교향곡에 성악인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연주되는 것이지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한 베토벤의 의지와 창작력이야말로 다른 작곡가들과는 차별된 존경을 받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 베토벤 교향곡9번의 연주 사진 독일 게반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 베토벤 교향곡9번의 연주 사진 독일 게반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쉴러의 시로 만든 4악장 ‘환희의 송가’는 분열된 것들이 다시 화합하고, 신의 날개 아래에서 모든 형제는 하나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10년 만에 무대에 선 베토벤은 스스로 지휘하진 못하기에 지휘자 옆에서 간간히 지시만 내려주며 공연을 마쳤습니다. 솔리스트 웅어(Unger)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의 어깨를 감싸 관객들을 향해 돌려주었습니다. 

베토벤은 고전시대를 끌고 나간 동시에 낭만시대의 문을 열어준 시대의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절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질병이 그를 늘 고통스럽게 했고, 청력 이상으로 예민하고 괴팍한 음악가가 되어버렸으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관계의 불화로 그가 가장 아끼던 조카는 자살 시도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사명이라 생각한 예술이 베토벤을 다시 일어서고, 걸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삶에 대한 희망, 정의, 그리고 신의 구원이 담겨 있습니다.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지 않고 가치를 발견하여 지켜나간 베토벤. 그로 인해 음악가들의 삶이 바뀌었고, 음악이 예술로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나를 일으킬 수 있는 단 하나, 그 무언가가 있다면 절망은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런 작은 희망들이 모여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베토벤에 대해 알아보면서 한동안 깊이 빠졌던 곡이 있습니다. 그의 말년에 작곡된 <현악사중주 No.15, op.132>의 3악장입니다. 이 악장에는 <Heiliger Dankgesang(거룩한 감사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악보에 베토벤이 ‘병약한 자가 추수감사절을 맞이해 신에게 드리는 거룩한 감사의 노래’라고 썼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운 선율과 감동을 독자분들과도 함께 나눕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K75WCcUDkM&t=120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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