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가 그린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중앙 천장 벽화 중 세 번째 그림은 구약 성경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의 둘째 날과 셋째 날 이야기를 묘사한다. 첫째 날에 이루어진 빛의 창조가 시간적 질서의 창조를 의미한다면, 둘째 날부터는 공간적 질서의 창조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한 빈 공간에 물이 가득 찬 상태를 묘사한다.고대 근동의 우주론적 세계관에서, 홍수처럼 다스려지지 않은 물이란 곧 혼란과 죽음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물로 뒤덮여 있는 세상이란 공간적 무질서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제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바티칸 교황청 안에는 귀중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이 있다. 이 유명한 박물관의 백미는 그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라 할 수 있다. 시스티나 성당은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 선거인 콘클라베(conclave)의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여기에는 서구 르네상스 시대 미술의 최고 거장으로 손꼽히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그린 프레스코 벽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는 저서 정치학(기원전 328년)에서 “인간은 그 본성상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이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고립된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과의 관계성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적 존재인 것이다.이러한 사회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관계적 인격성’을 고찰할 수 있다. 하나의 ‘인격’이란 독립적 개별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적 관점까지도 포함해 통합적 관점에
스위스 출신의 정신의학자 엘리사벳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는 저서 인간의 죽음(On Death and Dying)에서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의 다섯 단계에 관하여 설명한다. 이는 죽음을 앞둔 수많은 중환자들과의 직접 면담에 기초해 만들어진 저서이다. 모든 이가 반드시 이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인간이 죽음의 과정에서 보이는 첫 반응은 ‘거부’(denial)와 ‘고립’(isolation)이다. 주변에서 암
오늘날의 사회에서 ‘치유’(healing)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을 반영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였다.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이룩된 현대 디지털(digital) 문명의 기능적 효율성과 편안함의 이면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소외되고 비인간화됨을 체험하기도 한다.다시 말해서, 현대인들은 과학기술 문명의 물질적이고 가시적 성취를 통해 많은 안락한 혜택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그 어떤 정서적, 정신적, 영적 공허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삶
1986년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출신의 유다인 작가 엘리 위젤(Elie Wiesel, 1928-2016)은 그의 자전적 소설 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갇혀 살면서 겪어야만 했던, 악몽과도 같은 고통의 체험을 이야기한다.전쟁이란 극한 참상 속에 온갖 부조리와 불의가 횡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비인간적 조건 속에 고통과 죽임을 당하는 기막힌 현실을 몸소 보고 겪게 되면서, 엘리 위젤은 자신의 깊었던 신앙심이 흔들리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그는 죄 없는 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많은 분들이 예전에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O. Henry, 1862-1910)의 1905년 작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를 읽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느끼는 슬픔과 절망감이 잘 묘사된다.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 사는 젊은 화가인 존시(Johnsy)는 폐렴에 걸려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녀가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상실해 병세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존시는 자신의 방 창문 너머 벽에 붙어있는 담
여러 해 전의 어느 더운 여름날, 몇몇 제자와 함께 소백산 등반을 갔다가 폭우를 만나는 바람에, 본래 계획했던 종주 일정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서 부득이 하산해야만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충북 단양 쪽으로 내려왔다가, 불현듯 발길을 돌린 곳이 단양과 인접한 강원도 영월이었다.국민배우 안성기 씨와 박중훈 씨가 함께 주연으로 나와 열연했던 추억의 영화 (2006)를 참 재미있고 감명 깊게 보았던 기억 때문에, 그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영월의 여러 아름다운 장소들을 직접 가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까닭이다.그런데 인간미
로마(Roma) 시대 노예 검투사(gladiator)들의 반란과 죽음을 다룬,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1999) 감독의 1960년 작 영화 '스파르타쿠스'는 실제 인물 스파르타쿠스(Spartacus, 기원전 109-71)와 그의 역사적 행적에 기초해 제작되었다.로마제국 당시에 스파르타쿠스와 같은 노예 검투사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 출신이었으며, 그들은 그야말로 하루살이와도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노예 검투사들은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과도 같은 아레나(arena)에서, 피에 굶주려 환호하는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Stephen King, 1947-)의 동명 소설을 각색해 영화로 만든 1999년 작 「그린 마일」(The Green Mile)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유명 배우 탐 행크스(Tom Hanks, 1956-)가 주연으로 출연한 이 작품에서는 1930년대 미국의 어느 교도소에 있는 사형수동을 배경으로 하여, 인간 본성의 문제,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 불사불멸성(immortality)의 문제, 그리고 거기에서 교차되는 선과 악의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왜 책과 영화의 제목이 ‘그린 마일’일까
필자는 휴가 때면 제주도의 한라산 둘레길이나 올레길 걷기를 좋아한다. 제주의 푸른 하늘 아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산과 바다의 풍광을 보면서 걷는 것은 모든 시름을 잊게 해준다. 제주 올레의 환상적인 길들 중에서도 제6코스를 걷다 보면, 서귀포 시 동쪽으로 가는 길에서 유명한 정방폭포를 만나게 된다. 산으로부터 내려온 긴 폭포수 줄기가 곧바로 바다에 떨어지는 그 수려한 경관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그런데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길 바로 옆에 ‘서복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제(秦始皇帝, 기
프랑스의 문학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가 쓴 단편 소설 『별』(1885)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프로방스 지방 어느 목동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예전에 한국의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바 있다. 이와 함께 도데의 또 다른 단편 소설 『마지막 수업』(1873) 역시 국어 교과서에 실렸는데, 이 작품은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대인 알자스로렌(Alsace Lorraine) 지방을 그 무대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전쟁의 결과로 인해서 그 지역이 독일로 귀속되
작년 12월 초, 서울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Song of Redemption)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오상일 교수의 기획전시회에 다녀온 일이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그 전시회는 인간의 실존적이고도 매우 심오한 주제를 다루었기에 필자는 큰 관심 속에 주의 깊게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전시회에서 드러난 작가의 작품 세계에는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탐욕과 더불어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 소외, 불안 그리고 슬픔과 한(恨) 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이는 작가가 한국전쟁이
프랑스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 Coco Chanel, 1883-1971)이 남긴 명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죄책감은 아마도 죽음의 가장 고통스러운 동반자이다(Guilt is perhaps the most painful companion of death)”라는 말이다. 미국 남플로리다대학교 의과대학의 종양학 교수 로도비코 발두치(Lodovico Balducci)는 그동안 수천 명의 암 환자들을 돌본 결과, 암환자의 가장 큰 고통은 ‘죄의식’이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죄의식 혹은 죄책감은 인간의 자기
많은 분들이 1986년 작 영화 「미션」(The Mission)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주제음악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의 아름다운 선율로도 매우 유명하다. 이 영화의 주제음악은 나중에 그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환상 속에서’(Nella Fantasia)라는 곡으로 전 세계에 다시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에는 유명 배우 두 사람이 주인공 역할로 등장하는데,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가 가브리엘 신부 역으로 나오고, 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회개한 예수회 수도사 로드리고
필자는 비틀즈(The Beatles)의 노래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비틀즈의 전설적인 명곡 ‘렛잇비’(Let it Be)의 가사 중에는 ‘가슴이 미어지는’ 혹은 ‘마음이 부서지는’(brokenhearted)이란 표현이 나온다. 즉, “세상에 살고 있는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the broken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이처럼 큰 시련의 아픔을 겪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가 내 부서지는 마음의 고통을 진실로 함께 아파하
보건의료 현장의 영적 돌봄(spiritual care)은 실로 놀라운 힘을 드러낸다. 오랜 병고로 인해 쇠약해진 환자의 육체적 상태가 본래 상태로의 자연적 복원 능력 바깥으로 일탈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이제 영적인 차원에서 이를 대면하고 수용하면서 보다 근원적인 복원을 시도하게 된다. 거룩한 실재와의 초월적 의미 통교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생명 안에 내재하고 있던 근원적인 온전함(wholeness)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이처럼 영적 돌봄을 통해 이루어지는 초월적 의미 통교 안에서 사랑과 연민의 체험이 가
필자는 가톨릭 사제이지만 이따금 불교 경전(sutra)을 읽고 공부하기도 한다. 인간의 삶과 고통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그 궁극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탐구와 깨달음이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인 법구경(法句經)에는 인간의 언어에 관련한 중요한 가르침들이 있다. 그중에서 몇몇 내용들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쓸 데 없는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하며, 말을 삼가고 잘 다스려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가르침들이 주어진다. “진실만을 말해야 하리.”(제17장 Kodha Vagga 忿怒品,
미국 남플로리다대학교 의과대학의 종양학 교수 로도비코 발두치(Lodovico Balducci)는 ‘치료’(cure)와 ‘치유’(healing)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항상 그렇게 되지는 않다. 때로는 치료가 되었으나 치유에는 도달하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치료에는 실패하였지만 치유에 도달한 경우도 있다.이를 위해, 암으로 투병했던 메리(Mary)와 프란세스(Frances)의 두 가지 사례가 제시된다. 메리는 유방암으로 고통 받다가 절제 수술 후 항암과 재건 등 모든
2020년 한 해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로 인해 여러 어려움들을 겪으며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고생한 분들은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며 헌신해온 의료진과 보건의료 실무자들일 것이다. 대한민국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노고와 헌신에 경의를 보낸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젊은 의료인의 영적 체험에 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 1977-2015)는 그의 자서전적 저서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흐름출판,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