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양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많은 분들이 1986년 작 영화 「미션」(The Mission)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주제음악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의 아름다운 선율로도 매우 유명하다. 

이 영화의 주제음악은 나중에 그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환상 속에서’(Nella Fantasia)라는 곡으로 전 세계에 다시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에는 유명 배우 두 사람이 주인공 역할로 등장하는데,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가 가브리엘 신부 역으로 나오고, 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회개한 예수회 수도사 로드리고 멘도자 역할을 맡아서 나온다.

가브리엘 신부는 자기 목숨을 걸고서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에게 찾아와 그들을 감화시켜 함께 살면서 마침내 아름다운 선교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한편, 기사 출신의 로드리고 멘도자는 원주민들을 잡아들여 팔아넘기던 노예사냥꾼이었는데, 어느 날 자신을 배반한 동생을 보고서 분노를 견디다 못해 동생을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가브리엘 신부의 도움으로 참회의 시간을 보낸 후, 이제 원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는 예수회 선교 공동체에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죄 값을 치르고 보속하기 위해서, 밀림을 헤치고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 내내 끊임없이 자신이 꾸려온 짐을 어깨에 메고서 질질 끌고 다닌다. 

그 짐이란 자신의 갑옷과 무기를 모두 함께 넣은 그물 보따리였다. 즉,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의 삶을 계속 돌아보면서 끊임없이 보속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회개를 넘어선 자기학대의 상태였다.

무거운 그물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절벽을 올라가려고 하나 그 무게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밑으로 떨어진다. 이는 자신이 안고 가는 죄의식의 무게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서 자꾸만 과거로 회귀하는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보고서 가브리엘 신부는 이제 그만 과거와의 단절을 권유하였고, 한 원주민은 칼을 빼어들어 그물 보따리가 연결된 줄을 잘라버린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과거의 유물들, 그것은 바로 로드리고 멘도자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됨을 상징하는 것이다. 로드리고 멘도자는 자신이 해를 가했던 원주민들에게 용서를 받음으로써 이제 자기 자신과도 화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예수회 수도사로서 원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의 죄의식에는 양면적 기능이 있다. 전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사람에게는 외부의 강한 충격과 더불어 죄의식을 통한 회심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죄의식이 순기능을 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죄책감으로 인해 계속해서 고통 받는 경우에는 어느 시점에서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이 경우의 죄의식이란 그 순기능과 역기능이 함께 뒤섞여 있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암으로 인해 갑자기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환자들의 가장 첫 반응은 대부분 “이 많은 사람들 중 왜 하필이면 내가 죽어가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고, 그 다음 반응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벌을 받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부터 죄의식으로 인한 고통이 시작된다. 

그동안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잊혀져왔거나 혹은 대면을 회피했던 기억들이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이제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며 환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사실, 인간의 의식은 바다의 수면 위로 나와 있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하며, 수면 아래에 숨어 있는 거대한 빙산은 인간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에 비유되기도 한다.

인간의 이러한 차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명한 타이타닉 호 역시 바다의 수면 아래에 숨어 있는 거대한 빙산과 충돌함으로써 결국 침몰했던 것이다.

이처럼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거대한 빙산과도 같은 죄의식은 넓은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과거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죄책감뿐만이 아니라,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 채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집착과 아쉬움과 한스러움, 혹은 사별로 떠나보낸 가족을 잊지 못하는 경우 등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무서운 과거, 혹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반드시 그것과 대면해야만 한다. 그리고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하는 화해의 과정을 통해, 그러한 과거와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러한 화해와 통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과거는 죽은 시간이다. 계속해서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한스러움과 아쉬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그 죽은 시간의 힘에 의해 계속해서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과 같다. 이제 떠나가야 할 것은 떠나보내야만 한다.

우리는 과거와 연결되어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는 현재의 삶을 살고 있지만, 현재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끊임없이 과거와의 단절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과거로부터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오히려 그것을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영화 미션에 나온 로드리고 맨도자의 회심 과정처럼 말이다.

미국 남플로리다대학교 의과대학의 종양학 교수 로도비코 발두치(Lodovico Balducci)는 그동안 수천 명의 암 환자들을 돌본 결과, 암환자의 가장 큰 고통은 ‘죄의식’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죄의식은 치유를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인간의 진정한 치유와 온전함이란, 자신이 지닌 과거의 상처, 현 상태의 고통, 그리고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도 그 모든 것을 인격적 차원에서 ‘대면’하고 ‘수용’하여, ‘화해’와 ‘통합’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다. 

여러모로 어려웠던 2020년을 보내고 2021년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 영화 「미션」에 나온 것과 같은 아름다운 화해와 통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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