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정석 수의사

대한수의사회 제공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8월의 여름 방학, 어느 날의 숨 가쁜 추억을 떠올려본다. 그 절체절명의 아찔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저와 함께 기묘한 사건 현장 속으로 떠나보실래요? 고고씽~!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마당개를 키웠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기억에 남는 개가 있었으니 바로 ‘흰둥이’였다. 우리 집 마스코트 흰둥이는 하얀 털에 전형적인 시고르자브종이었는데, 애교가 만랩이었고 집을 철통같이 지켜주며 가족들의 사랑을 독(dog)차지했다.

쇠줄로 목줄을 해서 키웠는데 반경이 좁고 답답해선지 나무로 된 개집을 물어뜯어 흉측하게 만들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께서는 헌 개집을 치우시고 자투리 판자에 톱질을 하여 근사한 새집을 만들어주시곤 하셨다. 그러나 여름철엔 모기들이 여간 기승을 부리는 게 아니었는데, 어린 마음에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개집에 에프킬라를 칙 뿌려주며 편히 잠을 잘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전부였다.
심장사상충에 얼마나 많이 감염되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지한 시절이라 더 속상하다. 가끔 대문 단속을 한 뒤 개줄을 풀어주고 마당에서 뛰놀게 하면 정말 행복한 얼굴로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혈기왕성함을 뽐내곤 했다.

‘동물’은 말 그대로 신체의 자유가 있어야 진정으로 제구실을 하는 것이 아닐까 어린 마음에도 막연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리와 기본적인 환경의 보장은 반려동물 사육의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터전임을 수의사가 되고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흰둥이는 암컷이었고 자견일 때부터 얻어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이 개는 아마 우리와 가장 오래 함께 했던 견공이었을 것이다. 10년 이상 건강하게 우릴 충실히 지켜주었고 한결같이 명랑했다. 흰둥이가 1살쯤 되었을 때 그해 여름의 이야기다. 그 사연인즉슨 이러했다.

부모님은 새벽같이 일터로 나가시고 누나와 형은 외갓집에 가고 없어 나는 여름방학을 맞아 아침 늦게까지 눕방 분량 챙기면서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오전 10시경 어슬렁거리면서 일어나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부스스 눈을 비비며 오늘은 또 뭘 하며 놀까 궁리했다. 그런데 마당 한구석에 있던 개집이 눈에 들어왔다. 쇠줄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는데 가만 보니 흰둥이가 개집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였다.

이게 머선 129?!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흰둥이를 주목하면서 녀석의 이상한 행동을 관찰했다. 이건 못 참쥐! 더욱 궁금해져 스리슬쩍 슬리퍼를 신고 살금살금 다가가 몰래 엿보았는데 정말 화들짝 놀랄 정도로 섬뜩함을 느끼고 말았다. 조명이 꺼진 아니 없는, 어두 껌껌한 개집 속에서 흰둥이가 무언가를 계속 핥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작은 생명체였다.

“흰둥이가 쥐를 잡았어?” 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 징그러움을 느꼈고 공포심에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인상을 찌뿌렸다. 평소 쥐를 잡는 개가 아닌데 어찌 포획해서 쥐돌이 놀이를 하며 빙빙 돌고 있지? 왜 이래!

불결하고 살벌한 느낌에 가슴이 쿵쾅쿵쾅 콩닥거렸다.

인기척을 해서 흰둥이를 놀래주려고 용기를 내서 다시금 다가갔다. 그런데 저 안쪽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건 쥐새끼가 아니었다. 개새끼였다. 이건 절대 욕이 아니고 흰둥이의 첫 자연분만이었고 자신의 새끼를 이미 낳아서 열일하는 중이었다. 어찌 묶여있는 암컷 개가 임신을 하지? 철문은 굳게 닫혀 있는데 어떻게 짝짓기가 성사된 걸까 희한했다. 어떤 놈의 소행인지 이놈을 잡히기만 하면 당장 상을 주고 싶었다. 동네 수컷 개들이 발정기 때 잠시 문을 열어두었던 찬스를 놓치지 않은 것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정말 신비하고 오묘했다.

지 새끼를 낳아서 품에 안고 보살피고 있었다. 얼마나 내가 무심했던지 임신 사실조차 일절 몰랐다. 나는 초딩 무지몽매한 애송이에 불과했고 성견 흰둥이는 자력순산의 화신이 되어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개집에 손을 넣어 흰둥이의 쇠목줄을 풀어줬다. 다행스럽게 흰둥이는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경계를 하지 않았고 나의 손길을 그냥 받아줬다. 허나 흰둥이는 개집을 들락거리면서 분만의 고통과 첫 경험의 어리둥절함을 표출했다.

개집에는 꼬물거리는 아기 강쥐 3마리가 있었다. 지들끼리 머리를 맞대어 체온을 나누며낑낑 울음소리로 새로운 생명 탄생을 만천하에 알렸다. 브레이브 독스, 위대한 형제들이었다. 나는 장한 흰둥이를 쓰다듬어주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분만 과정에 동참했다. 잉태의 순간은 나에게도 첫 경험이었으니 무엇을 도와줘야할 지 몰라 어색함을 느꼈다. 그러나 나의 도움은 거의 필요치 않았고 흰둥이는 뱃속에 남은 태아들을 시간 간격을 두고 자연 분만했다.

총 5마리를 낳았고 지저분한 태반을 스스로 먹어치우며 동물의 신비를 퀴즈탐험 만점으로 관광시켜버렸다.

 

모견이 참으로 대견했고 순식간에 5마리가 늘어난 자손번창에 만세를 외쳤다. 출산이 완료되자 흰둥이의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새 생명의 옹알이에 나는 묘한 쾌감을 느끼며 비로소 긴장이 누그러졌다. 그럼에도 8월 무더위에 힘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쓰럽고 짠했다. 별달리 챙겨준 것도 하나 없었는데 변변치 않은 잔반을 먹으며 임신기간을 감내한 견공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오전을 지나 정오가 되자 폭염은 어느덧 다가와 가공할 더위를 선사했다. 당시엔 선풍기가 고작인 세상이었던지라 심하게 헐떡거리는 흰둥이가 무척 걱정되기 시작했다. 체력이 방전되어 정신이 아득해보였고 살인적인 더위에 개집은 환기가 안 되어 쪄죽게 생겨 먹었다. 그러나 초심자에다 초등학생인 내가 도울 것은 펌프로 길어 올린 지하수를 대접하는 것뿐이라서 허둥지둥 모든 것이 무서웠다.

살신성인 흰둥이는 새끼들을 돌보는데 여념이 없었고 마당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동분서주했다. 무언가 불만이 있거나 큰 애로사항이 있어 보였다. 혀를 내두르면서 헐떡이는 흰둥이가 안쓰러웠고 불량한 개집에서 더운 날에 막 태어난 새끼들이 불쌍했다. 조건과 환경이 열악했고 초딩 혼자 감당하기엔 사태가 긴박했으며 날씨가 심히 후텁지근했다.

그런데 갑자기 흰둥이가 마당 앞 텃밭으로 뛰어 들어가서 졸지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앞발로 사정없이 땅을 헤집고 깊이 20센티 정도의 구덩이를 만들었다. 폭염과 출산으로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이상행동에 나는 어리둥절했고 결국 흰둥이가 더위를 먹었나, 아니면 미경산견의 돌출 행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땅을 얼추 다 팠는지 굴삭기 모드를 잠시 멈추고는 갑자기 개집으로 들어가 새끼들을 물어다 구덩이에 파묻기 시작했다. 와리가리하며 하나씩, 하나씩 재빠르게 땅 속에 집어넣었다. 막 태어난 새끼들이 무슨 놈의 악성사채 빚을 연체한 것이 있다고 생매장을 시키는지 나는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흰둥아! 너 왜 이래 미쳤니?”

나는 흙이 묻은 채 요동치는 새끼들을 한 마리씩 꺼내서 흙을 털어주고 다시 개집으로 조심스럽게 옮겨줬다. 신세계 골드문댕이 흰둥이가 갑자기 너무 미웠고 출산이 그토록 잔인한 고통을 주는 걸까 마음이 아팠다. 죽기 딱 좋은 날이 결코 아닌 경삿날이 아닌가.

 

다시 개집으로 환납했더니 나를 무시하고 흰둥이는 또다시 새끼들을 물어다가 땅에 파묻어 버렸다. 뿔난 나는 고고학적 견지에서 ‘팔딱대며 함께 안으로 파고드는’ 비트코인(beat-co-in) 자견들을 조심히 채굴하여 도로 안전한 장소에 갖다놔도 안하무인 흰둥이는 죄다 묻고 더블로 가버렸다.

그 괴상한 광경을 혼자 겪었던 나는 정말 대환장했고 개들의 야멸찬 습성에 치가 떨렸다. 대략난감 출산의 고통으로 정신줄을 놔버린 것 같았다. 분만 중인 토끼가 자신의 출산 장면을 사람이 보고 있는 걸 알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낳은 새끼를 그 자리에서 잡아먹는다는 썰을 많이 듣고 자랐는데 그 같은 행동이 데자뷰 반복되는 것 같아 너무 무섭고 슬펐다. 정신이 돌아버린 흰둥이가 참 안타까웠지만, 기껏 낳은 자식을 살해하려는 비정함에 나는 몹쓸 설움을 느껴야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새끼들을 다 죽일 것 같아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응급상황에도 내가 도울 방도가 딱히 없어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나는 전전긍긍하다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까 묘안을 고심하는 중에 옆옆집에 사는 동네 아줌마에게 가봐야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그 집은 도사견 2마리를 키우고 있고 예전부터 늘 개들이 있는 집인지라 나름 문외한은 아닐 것 같아서 어떤 해박한 솔루션이나 명쾌한 이유를 말해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시아의 스프린터 장재근 아재처럼 집을 박차고 나가 그 아줌마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열린 철문 옆에 묶여있던 도사견들은 나를 물어죽일 듯이 으르렁거리며 게스트의 방문을 반갑게 접대해주었다. 벌벌 떨렸지만 맹견들을 피해서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다급히 꽃게처럼 옆으로 전진 접근하여 대청마루에 간신히 도착했다.

나 : 장희 형 아줌마!!! 좀 도와주세요.

울먹이며 큰소리로 긴급하게 주인아주머니를 불렀다. 나의 애절함을 느꼈는지 아주머니는 버선 바람으로 나오셨다. 맨발이었는지 굳이 버선을 신으시며 깽깽 발로.

아줌마 : 왜?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 : 우리 집 개가 아침에 새끼를 낳았거든요. 임신한 지 전혀 몰랐어요! 근데 갑자기 새끼가 있는 거예요.

  

아줌마 : 용케도 가졌구나. 사랑에는 담장도, 국경 없는 법이란다. 하하하!호탕한 아줌마는 신일 선풍기처럼 시원시원해서 땀띠에 그만이었다.

나 : 5마리를 낳았는데 다 낳은 것 같긴 한데요. 근데요 아줌마! 갑자기 개가 미쳤는지 땅을 파서 새끼들을 파묻어 버렸어요. 어떡하죠? 좀 오셔서 도와주세요. 제발요.

아줌마의 핑크 블라우스 소매를 잡아챘다. 촌각을 다투는 사안이라서 정신이 하나두 야너두 없었다. Please.

아줌마 : 그래? 아이고 저런.

나 : 빨리 저랑 같이 가요. 부모님도 돈 벌러 가셔서 아무도 없어요. 너무 무서워요. 아줌마~아!

그러나 아줌마는 시급한 사안과는 다르게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줌마 : 그냥 내버려둬라.

너무 무책임한 이웃사촌에게 나는 너무도 깊은 실망감과 빡침을 느꼈다. 어른들은 이토록 무정하고 매몰찬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무정함에 속이 몹시도 상했다.

나 : 너무 하시는 거 아녀요?! 바쁘신 거 아니면 가서 한 번만 봐주기라도 해주세요!

아줌마 : 개들은 알아서 다 처리하니 걱정마렴!

나 : 알아서 하다뇨. 그런 막말이 어디 있어요? 가련한 동물이 더위를 먹어서 똘아이가 되어가고 있는데. 죄 없는 새끼들을 다 죽이란 말씀이세요?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이건 아니죠? 혹시 알아요? 21세기에는 개들을 방안에서 키우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요!

평생의 반려자처럼 가족처럼 지내는 개념인 ‘반려동물’이란 말을 쓰게 될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저작권은 저에게 있음을 굳이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그러나 아줌마는 움직일 생각을 1도 안하고 마루에 서서 초연하게 대답했다. 그 순간은 30년이 지났지만, 또렷이 기억난다.
.
.

아줌마 : 더워서 그런 거야. 죽이려는 게 아니고 살리려고 그런 거야.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열사병 걸릴까봐서 시원하게 해주려고 그런 걸 거야. 가서 다시 한 번 잘 봐보렴. 숨구멍은 열어뒀을테니.

나는 시티헌터의 1,000톤 뿅망치를 맞은 것처럼 뜨악하고 귀가 멍멍했다. 그 먹먹한 감동은 절대 잊을 수가 없으리. 배움이 없는 동물이 어찌하여 맥가이버처럼 뚝딱 폭염의 사태를 대응한단 말인가. 본능적 기지와 모성애의 발휘는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빛나는 가치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 : 진짜요? 우와!! 미쳐서 죽이는 게 아니구요?

아줌마 : 지 자식인데 그럴 리가 있겠니? 아등바등 살려보겠다고 그러고 있을 거야 분명히.

감동적인 임기응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줌마의 조언에 나는 힘을 얻어 잽싸게 달려 집으로 갔다. 흰둥이는 새끼를 파묻은 구덩이를 지키고 뱅뱅 돌면서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완전히 파묻어 버리지 않았고 엉성하게 흙을 덮어놨다. 졸지에 새끼들은 분서갱유 되지 않았고 꼬물거리며 시원한 황토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황토팩 힐링과 더위사냥을 제공하는 모견에게 나는 심히 탄복하여 애절한 사랑을 느끼고 말았다. 자기 자신은 참을 수 있지만 연약한 생명은 이 무더위에 골로 가버릴꺼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흰둥이는 참으로 영특했고, 위기대처 능력이 뛰어났다. 명견이 따로 있었다.

돌이켜봐도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동물의 본능적인 임시방편에 나는 당시 큰 충격을 받았고 어린 마음이지만 그들에게 결코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그야말로 경외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슬며시 다가가 구덩이에 고사리 손을 살짝 넣어봤다. 신묘하게도 적당히 시원하고 쾌적했다. 그 폭염에 새끼들이 다 죽을까봐 흰둥이가 구상한 묘책은 실로 기묘했고 신박했다. 새끼들은 어미의 보살핌에 구사일생 살아남았고 저녁이 되자 노을이 내려앉았을 즈음, 흰둥이는 구멍에 있던 새끼들을 조심스레 물어다가 개집으로 옮겨 그제야 초유를 먹였다. 사람이 도울 일이 거의 없게 알아서 척척 다 해냈다. 내리사랑의 본능은 샤론스톤보다 원초적이었고 돌봄 교실은 이미 만석이었다. 모성애의 절박함은 위대한 발명의 어머니였다. 

퇴근하신 부모님께 이 기쁜 소식을 알렸고 들여다보시더니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신기방기해 하셨다. 꽁알대며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더니 2~3주가 지나자 새끼들은 눈과 귀가 트이자 종일 울면서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생후 한 달이 넘어가자 흰둥이는 새끼들의 이빨 때문에 젖꼭지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육아의 고충은 이만저만 제발 그만이었다. 새끼들과 분리해 주었지만 연신 불안해하면서 흰둥이는 가로막을 넘나들었다. 어찌나 지 새끼들을 챙기든지 그 신통방통한 헌신에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아무렴. 

나는 삶은 고구마를 남겨뒀다가 이유식 대용으로 새끼들에게 수시로 주었다. 손으로 떠먹일 때 그 씹어 먹던 턱의 힘과 감촉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게눈 감추듯이 잘도 받아먹었다. 강아지들은 형형색색 무늬가 모두 달랐지만, 토실토실 귀엽고 꽁알꽁알 말을 많이 하며 보란 듯이 건강하게 자랐다.

대견한 출산견 흰둥이는 가족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지만, 산후조리도 일절 없이 쌍둥이를 돌보느라 비쩍 말라버려서 몸보신을 위해 당시 귀했던 고깃국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흰둥인 모유 수유에 열일하며 여름 내내 힘들어했음에도 지극정성으로 지 새끼들을 핥고 빨며 종일 최선을 다했다.

이 계기로 그때부터인가 우리 집에서는 개 한 마리를 오래도록 키웠다. 2달이 넘어선 새끼들은 어느 정도 크자 화순 외갓집, 노안 큰집 등으로 뿔뿔이 찢어졌고 나의 고집 센 주장으로 한 마리는 겨우 남겨둬서 어미와 같이 키웠다. 모자인지 모녀인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정말 애틋한 그들은 추울 때 서로 안아주고 더울 때 서로를 멀리하며 정다운 핏줄의 사랑을 줄곧 과시했다.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에 막 태어난 새끼들의 목덜미를 알맞게 물어다가 땅구덩이에 집어넣었던 흰둥이의 돌발행동은 그야말로 센스쟁이의 판타스틱한 보살핌이었다. 동물들의 경이로운 자식사랑을 몸소 느꼈던, 그 한 여름날 고색창연한 추억은 나의 가슴에 다정하고 정감 있게 오롯이 남아있다. 

우리 집 작은 텃밭 포도넝쿨의, 하늘거리는 꽃그늘이 드리워진 씽크홀(think-hole)은 앗아가는 맨홀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블랙홀이었다. 

소찬휘가 부릅니다. # 현명한 선택 #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힐링앤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