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정정석 수의사

책 ‘어쩌다 보니 열혈 수의사’ 지음
대한수의사회 제공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토르가 내원했다. 이름과는 다르게 겁이 많고 소심한 10kg, 8년차 믹스견이다. 항문낭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내가 없애주었다.
 
나 : 오늘은 어떻게 오셨당가요?
 
토르맘 : 접종 좀 하려고요. 통 신경을 못 썼네요.
 
나 : 자~알 오셨습니다. 알로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럽게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몸이 다부졌다.

토르맘 : 그런데 원장님! 개들이 천둥을 무서워하나요?
 
나 : 그럼요. 동물 입장에서는 이런 변고가 따로 없죠. 천재지변 중에 가장 공포라고 봐야합니다. 소리가 압도적이잖아요.
 
토르맘: 토르가 새벽 내내 벌벌 떨어서요. 안절부절 못하고.
 
나 : 사람이야 안전한 곳에 있으면 문제 없다는 걸 알지만 동물들은 그걸 모르니 본능적으로 살벌함을 느끼겠죠. 우르르 쾅쾅! 굉음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은 번갯불이 그들에겐 극도의 두려움이죠. 야생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마땅히 은폐할 곳이 더욱 없다면.
 
토르맘 : 벌벌 떠는데 정말 걱정됐어요.
 
나 : 그러셨군요. 토르가 고생이 많았네요. 몇 년 전에 이쪽 지역에 천둥 번개가 요란스럽게 치던 날이 있었죠. 다음날 시츄 한 마리가 새벽에 그 소리에 죽었다면서 상심한 보호자가 왔었어요. 극심한 공포는 생명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그럴 땐 꼭 안아주시고 필요하면 도움 되는 약을 먹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토르맘 : 약도 있군요? 몰랐네요. 
 
나 : 심리안정제가 많이 있습니다.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으면 요긴합니다. 천둥 번개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 들려드릴까요? 말까요?

토르맘 : 네. 진행시켜 주세요!
나 : ‘알마니’라는 30키로 나가는 대형견이 있었어요. ‘알마니‘라는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다니는 명품 견공이었죠.

토르맘: 그런데요?
 
나 : 알마니 어머니가 큰 맘 먹고 마사지의자를 구입했다더군요. 몸절친 아시죠? 1일1깡 바디프렌드.

토르맘 : 알다마다요. 그건 얼마니?
 
알만한 말장난으로 호응하는 토르맘의 위트가 수준급이었다.
 
나 : 300만원 줬다했죠. 아마.
 
토르맘 : 상당하군요. 휴테크나 코지마도 가격이 비슷할걸요?
 
나 : 네. 요즘 뜨는 세라잼도 있네요.
 
토르맘 : 안마의자가 대세로군요. 

나 : 저도 하나 갖고싶네요. 각설하고. 그런데 신삥 마사지 의자가 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어느 날, 번개가 사정없이 내리쳤대요.
 
토르맘 : 그래서요? 계속해보세요. 얼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 : 알마니가 난리가 난거죠. 사시나무 떨 듯이 온 몸을 떨면서 온 집안을 뛰어다녔데요. 무섭고 너무 불안한 거죠. 천둥 번개가 어마무시하게 계속 되자 알마니가 혼이 나가버릴 지경이었데요. 그러다가 불현듯 안마의자를 발견하고선 그 위에 올라가서 긁기 시작하더래요. 파고 들어가서 숨으려는 본능이죠.
 
토르맘 : 에구 저런.
 
나 : 강력한 발톱으로 긁어대니 인조가죽이 남아나겠어요? 개박살이 나고 스펀지가 날리고 순식간에 누더기가 되부렀데요. 너덜너덜 만들어서 그 좁은 구석으로 비집고 들어가 머리를 숨기고 견디는 모습을 보니 참 딱하고 불쌍했다고 했어요. 다행히도 천둥의 신 토르가 노여움을 풀자 인사이드에 또아리를 틀었던 핵인싸 알마니는 무사했지만 누더기가 된 바디프렌드는 절교를 선언했다는 전설입니다.
 
토르맘 : 해피한 새드엔딩이네요.
 
나 : 알마니 보호자님이 ‘이 녀석이 300만원 짜리 안마의자를 해먹은 놈’이라고 푸념섞인 웃음을 짓더군요. 개는 멀쩡해서 쿨하게 괜찮다고 하셨지만.
 
우리의 아무말 대잔치는 그렇게 끝이 났고 여름은 진드기가 창궐하는 시즌이라 외부기생충 구제제까지 발라주며 접종을 마무리했다.
 
검색해보니, 번개는 하늘에서 전기반응으로 번쩍하는 빛이고 천둥은 그 소리이며, 벼락은 번개가 땅으로 내리꽂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번개는 빛의 속도(초속 3억m)라 금방 보이고 소리는 초속 340m 라서 나중에 귀에 들린다고 한다.
 
이상 천둥에 벌벌 떨었던 천둥벌거숭이 토르 썰이었다.
 
유비무환의 애환을 노래합니다. 비스트가 부릅니다. # 비가 오는 날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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