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시작 된 헬스케어 영성 시리즈가 매월 원작자의 집필로 다시 시작됩니다. 이번 1회에서는 헬스케어 영성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작가가 보내와 게제하며 다음호부터는 본격적인 헬스케어와 영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뵐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박준양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인공지능 열풍이 불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은 인공지능 기술 개발 수준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미래에 관한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는 희망과 우려가 교차한다. 인공지능의 등장과 발전이 인간 삶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인간이 기계에 종속 혹은 지배당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대에 “진정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여기 있다”며 확신 있는 목소리를 높이는 연구자들이 있다. 용진선 수녀(가톨릭대 간호대학 명예교수), 박준양(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겸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신부, 김주후 교수(아주대 교육대학원), 김현미 교수(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강숙 교수(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이용주 교수(강남 세브란스병원), 조재선 교사(전문번역가, 신도봉중학교), 이훈(미국 코넬대학교 법과대학원 재학) 등이다. 

이들을 모두 한데 모이게 한 것은 2012년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사가 펴낸 방대한 서적 「헬스케어 영성」(Oxford Textbook of Spirituality in Healthcare)의 번역 작업이다. 이 책은 환자의 전인적 치유를 지향하는 ‘영적 돌봄’(spiritual care)에 관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 이 분야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건강과 영성’을 주제로 60명이 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영적 돌봄의 표준 교과서이자 총체적인 입문서다. 역사적,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건강 개념에 관한 분석에서부터 영적 돌봄의 핵심 이해와 영적 돌봄의 수많은 현장 사례에 이르기까지, 영적 돌봄의 종(縱)과 횡(橫)을 모두 아우른다.

이 책의 진가를 간파해 6년간 번역에 뛰어든 이들은 2018년 말에 모든 번역을 완료해 출간(가톨릭대학교출판부)이 이루어졌다. 

이 「헬스케어 영성」은 총 5권으로 번역이 이루어졌다. 제1권(건강과 영성의 전통), 제2권(영적 돌봄의 개념), 제3권(영적 돌봄의 실무), 제4권(영적 돌봄의 연구), 제5권(정책과 교육 그리고 미래의 도전)이 모두 완역된 것이다. 

사실 이 번역은 일회적 결정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번역자들은 이미 지난 10년간 세계적 흐름과 네트워크에 발맞추며 이 분야에 대한 다학제간 연구와 현장 적용의 실천을 한국에서 선도적으로 해온 터이고, 그 결과를 담아 여러 논문들을 SCI 급 국제학술지들에 게재했다.

이 책의 번역은 모두 철저한 공동독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보건의료(용진선, 이강숙, 이용주), 신학과 영성(박준양), 교육학 및 측정평가(김주후), 문화인류학(김현미), 종교사 및 영어학(조재선, 이훈)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심도 있게 논의함으로써, 마침내 고품격의 전문성 있는 번역서가 탄생한 것이다. 

번역자들은 “마음을 모아 함께 성찰하며 번역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 책의 한 장(chapter) 안에서만도 보건의료 주제의 내용이 철학적, 신학적, 종교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과 연결되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온전한 번역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공동 번역의 필요성과 시너지 효과를 밝혔다. 영적 돌봄과 관련된 새로운 용어와 개념들을 처음 번역하며 용어 정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성과이다.

번역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의학의 발전이 질병 치료와 생명 연장에 큰 기여를 했지만, 병을 앓는 인간에 대한 전인적 이해는 소홀했습니다. 육체적 치료와 함께 영적 고통의 치유를 통해 환자의 온전한 회복을 돕는 ‘영적 돌봄’이야말로 ‘의술’이 아닌 ‘인술’이 지향하는 바이며 앞으로 보건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사실 ‘영적 돌봄’은 새로 개척된 영역인 만큼, 이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자료나 문헌 등을 국내에서 찾기는 매우 어렵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영적 돌봄에 관심 있는 보건의료 종사자들에게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로 받아들여진다. 

영적 돌봄은 병으로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전인적 돌봄과 치유를 지향하는, 세계 보건의료계의 새로운 흐름이다. 이것은 약 20여 년 전부터 시작됐고 한국에 소개된 역사는 10년 정도이다. 

이러한 영적 돌봄의 흐름은, 20세기 이후 의과학의 발전이 질병 치료와 생명 연장 부분에서는 크게 발전했으나, 고통 받는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영혼까지 치유하는 부분까지는 미치지 못했다는 각성에서 나왔다. 영적 돌봄이 병행될 때, 환자는 비로소 전인적 치유와 온전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번역자들은 “미래 의료기관의 정체성과 기능은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환자에게 어떠한 영적 돌봄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의료기관의 진정한 우수성과 차별성이 입증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의학의 기술적, 치료적 측면 중 상당한 부분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담당하게 될 것이기에, 인간으로서의 의료인은 보다 영적 돌봄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 세계보건기구(WHO)도 영적 돌봄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으며, 영적 돌봄에 관한 가이드라인들 역시 발표되고 있다. “의료진 양성은 이제 영적 돌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번역자들은 강조한다.

“영성 개념을 보건의료체계 안에 통합하기 위한 노력이 최근 세계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사, 간호사, 원목자, 사회복지사, 교육자, 철학자, 신학자, 정책입안자 등이 모이는 다학제간 연구와 실천을 통해, 질병의 고통을 넘어선 인간 존엄성의 고양을 위해 노력합니다.”

“환자들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적 돌봄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고통 받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치유하는 것은 기계나 인공지능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영적 인간만의 고귀한 작업입니다.”

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영적 돌봄에 관한 본격적 자료이다. 번역자들은 오랜 시간의 공동독회를 통해 원서를 한 줄 한 줄 함께 읽고 토론하며 번역을 진행했다. 
때로는 여러 원저자들에게 문의하는 이메일을 보내 원문의 의심스러운 부분과 오기나 오타마저도 일일이 확인해 수정해서 옥스퍼드대학교출판부에 알려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번역자들은 “이 책의 공동번역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서 깊은 명상과 성찰의 작업”이었다고 하면서, “이 책을 계기로 영적 돌봄의 개념과 전망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길, 그래서 영적 돌봄 연구와 교육에 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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