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먹자골목 사이에 위치한 ‘스페셜티’ 커피집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섬세한 소품들에 ‘눈호강’까지

 

 

카페 ‘L. ESPRESSO’ 전경
카페 ‘L. ESPRESSO’ 전경

언젠가 글에서 밝힌 적이 있지만, 필자가 스스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시험 기간에 잠을 쫓는다는 핑계로 독서실의 친구들을 꼬셔 캔커피나 믹스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던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대학교에 들어오고 난 뒤부터는 ‘커피향’을 즐기기 시작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그 외의 커피들은 접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카페라떼나 카푸치노, 카라멜마끼아또 등 수많은 커피들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이름과 종류가 많아 헷갈리기도 했지만, 구태여 새로운 맛에 도전하고 싶은 ‘모험정신’도 없었고, 으레 대한민국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커피가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귀차니즘’으로 인해 아메리카노만 주구장창 마셨다. 굳이 따지자면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구분한 정도였다.
 

카페 ‘L. ESPRESSO’ 내부
카페 ‘L. ESPRESSO’ 내부

이는 여자친구를 만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취향에 맞춰 여러 커피숍을 다녔지만 필자의 선택은 한결같이 ‘아메리카노’였다. 당시 여자친구는 인하대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먼 거리를 무릅쓰고 인천 끝자락에 위치한 학교를 몇 번 방문했다. 

멀리 와준 것에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던 여자친구는 필자를 인하대학교 후문에 ‘먹자골목’으로 이끌었다. ‘가격인하’로 유명한 인하대학교 후문가를 소개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했던 필자에게 인하대 후문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각종 식당과 카페, 술집들이 밀집해 있는 후문가의 물가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저렴했는데 실제로 2020년 기준으로 모 중국집은 짜장면이 2500원, 짬뽕이 3000원이라는 90년대급 물가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녀가 필자를 이끈 곳은 식당이나 주점이 아니었다. 빨간 천막이 인상적인 자그마한 커피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여자친구는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여기는 가끔 찾을 정도로 특별한 커피가 있어”라고 말했다. 그곳의 이름은 ‘엘. 에스프레소(L. ESPRESSO)’였다.

엘. 에스프레소에서 추천한 메뉴는 바로 ‘카페모카’였다. 항상 아메리카노만 먹던 필자에게 다른 커피들은 지나치게 단맛이 강해 늘 거부했었지만 그날만큼은 군말 없이 카페모카를 주문했다. 머나먼 인천 인하대까지 온 사람에게 추천할 맛이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함 때문이었다.
 

카페 ‘L. ESPRESSO’ 내부
카페 ‘L. ESPRESSO’ 내부

주문을 하고 난 뒤에 가게를 둘러보니 깔끔하면서도 대비되는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이 있는 쪽은 벽면이 시멘트 색깔로 마감되어 있었는데 거친 질감이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편 벽면은 하얀색 벽돌 타일이 자리 잡고 있었고,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바(bar) 형태의 탁자와 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전기 배선이었는데, 검은색 파이프로 마감된 전선들이 하얀색 벽면과 대비를 이뤄 묘하게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카페 ‘L. ESPRESSO’ 내부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카페 ‘L. ESPRESSO’ 내부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무엇보다 재밌는 것은 커피숍 곳곳을 채우고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었다. 사장님의 취향인 듯한 클래식한 피규어들이 벽 선반과 바 테이블 위를 장식하고 있었고 바리스타와 커피 관련된 서적들, 그라인더와 같은 ‘카페스러운’ 소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가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한 모금 마셔보니,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엘. 에스프레소’의 카페모카는 달지 않았고, 커피의 쓴맛이 적절히 밸런스를 맞춰 단맛을 싫어하는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맛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맛있는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카페모카는 ‘모카 마타리’라는 커피 품종을 재현하려는 과정에서 유래된 음료라고 한다. 이 품종은 예멘의 ‘모카’라는 지역에서 수입한 콩으로 만들었던 까닭에 카페모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커피에서 자연스러운 초콜릿 향이 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때문에 다른 원두로 이 ‘카페모카(caffè mocha)’를 만들려면 초콜릿 향을 나게 하려고 초콜릿 시럽을 넣는데, 이때 시럽이 지나치게 들어가면 너무 단맛이 강해져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카페모카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지만) 적당한 달달함을 유지하면서 커피의 쓴맛과 풍미까지 함께 느껴졌다.

이날 이후, 여자친구를 만나러 인하대에 올 때면 ‘엘. 에스프레소’에 들러 카페모카를 주문하게 됐다. 지금은 여자친구가 인하대를 졸업한 지도 수년이 흘러 더이상 그곳을 자주 찾진 못하지만, 이따금 시간을 내서 드라이브할 겸 방문하곤 한다. 어느새 아내가 된 여자친구를 옆에 태우고,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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