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메뉴가 시그니쳐? 임신 때 먹고 잊지 못해 다시 찾은 ‘겐지스’
- 에피타이저부터 메인메뉴, 후식에 이르기까지…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함’

글. 김응민 에디터 / 사진. 김지은 포토그래퍼

매월 <힐링앤라이프>에 정기적으로 게재하던 ‘응기자의 맛집 탐방기’가 지난 4월 이후로 돌연 연재 중단 상태에 빠졌다. 힐링이 계절별로 한 번씩 간행되는 ‘계간지(季刊誌)’로 바뀐 까닭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임신한 아내가 지난 4월 말에 출산하면서 초보 아빠의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임신기간 동안 태교와 출산, 분만 과정만 공부했던 탓에 막상 아기가 태어나자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곧바로 초보 엄마·아빠의 ‘실전 육아’가 시작됐다.

▲ 사진. 한양대 가을 캠퍼스 모습. @김지은 포토그래퍼
▲ 사진. 한양대 가을 캠퍼스 모습. @김지은 포토그래퍼

누군가 그랬던가. ‘부모가 되면 비로소 부모를 이해한다’고. 조리원 기간이 끝나고 생후 1달 남짓된 신생아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그 순간부터 매번 ‘고난의 연속’이었다.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 2~3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울어대는 아기를 달랬고, 분유를 먹으면 비몽사몽 중에 아기를 안아 등을 두들기며 소화를 시켰다. 거기다 아기 용품들은 왜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퇴근 후 파김치 된 몸을 이끌고 젖병을 비롯한 아기 용품들을 일일이 닦고, 빨고, 삶고, 건조하기를 반복했다.

아내 역시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끝나지 않는’ 육아와 씨름하며 필자 못지않게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아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출산하고 나서 성치 않은 몸으로 육아를 했으니 오히려 필자보다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다 보니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눈을 맞추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까르르 소리를 내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짜증내고 울면서 감정 표현도 풍부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가누기 시작해 자기가 원하는 방향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했고, 늘 누워만 있던 아기가 뒤집기와 되집기, 배밀이를 하며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생후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몇 날 며칠을 낑낑 대더니 마침내 ‘홀로 앉기’에 성공하며 본격적인 ‘사람 꼴’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를 보면서, 가을 낙엽이 다 지기 전에 아내와 함께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고생한 아내를 위한 마음도 있었지만, 양가 부모님이 근처에 계셔서 종종 아기를 맡아 주셨던 까닭에 ‘실현가능한’ 계획이기도 했다.

그렇게 성사된 토요일 한나절 가량의 시간을 두고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고 어떤 것을 볼지’에 대해 정말 깊은 고민을 했다.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그러던 중, 그동안 <힐링앤라이프>에 연재했던 곳들 중 한 곳을 다시 찾아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간 찾았던 장소들을 떠올리던 찰나에 ‘한양대 앞 ’겐지스‘가 떠올랐다.

▲ 사진. 겐지스 한양대점 내부 @김지은 포토그래퍼
▲ 사진. 겐지스 한양대점 내부 @김지은 포토그래퍼

우선, 겐지스의 음식들은 평상시에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아니었고, 맛 또한 이미 ‘맛집 탐방기’를 통해 보장된 상태였으며, 겐지스가 위치한 한양대를 거닐며 대학가의 낭만과 늦가을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지난번엔 해가 진 저녁에 방문했기에 이번에는 낮 시간에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여유 있는 식사를 하고 싶어 늦은 점심시간인 2시 무렵에 식당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찾은 겐지스는 그대로였다. 넓고 쾌적한 매장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화려한 무늬의 커튼과 벽면 곳곳에 걸려 있는 인도풍 그림들은 마치 필자가 인도에 한 식당을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사람이 많은 시간대를 피해서 온 까닭에 매장의 손님도 거의 없었다. 모처럼 아내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은 잠시 미루어둔 채,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주문부터 했다.

▲ 겐지스 '띠까 마살라' @김지은 포토그래퍼
▲ 겐지스 '띠까 마살라' @김지은 포토그래퍼

커리와 난, 인도식 볶음밥인 ‘비리야니’와 탄투리띠까(치킨)가 포함된 ‘커플 세트-C set’를 선택했고 식전에 에피타이저로 즐길 수 있는 ‘플랫브레드 미니’도 주문했다. 

얇은 난 위에 겐지스만의 특제소스와 시금치, 양파, 블루메리, 망고 등을 올린 플랫브레드는 1판을 시키면 양이 많아 늘 남기곤 했었는데, 이번에 주문한 ‘미니’는 둘이서 에피타이저로 즐기기에 ‘딱’ 알맞게 적당한 양이어서 무척 만족스러웠다.  

달짝지근한 특제소스가 뿌려진 난 위에 각종 신선한 채소들이 어우러져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맛 볼 수 없는 겐지스만의 시그니쳐 메뉴로 선정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윽고 메인 메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필자는 ‘띠까 마살라’라는 커리를 주문했는데, 화덕에서 구워 낸 양파와 피망을 넣어 만든 매콤한 토마토소스 커리였다. 여기에 토핑으로 양고기를 추가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앞서 인도식 볶음밥이라 칭한 ‘비리야니’도 나왔다. 사실 비리야니는 펀자브 또는 카슈미르 지방에서 생산되는 ‘바스마티’ 쌀에 각종 향신료와 육수를 넣고 쪄내는 쌀 요리를 지칭하지만, 편의상 볶음밥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다. 

▲ 겐지스 '새우 비리야니' @김지은 포토그래퍼
▲ 겐지스 '새우 비리야니' @김지은 포토그래퍼

필자가 주문한 비리야니는 큼지막한 새우가 들어간 ‘새우 비리야니’였는데 앞서 설명한 최상급 인도산 바스마티 쌀에 청양고추와 갖은 향신료로 맛을 더한 ‘매콤한’ 쌀 요리였다. 여태껏 많은 인도 레스토랑을 다녀봤지만, 말로만 듣던 비리야니를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탄두리띠까(치킨) 역시 두 사람이 먹기 좋게 4조각이 나왔다. 

시중에서 먹던 치킨과는 맛이 미묘하게 달라 사장님께 물어보니 “부드러운 순살 닭고기를 여러 가지 향신료와 수제 요거트로 숙성시켜 인도 전통 방식의 화덕에서 구운 바베큐라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독특한 맛도 맛이었지만, 특히나 치킨 아래 함께 나온 양상추와 곁들여 먹으니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입맛을 잡아주어 밸런스도 훌륭했다.
 

▲ 겐지스 '라씨' @김지은 포토그래퍼
▲ 겐지스 '라씨' @김지은 포토그래퍼

배불리 음식을 먹고 후식으로 인도의 대표적인 건강음료 ‘라씨’를 주문했다. 라씨(Lassi)는 필자도 지난 겐지스 방문 때 처음 접했는데 걸쭉한 요구르트에 물과 소금, 향신료 등을 섞어 거품이 생기게 만든 인도의 전통음료라고 한다. 

인도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맛이 다르며, 전통적인 라씨는 짠 맛이 강하다고 하는데 이곳 겐지스의 라씨는 달달한 맛을 보였다. 총 4가지(플레인, 블루베리, 망고, 딸기) 종류 중에서 이번에 선택한 맛은 딸기였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맛있는 후식을 즐기던 중에, 사장님이 조용히 다가와 예쁜 찻잔 2개를 테이블에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후식으로 라씨도 좋지만 쌀쌀한 날씨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며 한 번 마셔보라고 ‘서비스’를 주신 것이다. 예상치 못한 행운의 정체는 바로 인도의 국민음료인 ‘마살라 차이’였다. 

색깔은 마치 진한 다방커피와 비슷한 색을 띄고 있었지만, 막상 한 입 마셔보니 커피와 달리 전혀 쓴 맛은 없었고 부드러운 맛에 특유의 향신료 맛이 은은하게 섞여 있었다. 마침 내부가 한적해서 테이블 자리에서 벗어나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로 이동해 차를 마시니, 기분 좋은 포만감이 전신으로 뻗어 나가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겐지스 '마살라 차이' @김지은 포토그래퍼
▲ 겐지스 '마살라 차이' @김지은 포토그래퍼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만족스런 식사를 마치고, 캠퍼스를 거닐며 아내와 짧은 단풍구경을 했다. 문득 오늘 겐지스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돌이켜보니 에피타이저부터 메인메뉴, 후식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은 메뉴가 없었다. 

그제서야 필자가 오늘 왜 이곳을 다시 찾았는지 깨닫게 됐다. 겐지스의 메뉴는 단순히 ‘맛있다’를 뛰어 넘어, 음식 하나하나가 그 어느 곳에서도 접하지 못한 ‘시그니쳐’ 메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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