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베트남 쌀국수 집은 가라
분말가루·액상스프·합성조미료 ‘NO’

필자가 처음 베트남 쌀국수를 접했던 때는 2006년 겨울이었다. 수능 시험을 치르고 겨울에 쓸 용돈을 마련할 목적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던 중, 일산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에서 주방 보조를 구한다는 글을 낸 것이다. 

먹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이었지만 머릿속에는 용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기에 면접을 봤고, 합격했다. 사실 베트남 쌀국수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가게를 들어서자 형용할 수 없는 특유의 향이 났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쌀국수에 사용되는 고기 국물 육수에서 나는 향이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쌀국수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고, 다른 알바생들로부터 칠리소스를 비롯한 각종 소스로 쌀국수를 맛있게 먹는 법을 배우면서 점점 그 매력에 빠지게 됐다. 특히 진한 육수에 청양고추와 칠리소스를 적절히 섞은 얼큰한 국물은 ‘해장국’ 못지않은 시원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추억이 녹아 있는 쌀국수는, 내게 있어 요즘처럼 날이 쌀쌀해지면 꼭 생각나는 소울 푸드가 됐다. 하지만 파주로 이사오고 난 뒤에는, 괜찮은 쌀국수 집이 없어 늘 일산까지 나가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베트남 쌀국수집 '비엣남 누들 바'
베트남 쌀국수집 '비엣남 누들 바'

그런데 이게 웬일. 어느날 길을 가다 보니 집 근처에 있는 상가에 ‘비엣남 누들 바’라는 이름의 베트남 쌀국수 집이 생긴 게 아닌가. 기대반 걱정반 설렘 속에 가게를 찾았다. 

식당은 깔끔한 오픈키친 형태로 이뤄져 있었다. 4인 테이블과 일본 선술집처럼 바(bar) 형태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1인석들이 주방을 따라 배치돼 있었고, 층고가 높아 시야가 탁 트여 답답하지 않았다.

베트남 쌀국수 집에 왔으니, 당연히 쌀국수를 주문했다. 밥도 먹고픈 마음에 특제 소스로 요리한 비엣남 돼지고기 덮밥도 함께 시켰다. 음식을 주문하니 김치처럼 음식과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양파 절임이 밑반찬으로 나왔다. 

 

쌀국수를 먹을 때는 특제소스를 듬뿍 묻힌 양파절임이 필요하다.
쌀국수를 먹을 때는 특제소스를 듬뿍 묻힌 양파절임이 필요하다.

쌀국수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운 팁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양파 절임을 찍어 먹는 특제 소스 제작 비법이었다. 

베트남 쌀국수 집에 가면 꼭 있는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1:3 비율로 섞어 양파 절임이나 쌀국수의 고기를 찍어 먹는 것이다. 이렇게 먹으면 쌀국수의 느끼함도 잡아주면서, 소스의 감칠맛이 입맛을 돋워 음식 맛을 2배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이윽고 기다렸던 음식이 나왔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쌀국수는 언제나 진리이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쌀국수는 언제나 진리이다.

큰 대접에 나온 쌀국수는 한눈에 보기에도 양이 푸짐해 보였다. 놀라운 것은 그 대접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었다. 진한 고기 육수에 쌀국수 면과 숙주가 한가득 있었고 양파 슬라이스가 고기 위에 살포시 놓여 있었다. 

국물을 한 입 먹어보니, 시중에 나와 있는 쌀국수 프랜차이즈들과 확실히 달랐다. 조미료 맛이 전혀 나지 않았고, 그래서 뒷맛이 개운했다. 

건강해지는 맛이었지만 결코 맛이 없지 않았고 부담 없이 삼삼한 맛이라 국물이 계속 당겼다. 특히 국물에 함께 들어가 있던 라임 한 조각이 상큼한 맛을 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고기 육수를 잡아주고 있었다.

사장님은 “매일 한우 사골과 여덟가지의 향신료를 12시간 이상 끓여 육수를 직접 만들고 있다”며 “육수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당일 준비한 육수를 모두 소진하게 되면 마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엣남’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돼지고기 덮밥도 쌀국수에 전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돼지고기 덮밥은 신선한 야채들과 함께 특제소스가 들어가니 이또한 진미였더라.
돼지고기 덮밥은 신선한 야채들과 함께 특제소스가 들어가니 이또한 진미였더라.

돼지고기 덮밥은 큼직한 미트볼들도 일품이었지만 무엇보다 색색의 신선한 야채들이 듬뿍 올려져 있어 건강식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덮밥을 비빌 때 비엣남의 특제 소스를 넣어서 함께 먹으니 이국적인 맛이 물씬 풍겼다.

음식의 맛과 영양도 일품이었지만, 최고로 만족스러웠던 것은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이었다. 

음식의 양이 결코 적지 않았는데도 맛이 워낙 좋아 필자가 신나게 먹고 있으니, 사장님이 슬쩍 오셔서 “쌀국수 면이나 숙주가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씀해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배가 충분히 불러 고사했지만, 추운 겨울날 몸을 녹여주는 쌀국수 국물만큼이나 ‘따뜻한 인심’이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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