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스터 트롯의 시청률이 고공행진이다. 그 이유는 뭘까? 듣다보면 묘한 감상에 빠져들고, 낭만과 추억에 젖는다. 낭만이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늘 맑고 청아한 느낌으로 다가 온다. 순수하고 꾸밈없던, 때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솔직했던 젊은 날을 떠 올리게 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젊은 시절 도서관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하다가 창밖으로 첫눈이 오면 만날 애인조차 없음에도 괜히 가슴 두근거렸다. 따뜻한 봄날 불현듯 화창한 날씨에 마음이 홀려 법과대학 수업을 땡땡이치고 청량리로 달려가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싣고, 남이섬을 온종일 홀로 거닐었다. 비오는 날 갑자기 주머니를 털어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사들고 음악다방에 들어가 싸구려 커피를 마셨다. 늦은 밤 친구들과 술 먹고 들어가는 하숙집 골목길에서 괜한 서러움에 전봇대를 잡고 엉엉 울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시간이 지나 추억 속으로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늙기 시작한다. 낭만을 잃어버리면서, 마음이 먼저 늙어가는 것이다. 낭만을 상실한다는 것은 꿈보다는 현실이, 여유보다는 긴장감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저울에 현실의 무게가 점점 늘어난다. 살아가기 위해, 현실과의 타협을 위해 낭만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사전을 보면, 낭만이란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상태, 또는 그런 심리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를 뜻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낭만이란 그런 사전적인 의미로만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낭만이란 현실과 타협을 해 사라지게 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벽 앞에서 잠시 기대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낭만이고, 그 낭만을 통해 각박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추억과 낭만이란 단지 허울 좋은 놀음이 아니라, 삶의 쉼터이자 에너지원이다. 애틋한 추억이 없는 삶은 황량하고 무의미하다. 추억과 낭만을 많이 가지게 되면 인생은 풍요로워진다. 추억은 가슴 깊숙이 고인 눈물샘이다. 이따금 목울대를 타고 올라와 마음을 애타게, 온 몸을 아프게, 슬픔에 젖게 만든다.

낭만이란 건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슴에서 흘러 나오는 감정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 낭만은 우리를 흠뻑 젖게 만든다. 살면서 느끼는 벅찬 감동과 추억은 그리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냥 희석되어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 우리를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이전과 다른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다.

화창한 햇살, 신선한 공기, 청명한 하늘 속에서도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휴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일상에서 이런 풍부한 감정을 찾아내고 감동을 느끼는데 익숙해진다면, 모르긴 해도 우린 아주 낭만적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윤경 더리드(The Lead) 대표변호사 겸 아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윤경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7기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파트너 변호사 △現 공동법률사무소 더리드(The Lead) 대표 변호사 겸 아하에셋 자산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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