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우치공원관리사업소
최종욱수의사 ㅣ 대수회 동물칼럼니스트

[대한수의사회 제공 l 힐링앤라이프 편집]

▲ 갈색꼬리감기원숭이 (Brown Capuchin) @네이버 지식백과 
▲ 갈색꼬리감기원숭이 (Brown Capuchin) @네이버 지식백과 

요즘 세계 동물계의 슈퍼스타가 누군가 하면 단연 갈색꼬리감기원숭이다.

한때 돌고래, 범고래, 침팬지, 고릴라, 돼지, 쥐, 개가 그 자리를 차지했었고 최근에 라쿤(가디언즈오브더갤럭시)에서 나무늘보(주토피아)까지 이들 자리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진 여전히 챔피언이다. 참고로 이 종류의 원숭이는 우리나라에 우치동물원과 서울대공원 밖에 없다.

이렇게 희귀한 것은 그동안 사실 국내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최근에 특유의 비폭력적인 성격과 익살스런 표정을 무기로 ‘박물관은 살아있다.’ ‘캐러비안 해적’ 그리고 ‘알라딘’까지 약방의 감초처럼 안 나오는 곳이 없어 볼 때마다 신기할 정도다. 요즘 핫한 ‘너튜브’에서도 인간(특히 자유분방한 아저씨같은)과 아주 흡사한 표정으로 인해 조회 수가 엄청나니 한번 찾아보시길. 

우리 동물원에는 총 여섯 마리가 있다.

그들은 아버지인 조폭(이 이름은 인상에서 유래한 것임, 딱 보면 이유를 알게 됨)과 엄마인 조마(그의 아내라서)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수컷만 넷)로 한 식구들이다. 조폭은 예전에 다른 동물원에서 처분대상 동물이라 해서 우연히 한 마리 공짜로 얻어왔는데 워낙 인상이 험상궂어 처음엔 좀 무서웠다. 그렇다고 성격이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인상에 비해 아주 얌전했다. 나중에 무지무지 순하고 착하고 가정적이라는 걸 차츰 알아가게 되었다. 외모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귀한 교훈을 새삼 깨닫게 해준 녀석이다.

▲ 조마와 꼬삼 @대한수의사회 제공
▲ 조마와 꼬삼 @대한수의사회 제공

조마는 어느 날 조폭을 데려온 같은 동물원에서 자기들은 수의사가 없다고 비오는 날 우리에게 갑자기 데려온 병들고 초라한 암컷이었다. 그는 그 동물원을 한겨울에 탈출하여 무려 한 달 동안 인간 추격대에 쫓기며 동네와 숲을 홍길동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어느 맘씨 좋은 먹이 주는 사람에게 꽂혀 자주 그 집을 앞을 서성이다가 잠복 중인 추격대에 덜미를 잡혔다. 자유의 대가는 아마 생각보다 훨씬 혹독했던 모양이다. 다섯 손가락의 끝마디가 모두 동상에 걸려 저절로 잘려나갔고 체중도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다행히 의외로 잘 회복되어 우리 동물원에 자리 잡았다. 맡길 때부터 죽든 살리든 우리가 알아서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서로 외로워서 그런 건지 조폭과 처음부터 찰떡이었다. 처음엔 뭐지?하고 떨떠름했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하늘에서 넝쿨째 굴러온 복덩어리란 걸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조폭하고 조마는 워낙 부부애가 좋아서 매년 한 마리씩 작고 예쁜 새끼를 가졌고 조마는 혼자서 젖 먹이고 하루종일 업고 다니고 하면서 한 마리 한 마리 실패 없이 정말 잘 키워냈다. 조폭도 육아 기간에는 조마의 모든 투정을 다 받아주며 새끼 키우는 데 알게 모르게 일조했다. 새끼들은 반년이면 엄마에게서 독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낳는 족족 수컷이었다. 이것도 미스테리라면 미스테리이다. 악어는 부화할 때의 온도에 따라 모두가 수컷이나 암컷이 되기도 한다. 그런 악어도 아닌데, 왜 수컷만 낳는 걸까?
 

▲ 조폭 @대한수의사회 제공
▲ 조폭 @대한수의사회 제공

조폭은 성격이 정말 좋다. 타고난 착한 가장이다. 큰 덩치로 식구들을 말 한마디 없이도 통제하고 외부의 적이 얼씬도 못하게 한다. 새끼들의 짓궂은 장난도 거의 다 받아주고 먹이도 빼앗아 먹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 ‘나도 저런 든든한 아빠였으면.’ 하는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특이한 행동은 외부에 자기 힘을 과시할 땐 정면으로 몇 발자국 다가오다 갑자기 고개를 획 틀고 돌아갔다 다시 또 다가오는 동작이다. 결코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는다. 마치 군대의 “뒤로 돌아잇 가!”하는 제식동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놀랄 때는 얼굴이 빨개지고 이마가 뒤로 약간 넘어가면서 눈이 크게 떠진다. 이 동작도 반복이다. 보고 있으면 마치 화난 사람같이 웃겨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조마는 평상시 현모양처처럼 굴지만, 새끼만 키워놓으면 언제나 울타리 주변을 서성이며 느슨한 곳을 찾아 탈출을 꿈꾼다. 여기 와서도 몇 번 탈출했다. 그러나 식구 주변에서 완전히는 벗어나지 못하고 매번 마취제가 든 바나나를 먹고 잡혀 주었다. 탈출은 그녀에게 충만한 삶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여전사다. 매번 도망치고 잡힐 때마다 미움과 존경을 동시에 받는다. 
 

▲ 꼬일과 꼬이 @대한수의사회 제공
▲ 꼬일과 꼬이 @대한수의사회 제공

새끼 1(꼬일)은 한쪽 머리털이 높이 치켜 올라가 있고 돌멩이를 혼자 가지고 노는 걸 제일 좋아한다. 그의 주위에 늘 몇 개의 기름때 묻은 반질반질한 돌멩이들이 있다. 아마 땅속에서 끊임없이 캐내는 모양이다. 내성적이지만 멋쟁이에다가 하찮은 물건도 값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소유욕이 강하고 창조적인 이 녀석은 사람으로 치면 발명가나 사업가가 되었을 타입이다.

꼬이는 머리가 짧고 항상 아빠 곁에서 함께 놀아주며 밧줄타기의 명수이기도 하다. 밧줄타기는 원숭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진 능력이지만 녀석처럼 꼬리까지 이용하여 진짜 잘 타지는 못한다. 마치 그의 인생은 천상 곡예사로 태어난 것 같다. 새로 사육사가 그네를 매달아주면 가장 먼저 시험해보는 것도 당연히 이 녀석이다. 붙임성이 좋고 재주도 남달라서 원숭이로선 최상의 공감능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으며 아빠는 미리 이 녀석을 후계자로 찍어놓은 것도 같다. 아마도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어울릴 것이다.
 

▲ 꼬일과 꼬삼 @대한수의사회 제공
▲ 꼬일과 꼬삼 @대한수의사회 제공

꼬삼은 유난히 머리카락과 손발이 길고 표정이 풍부하다. 얘는 주로 흙과 풀을 가지고 놀며 가끔 그 부수익으로 메뚜기나 지렁이를 잡아먹기도 한다. 꼬이와 더불어 항상 아빠 주위에서 삼인방으로 불린다. 풀은 그에게 먹이이자 장식품이며 훌륭한 손노리개 감이다. 아마 풀밭이 없었다면 녀석은 우울증에 걸렸을 지도 모른다. 예술가 기질을 타고났다.

꼬사는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체구는 가장 크지만, 얼굴에 반점이 좀 많고 햇빛을 많이 못 받아서 그런지 털도 부스스하다. 조마를 제외한 다른 식구들이 들어오면 방구석으로 숨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행여 들어가면 악다구니를 쓰며 앞장서서 가장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아마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마마보이 겸 모범생이 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힘과 행동 우선주의인 원숭이 사회에서는 조금 열등생으로만 비춰질 가능성이 많다.

▲ 꼬사 @대한수의사회 제공
▲ 꼬사 @대한수의사회 제공

어쩜 그렇게 한배에서 나왔는데도 각기 생김새도 몸집도 성격도, 취미도 한결같이 다른지 참으로 인간 같은 원숭이이다. 그들은 가족 중심의 동물이라, 영화에서처럼 사람과 가깝게 지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들을 지켜보면 한 다복한 다자녀 가정의 가족사를 엿보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다섯 번째 새끼를 낳아 키우던 조마의 손등에 누가 송곳니로 문 듯한 큰 상처가 생겼고 결국 새끼를 사육사가 키우게 되는 이 가족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 생겼다. 과연 자상한 남편인 조폭이 그랬을까? 이미 장성한 자식 중에 한 녀석일까? 이들의 단란한 가정도 이대로 붕괴로 이어지는 것일까? 설마! 제발 해프닝으로 그냥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힐링앤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