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정정석 수의사

책 ‘어쩌다 보니 열혈 수의사’ 지음
대한수의사회 제공

 

어제 있었던 어떤 일을 고백하려 합니다.

목요일, 어제는 인천 치과 세미나 마지막 강의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원래 주 1회 총 4강으로 준비되었지만, 강사님의 방대한 자료와 열강의 수준 때문에 그 시간으론 내용을 모두 담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노래방도 아닌데 이례적으로 강사님께서 추가 비용 없이 1강을 급히 추가 편성해주셔서 5주차 무료 특강이 개설되었습니다. 그 귀한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경상남도에서 인천광역시까지 힘든 걸음을 해주신 강사님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 수의치과학의 권위자, 김구철 원장님의 배려와 동료애를 높이 평가하고 싶고, 수더분하고 격이 없는 자세와 세심한 명강의에 존경과 사랑을 보내고 싶습니다.

저녁 8시 수업 예정이라서 러시아워까지 예상하여 초저녁 6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했습니다. 긴 시간 운전이 피곤해도 음악을 들으며 저녁노을을 관조하고 가는 기분은 오히려 힐링이며 펀드라이빙이니 배움의 길이 그리 힘들진 않더라구요.

한탱이도 없던 손님조차 굳이 다 물리고 저는 부랴부랴 6시 35분쯤에 병원을 나섰습니다. 병원 마감은 정각 7시라 30분이라도 더 앉아 있으면서 개껌이라도 한 개 더 팔아 입에 풀칠이라도 할 텐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이른바 "이소성 헤파틱 허니아" 중증에 이환된 것이었습니다.

길이 늘 막히는 시간이라 티맵 네비게이션은 열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출발한 지 고작 10분 정도 되었을 무렵, 최초로 요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출발 전에 평소 좋아하던 ‘박보영의 토레타‘를 원샷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진땀을 구슬땀 닦듯이 훔치면서 슬쩍 네비를 보니 1시간 20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갈 길이 멀었지만 이미 떠나버렸기에 참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1개 있었던 휴게소를 무심결에 이미 지나 버렸지 뭡니까. 저는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점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마의 양측성 겨땀이었죠. 길은 그날따라 무지막지하게 막혔으니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구요. 급기야 아랫배는 묵직해지며 점점 답답함이 엄습해왔습니다.

그 와중에 고속도로가 막히니까 네비가 우회도로를 안내하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어질어질 어수선한 드라이브였습니다. 마침 차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는 김현정의 “멍”이었고 제 가슴과 방광에는 심한 멍이 들어갔고 현타가 온 나머지 멍 때림을 넘어 유체이탈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왜 이리 분위기가 다운돼 있어? 라고 묻듯이 싸구려 스피커에서는 얼씨구 지화자 흥겨운 노래가 화딱지 나게 흘러나왔습니다.

출발한 지 30분 후 7시경 저는 돌아버릴 지경에 도래하였습니다. 제 왕성한 사구체여과율(GFR) 덕택에 방광은 실컷 충만 되었고 뻘뻘 흘린 식은땀은 악취 나는 차량 에어컨 바람에 식어서 오한이 기분 나쁘게 찾아왔습니다. 이온옴료 토레타의 놀라운 흡수성 다들 잘 아시잖습니까? 다급함에 얼굴엔 핏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서 손으로 만져보니 차갑기 그지없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냉혈한이 되었다구요.

 “이거 이거 파열 되겠는걸!” 저는 불운한 먹구름의 조짐을 느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기관허탈을 능가하는 시스틱 컬렙스를 몸소 시전하는 것은 아닐까 전조를 한껏 느끼며 “TV특종, 세상에 이런 일이“에 급출연하는 찌질한 수의사를 머릿속에 그려봤습니다. 두둥! 방광파열남.

“이거 안 되겠다!” 아깝지만 과감히 버려야 내가 살겠다 싶어 저는 전전긍긍 고뇌에 빠졌습니다. 노상방뇨로 과감한 결단을 내렸는데 씽씽 달리는 도로인지라 정차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회도로로 무턱대고 빠졌다간 8시 칼같이 시작하는 수업에 늦을 것 같아서 선택장애의 두통에 풍덩 퐁당 빠졌습니다.

그러나 수업이고 뭐고 일단 살고 봐야했기에 저는 아무 곳이나 무조건 차를 멈춰야만 했습니다. 물론 제 차량 안에는 비상용 소변 기저귀가 있었습니다. 제 아이들을 위해 항시 구비해 놓은 것이라서 저의 어마무시한 urine 볼륨을 감당할 수가 없었겠지요. 덜컥 믿고 싸질렀다간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뜨거운 손가락이 될 것이 자명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혜자 상태에 이르러 저는 아연실색 망연자실 영혼광탈의 블랙홀로 점입가경 고고씽하였습니다. 그놈의 토레타가 뭐길래 이 고생을 하는지 도통 후회막심 맥심잡지도 쫙쫙 찢어버릴 기세였습니다. 오줌 참다가 죽을 것 같아!

그때 광명간 도로에서 네비는 빠지라고 주문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로 들어가자는 심산이었던 거죠. 가는 길에 휴게소는 1도 없고 고속도로를 타면 쭉쭉 달려야하기에 다 큰 어른이 졸지에 오줌싸개가 돼 버릴 것만 같아 가열찬 조급함이 밀물처럼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시간이 정말 없었습니다. 빼박, 급박, 절박, 촉박했습니다. 저 혼자만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누가 진정 이 마음을 이해한단 말입니까?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하이패스를 통과했고 매송 근처 국도로 빠져서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 직전이었는데 이때다 싶었습니다. 한적한 국도를 달리며 천금 같은 기회는 엿봤습니다. 그러나 1차로 국도는 쉽게 찬스를 내주지 않고 씽씽 내달리는 분위기였습니다. 덤프트럭이 막 뒤따라오고 도저히 차를 세울 수가 없는 스멜이었습니다. 좌절한 저는 파열 직전의 아랫배를 한 손으로 누르며 워워 릴렉스를 부탁했습니다.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처럼 라마즈 호흡법을 구사하며 요도괄약근에게 주문을 걸었습니다. 더 쪼여!

그런데 갑자기 갓길이 형성된 국도변이 나타났습니다. 이건 뭐 수치심이나 공중도덕은 개나 고양이나 줘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어떤 허름한 농장 앞 갓길에 차를 급히 세웠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저는 번개처럼 내려 펄럭이는 비닐하우스 주변에 한갓진 구석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1분만 늦었어도 사단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놈의 이온음료가 뭔지 너무도 비참했습니다. 그 시각이 7시 10분. 날은 밝아 시야가 확보되어 부끄러움은 한층 가중되었드랬죠. 그러나 그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행실이 그따구는 아닌 인간입니다. 그 점만은 진심이니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후미진 장소를 찾아 수풀 속으로 급히 들어갔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사안에 저는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마침 적당한 곳이 있어 우뚝 서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강원도 화천 GOP에서 뺑이치면서 배웠던 은폐엄폐를 여기서 써먹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인생의 다양한 경험은 이렇게 위기의 순간에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니 좌절과 고통의 시간도 언젠간 값진 기회로 빛을 발할 겁니다. 위장기만 전략을 위한 보호색만 없을 뿐이지 자연과 이미 저는 동화되어 투명망토를 걸친 것처럼 혼연일체가 되었답니다.

키를 넘는 풀숲은 너무도 안락하게 시야를 가려주었고 피톤치드 향기가 피어올라 프레쉬한 사이트를 제공했습니다. 토일렛 맛집 인정! 저의 무모한 결정에 흡족해하며 저는 거사를 치렀습니다. 나무들에게 요소요소 피가 되고 살이 될 뜨거운 수양성 요소(요소(CH4N2O) 비료를 초강력 물줄기로 분출했습니다. 이 배설의 카타르시스는 느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기분이 확실합니다. 정말 기가 막힌 쾌감으로 다가왔다니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지린 거죠! 깔끔하게 과거형으로 "지렸다"가 적확하겠네요. 세미나 가는 중에 지려버렸습니다. 
한국 근현대 산업화시대까지 동물의 배설물은 비료로 엄연히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친환경적인 선순환을 믿는 1인인지라 도덕심은 무너졌지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섭리에 충실한 대의명분이 저에겐 있었습니다. 억지 춘향이지만.

그나마 남자만이 가능한 특수한 경우일 테니 남자로 태어난 걸 그 순간 무지 땡큐베리감사했다니까요. 저는 졸지에 뜻밖의 노상방뇨남이 된 것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차나 사람이 지나는 도로가 아니었고 수풀이었기에 수풀 림자를 써서 림상방뇨였죠. 여긴 남한이니까 두음법칙을 적용하면 임상방뇨를 한 것이었습니다. 누가 임상가 아니랄까봐 임상방뇨를 시전해버리다니 참담하고 참으로 염치가 없었습니다.

 

참고 참은 용량이라 상당 기간 요소 비료 분사는 계속되었고 저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유기농 액상비료를 듬뿍 받았던 어떤 나무 한 그루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오히려 은혜를 입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해 작황은 기깔나리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톡 쏘는 암모니아 향기가 영산포 홍어의 씩 웃는 면상을 후려칠 정도로 강력했고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은 음산한 호숫가의 물안개를 능가했을 정도로 농축되어 있었으니까요. 위대한 기부는 그렇게 끝이 났고 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혹시나 모를 관음증 도촬을 경계하며 홀연히 범죄현장을 떠나갔습니다. 그렇게 요소회로는 날림으로 구현되어 친환경적인 선순환으로 완성되었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습니다.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오면서 그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듯 더 이상의 욕구가 없었습니다. 몸이 정말 가벼워지니 기분이 업(up) 되어 흘러나온 흥겨운 대중가요를 따라 부르며 혼자 신이 났습니다. 불과 몇 분 전 죽상이었던 모습을 잊어버린 한심한 깨방정이었죠. 그후 50분 간의 지루한 운전은 계속되었지만 가뿐함에 수월해서 즐거웠어요. 그때 임상방뇨를 안 했더라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보면서 피식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8시가 다 되어서 간신히 인천상공회의소에 도착하여 무사히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수업 내용은 치과의 시작이자 끝인 “발치”였습니다. 평소 모바일 상태의 치아는 잘도 뽑았지만 짱짱한 염증 치아는 감히 건들지도 못하고 먼발치서 지켜만 봤던 음치박치발치인 1인인지라 매우 중요한 강의였습니다.

수업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지만 저는 뭐 한 일도 없었는데 임상방뇨의 극심한 긴장이 풀려버렸기 때문인지 스스륵 저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강사님에게 죄송할 따름이지만 졸린 걸 어떡합니까? 1시간 반이나 달려서 찾아갔던 수업이었고 중간에 흑역사의 에피소드를 피치 못하게 남기면서까지 어렵게 참석했던 귀중한 세미나였는데 맨 앞줄에서 2시간 동안 거하게 한숨 자고 나왔습니다. 쪽잠을 자고 났더니 피곤은 쉬 가셨지만 머슥타드 허탈하더군요. 또다시 먼발치서 구경만 해야하는 발치가 될 듯하옵니다.

한번 호되게 당했기에 오는 길은 출발 전에 미리 화장실에 들려 무게를 줄였습니다. 그리곤 이번에는 안 당하겠다는 음흉한 미소를 날리며 웃픈 드라이브를 하였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더군요.

참으로 길다면 길었던 나이트메어 유리너리 대방출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 홀가분하고, 즐겁게 고백하고 나니깐 부끄러움도 줄어드네요. 사람은 죄 짓고 살면 안 되는가 봅니다. 어쩔 수 없이 공중도덕을 어기며 경범죄를 저질러야했던 사상초유의 긴박한 사태였습니다. 급성 배뇨곤란의 해결을 위해 저렴하게 미풍양속을 해친 사건임을 시인합니다. 그건 비겁한 ‘실미도’ 변명이지만 사안의 절박함 때문이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량으로 장거리 이동 전에는 과도한 이온음료, 커피 음용은 자제하는 것이 현명한 것 같습니다. 제 대환장 야외 배뇨는 운 좋게 비닐하우스를 찢었지만, 여러분들은 여의치 않으면 찔끔찔끔요실금 찌릴지도 모르니까요.

이상 "토레타의 슬픈 추억" 에피소드였습니다. 다음에 또 재밌게 만나요. 제발~^^

박혜경, 델리스파이스, 임재범, 다이나믹듀오 님이 부릅니다. # 고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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