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에서 만난 눈꽃세상
붉은 색 대신 하얀 색이 주인공인 계절
전라도가 순백의 겨울왕국이 되었다

 

선운사 도솔천
선운사 도솔천

작년 겨울에는 눈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북극발 한파로 인해 제대로 된 겨울왕국을 만났다. 겨울이란 자고로 눈이 있어야 겨울답다. 눈이 없는 겨울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뭔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마치 앙꼬없는 붕어빵처럼 뭔가 허전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이 없으면 눈이 없다고 아쉬워하고, 눈이 많이 오면 불편하다고 불평한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눈이 내리면 어린아이처럼 마냥 좋다. 교통이 조금 불편해지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좋다.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보면 마치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내심 기대하며 빨리 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작년 겨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월 초 사십구재를 지내러 가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로 내려가는 길에 잠시 들린 고창 선운사와 영광 불갑사에서 만난 풍경은 모처럼 제대로 만난 겨울의 모습이었다. 

전북 고창 선운사와 영광 불갑사의 주인은 항상 매혹한 자태를 뽐내는 붉은 동백꽃과 꽃무릇이었다. 사람들은 매년 꽃을 보기 위해 선운사와 불갑사를 찾는다. 때문에 꽃이 지고 사라져버린 후에는 다시 적막한 절간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올해는 눈이 많이 내린 덕에 전라도도 설국이 되었다. 강원도에서야 눈 내린 풍경이 흔하지만 남도 지방에서는 따뜻한 날씨 탓에 눈이 내려도 금방 녹아서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올해는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는 눈을 밟으며 눈덮인 산사를 구경할 수 있었다. 

 

고창 선운사
고창 선운사

선운사에 도착하니 공기는 차갑고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상쾌했다. 눈부신 설경은 조명을 켠 듯 산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이런 멋진 풍경을 갑자기 만난 사람들은 카메라를 켜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저마다의 추억으로 저장하고 있었다. 

선운사 입구 쪽에는 마치 커다란 바위에 소나무가 붙어있는 것처럼 눈길을 끄는 송악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도 지정이 되어 있지만 보통 관심 없이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흰눈 속에 초록빛을 머금은 송악의 풍경 역시 이번 폭설이 만들어 낸 한폭의 풍경화 같았다. 겨울의 추위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 파란 하늘과 새하얀 눈, 그리고 초록 잎을 붙잡고 있는 자연의 콜라보는 잊지 못할 2021년 겨울의 추억을 갖게 해 주었다.

 

영광 불갑사 입구
영광 불갑사 입구

영광 불갑사는 선운사만큼 유명하지 않지만 역시 꽃무릇으로 근처 관광객들에게는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굴비로 유명한 법성(法聖)포구지만 백제 시대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바로 이곳에서 최초로 절을 세우고 불교를 전래한 유서 깊은 지역이다.

그래서 절의 이름 역시 불교의 갑(으뜸, 첫째)이라는 뜻에서 불갑사(佛甲寺)라고 지었다.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꽃무릇이 이곳의 주인이었다면 지금은 하얀 눈이 주인공이다. 불교에서 아주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인 ‘찰나’라는 말처럼 눈이 녹기 전까지 잠깐 동안만의 주인공이기에 더 귀한 풍경이었다. 

흔히 겨울에는 강원도에 가야 눈 구경을 제대로 한다는 공식이 올해는 깨졌다. 저 아랫지방 제주도에도 몇 년 만의 폭설로 도로에 차를 버리고 가는 해프닝이 생길 정도로 올겨울은 전국이 겨울왕국이었다. ‘코로나 블루’로 우울했던 마음이 잠시나마 하얀 눈으로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불갑사 상사화 캐릭터
불갑사 상사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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