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힘의 미학, “진짜 원조 흑산도 홍어”에서 홍어 해체 쇼와 함께 특수 부위를 맛보다
막걸리 한잔, 여기에 제대로 된 홍어 몇 점을 곁들이면 세상 무엇이 부러울까!

 

안양중앙시장 '흑산도 홍어'
안양중앙시장 '흑산도 홍어'

제법 추운 날씨지만 몇 일전 약속한 장소에 등산복 차림을 한 3명의 남자가 모였다. 주말이다 보니 느긋하게 아침을 먹은 후, 일주일간 피로에 찌든 몸과 마음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고자 마치 히말라야를 가듯 철저한 준비를 하고 모인 것이다. 

춥다고 게으름을 피운 육체는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데도 숨이 쉽게 가빠온다. 평상시 같으면 두어 시간 코스의 가벼운 트렉킹 정도일 텐데 겨울이 묶어둔 근육들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등산로 중간 중간에 위치한 전망대는 확 트인 시야로 지친 육체들을 달랜다. 최고로 높아 봐야 얼마 되지 않는 산에서 정상이라고 하는 국기봉에 올라 기념 사진 한 장씩 담고는 다시 길을 재촉한다. 

그리 바쁜 일도 없으면서 살아온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괜한 서두름은 다들 몸에 배인 버릇인가 보다. 집에서 키우던 앵무새가 얼마전 죽어서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겠다는 친구에게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잠시 숨을 돌린다. 

산길을 걸으며 나누는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등산로는 어느새 한편의 수필이 되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미래에 대한 파란 꿈이 된다. 
 

점프! 점프! 점프! 


2021년은 이렇게 날아 보리라고 다짐해 본다. 하산 길로 접어들자 가팔랐던 등산로는 어느새 아쉬움이 되고, 그 아쉬움에 빠른 길을 제쳐두고 둘레 길을 따라 조금 더 산에 머물러 보고자 한다.

두어 시간을 산에서 보냈으니, 일주일간의 피로는 어느새 날아가고 비워진 속에서는 뭔가 넣어 주기를 바란다. 산을 타고나면 으레이 거쳐가는 보리밥 집 그리고 막걸리 한잔. 그러나 오늘은 좀 특별한 음식이 머리를 스친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에게 대접해 주고 싶은 특별한 메뉴! 바로 제대로 삭힌 홍어다. 의견을 물어보니 다들 먹을 줄은 안다고 해서 택시를 잡아 타고는 필자가 아는 가장 맛있는 홍어집으로 향한다. 

흑산도 홍어! 이 집 사장님이 홍어를 닮아 자칭 홍어 박사로 불리는 집이다. 시장에서 홍어를 가져와서 썰어주는 일반 홍어 집과는 달리 이 집은 직접 홍어를 삭힌다. 봄에 보리순을 구매하여 일년내 보관하며 정통 홍어 애탕을 서비스로 한 뚝배기씩 내어 주는 그런 집이다. 

홍어는 호불호가 분명한 음식이다. 제대로 삭혀 그 독특한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러야 제 맛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홍어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분들도 있다.

홍어는 선사시대 유적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먹어온 생선으로 우리나라 연해, 남일본 연해 그리고 동중국해에 분포하며, 한국에서는 부산, 목포, 영광, 인천 등지에 특히 많다. 수심이 깊은 곳에 살며 봄에 산란을 하는데, 산란기 전의 이른 봄 홍어를 최고로 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삭힌 홍어는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왜구의 침입이 심할 때는 흑산도 주민들을 배에 태워 나주까지 이동시켜 살게끔 했는데,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배에 싣고 온 다른 생선들은 모두 부패하였지만 홍어만 유일하게 발효되어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삭힌 홍어가 탄생한 슬픈 배경이다. 

전라도에서는 잔칫집에서 손님을 어떻게 대접 했느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어떤 홍어를 내어 놓았냐고 할 정도이며, 좀 형편이 괜찮은 집에서는 삭히지 않은 홍어를 먹었다고 한다. 

이른 봄 홍어가 맛이 최고라고 하는 의미가 이해가 된다. 최근 수온이 올라 가면서 흑산도보다 오히려 인천쪽에서 홍어 어획량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홍어는 크기에 비례하여 그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8KG이상은 되어야 이 집에서는 홍어로 인정해 준다. 

홍어 맛집으로 유명한 집이기 때문에 8KG 이상의 홍어가 잡히면 어부로부터 직접 연락이 오고, 왠만하면 다 구매해준다고 한다. 필자가 머무는 시간에도 전화를 받고는 전량 구매를 결정하는 사장님의 쿨함을 보인다.

이 집에는 수입산 홍어와 국산 홍어를 구분하여 값을 매겨 둔 메뉴판이 있는데, 수입산 홍어를 주문하면 그리 관심을 끌지 못한다. 홍어 먹을 줄 모른다고 생각하여 이야기를 붙여봐야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는 뜻이다. 

 

국산 홍어 삼합을 주문하고 앉아 이집 특제 막걸리를 주문하자 그제서야 알아보시고는 몇 마디 건넨다. 

사실 필자는 그렇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몇 번을 찾은 집이기 때문에 홍어 닮은 정효진 대표님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주변 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님들에게 홍어 강의를 하고, 그 분들을 초대하여 홍어를 직접 맛 보이는 실력자 중의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몇 해전 지인들과 왔을 때, 우연찮게 그 자리 옆에 앉은 덕분에 홍어를 부위별로 조금씩 맛을 본 기억이 있다. 먼저 이집은 홍어를 소금 양념에 찍어 입에 넣고 50번을 씹으라고 한다. 50번을 씹고는 막걸리를 한잔 머금어 같이 삼키면 홍탁의 제 맛을 느낀다고 한다. 

 

일행 중 한명이 메뉴판에 있는 1인 8만원짜리 코스 요리가 뭐냐고 질문을 한다. 괜찮으면 다음에 손님 데리고 와서 대접을 하고 싶단다. 이 집 사장님 반응이 재미 있다. 현금 10만원만 꺼내 봐. 예약금인가 의아해하며 5만원권 2장을 건네자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참 후에 넓은 둥근판과 홍어 한 마리를 들고 나타난 사장님. 홍어 아랫배 쪽 불룩한 부분의 껍질을 칼로 거침 없이 잘라내니, 진한 노란 빛깔의 홍어애가 나타난다. 

툭 잘라 몇 점을 건네는데, 아….탄성이 절로 난다! 상어는 스쿠알렌, 홍어는 애라는 데, 떠다니는 생선은 부레가 맛있고, 바닥에 사는 생선은 간, 즉 애가 맛있다고 한다. 홍어 값의 반이 ‘애’ 값이다. 

 

홍어애 한접시가 10만원이다. 부드럽게 들어와서는 달고 고소한 여운을 남긴다. 이어서 소고기 맛이 나는 부위라며 몇 점을 잘라준다. 30년 경력의 사장님이 기분 좋을 때만 잘라주는 특수부위란다. 

이를 지켜보던 포장하러 오신 손님도 옆에 앉아 5만원을 내고 몇 점을 같이 나눈다. 맛이 기막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어느새 옆 테이블도 막걸리 한통이 비어져가고 있다. 포장 음식 기다리는 동료들은 잠시 잊은 모양이다. 

 

아가미, 코, 뽈살 등등으로 이어지는 특수 부위 요리에 어느덧 홍어 한 마리 해체 쇼가 무르익어 간다. 홍어에 얽힌 사장님의 거침없는 입담이 이어진다. 각 부위별 설명과 더불어 홍어에 얽힌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히말라야 등정대가 왜 홍어를 가져 가는지 등등 끝이 없다. 

어느새 막걸리가 두어통 비어가고 잠시 머리를 돌리니, 유명 호텔 총주방장들이 친필로 남긴 칭찬 후기가 벽면 여기저기서 보인다. 전국 최고의 맛!, 너무 감사하다는 말 등 칭찬일색이다. 홍어를 처음 먹어 본 어느 외국인은 절대 먹지 말라고 적어둔 재미 있는 후기도 있다.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이 집을 감히 제대로 홍어를 파는 숨은 맛집 1호로 꼽을 수 있겠다. 언론에도 많이 노출되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있고, 진짜 마케팅이라고는 사장님 입담과 실력이 전부인 지라 아는 사람만 찾는 안양중앙시장 흑산도 홍어집, 안양시 만안구 장내로 104번지(전화:031 468 4566)에 위치해 있다. 

홍어 매니아들의 성지, 제대로 된 홍어 맛집을 찾는다면 잠시 들러 노포 집의 거칠지만 넉넉한 인심과 맛에 젖어 보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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