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우 교수의 실버 마이닝(Silver mining) 시리즈
여름방학이 어느새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신입생 환영회와 개강총회로 학기 초는 언제나 설렘과 기대가 교차합니다. 이번 주 강의를 위해 길을 나서던 중, 뜻밖의 장면에 숨이 멎었습니다. 뭐랄까요? 순간, 일주일 치 행복감이 번개처럼 단번에 완충된, ‘찌릿한’ 기분이라 할까요.
상황은 이렇습니다. 도로에는 신호등이 있는 큰 건널목과, 차량 우회전 길목에 인도와 연결된 작은 건널목이 있습니다. 작은 건널목에는 신호등이 없지요. 그래서 교통법규를 잘 아는 운전자일수록, 우회전할 때 보행자가 있는지 늘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한 어르신께서 작은 건널목에 멈춰 선 차량 운전자를 향해 45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셨습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제 눈에는 초고속 카메라의 화면처럼 느릿하지만, 모든 인과관계의 맥락이 찬찬히 포착되었습니다.
자신을 배려해 준 운전자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어르신의 미소, 그 뜻밖의 반응에 창문을 열고 고개 숙여 답례하는 운전자의 겸손함이 감동적인 시퀀스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진정 ‘선한 영향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글자 그대로 선(善)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힘입니다. 또한 평범한 사람의 작은 배려가 모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공감과 감동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훈훈한 바람을 불게 하고, 또 다른 선한 행동을 이끌어냅니다.
돌이켜보면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2010년대 후반, 특히 Z세대(Gen Z)를 중심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왜 ‘선한 영향력’에 진심일까요. 한국의 Z세대는 공정함에 민감합니다. 단순히 환경 문제를 넘어 사회적 정의, 기회의 균등, 올바름에 깊이 주목하고 의식 수준도 매우 높습니다.
저는 우리의 Z세대가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어르신들 속에서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앞서 건널목의 어르신을 통해 제가 깨달았던 올바름처럼, 영화 ‘어른 김장하’에서 후학들을 길러낸 선생님의 영향력에 감명받은 것처럼 말이죠. 이를 위해 ‘세대 통합(Intergenerational Integration)’은 사회적 아젠다로 시급히 논의되어야 합니다.

세대 통합은 세대 간 갈등을 넘어, 서로 교류하고 힘과 지혜를 모으는 협력의 과정입니다. 이런 과정이 선순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청년층과 실버 세대 간의 갈등을 완화할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는 두 가지 기회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선한 영향력’은 노년기의 제너러티비티(Generativity: 생산성) 차원에서 실버 세대에서 더욱 확산할 가능성이 큽니다.
제너러티비티란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서 제시된 개념으로, 자식이나 손주 세대를 돌보고 사회에 기여하려는 욕구와 행동을 의미합니다. 원래는 성인 중년기(7단계)의 핵심 과업으로 보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노년기(8단계)에도 확장되고 지속되는 특성으로 이해합니다.
둘째 젊은 세대 가운데 특히 Z세대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사회적 가치 지향성이 가장 높습니다. 더구나 어릴 적 부모의 맞벌이로 인해 조부모의 돌봄을 받은 경험이 많아, 실버 세대와의 정서적 유대가 깊습니다.
이는 세대 통합형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결국 사회적 가치 지향성과 조부모와의 정서적 유대감은 세대 통합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청년 세대와 실버 세대의 이음, 즉 접점이란 측면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세대 통합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이미 고령 사회에서 어르신의 경험과 암묵지가 청년 세대의 활력과 성장으로 결합할 때 사회적 시너지가 커진다는 사실은 여러 사례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모쪼록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단지 노인이 지닌 부정적 뉘앙스의 상쇄용이 아닌, 진정한 존경의 호칭이 되기를 바랍니다. Z세대가 닮고 싶은 어르신이 많아지고, ‘선한 영향력’으로 행복이 퍼져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선한 일’만큼 전염성이 강한 힘이 또 있을까요.
글. 숙명여자대학교 실버비즈니스학과 이충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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