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그래픽 속 그로테스크한 느낌 담은 로그라이크 슈팅게임
가벼운 게임성으로 광신도‧아동학대 등 무거운 사회적 주제 담아내

2021년 새해가 밝은 뒤 한 달이 지났다. 최근 한 달 동안 사회에서 가장 영향을 끼친 사건을 꼽으라면 누구나 한 아이의 이름, ‘정인이’를 떠올릴 것이다. 

입양 이후 아동학대로 억울하게 죽어간 정인이, 심지어 입양한 부모가 모두 목회자 가족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은 더욱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의 모범을 보여야할 기독교인이 그런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다는 점이 더욱 믿어지지 않는 까닭이리라.

 

게임 '아이작의 번제' @이미지=게임화면 캡처
게임 '아이작의 번제' @이미지=게임화면 캡처

이렇게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한 게임을 떠올린다. 바로 ‘아이작의 번제’(The Binding of Isaac)다. 

아이작의 번제는 미국의 게임 개발자 에드먼드 맥밀런이 진두지휘해 개발한 게임으로, 인디 게임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기자도 온라인 게임 플랫폼인 스팀을 통해 구매해 가끔 즐기는 게임 중 하나다.

아이작의 번제는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기기 아주 괜찮은 슈팅 게임이다. 아기자기한 그래픽이지만 그 속에는 꽤나 치밀한 게임성을 담아냈다.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 적절히 아이템을 먹어가면서, 적들에게 총알을 쏟아 붓는 쾌감이 썩 훌륭하다.  

난이도 조절도 적당히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잘 돼 있다. 로그라이크 형식의 게임이라, 주어진 목숨이 단 하나라는 점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물론 특정 아이템을 먹으면 목숨이 추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난이도가 미친 듯이 어렵지는 않다. 적절한 아이템발(?)과 컨트롤이 더해지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즐길 만한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의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종교와 아동학대 등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까닭이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게임의 주요 스토리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삭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구약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삭의 번제’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이삭의 번제 일화는 다음과 같다. 신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제물을 불에 태워 공양하는 제사의 일종)의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했고, 신은 마지막 순간 천사를 보내 명령을 취소함으로써, 그의 믿음을 인정한다. 

게임의 중심 스토리는 이 일화를 살짝 비틀었다.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아들 아이작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신의 계시를 듣게 된다. “너의 아이는 타락했다. 그를 구원해야 한다.” 이에 어머니는 아이작의 장난감을 빼앗고 야단친다. 신은 말한다. “너의 아이는 여전히 타락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이작을 방안에 가두고 문을 잠근다. 

신은 또다시 말했다. “너의 믿음을 아직 다 믿지 못하겠다. 산 제물을 바쳐 믿음을 증명하라. 산 제물은 네 아들 아이작이다!” 어머니는 부엌칼을 들고 아이작의 방으로 간다. 문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본 아이작은 도망칠 곳을 찾다, 방에 깔린 카펫 밑에 있던 문을 발견한다. 아이작은 문 아래로 뛰어내려 알 수 없는 지하세계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게임 '아이작의 번제' @이미지=게임화면 캡처
게임 '아이작의 번제' @이미지=게임화면 캡처

이 게임은 아이작이 도망친 지하세계를 주 무대로 진행된다. 아이작은 어머니의 학대에 지쳐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이 바로 ‘총알’이다. 이 눈물로 적들을 맞춰 지하세계 괴물을 무찌르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귀여운 그림체의 아기자기한 슈팅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먹을 때마다, 캐릭터는 점점 그로테스크하게 변해간다. 해골이 되기도 하고 얼굴에 종양이 생기거나, 상처가 나기도 한다. 심지어 주사기나 못 등이 머리나 눈에 박혀있기도 하다.

아이템도 범상찮은 것들이 많다. 줄기세포, 암, 종양, 물집, 굳은살 등 몸에서 유래된 것들부터 성경, 광배, 유황불, 역십자가, 오망성 등 천사와 악마에 관한 아이템도 있다. 심지어 먹으면 폭발하는 토사물을 발사하는 구토제(IPECAC)도 있다. 요술 버섯 등 다른 게임을 패러디한 요소들도 많다. 

그중 가장 마음 아픈 아이템은 찢어진 사진이다. 아이작은 자신의 얼굴이 찢어져 있는 가족사진을 보고 눈물 흘린다. 공격속도가 증가하는 나름 꿀 아이템이기는 하지만, 아이템을 습득한 뒤 눈물이 더 많아진 아이작을 보면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이외에도 채찍 등 먹으면 아이작의 몸에 학대의 흔적이 남는 아이템들도 게임 중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게임 속 괴물도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괴상망측해진다. 불타버리거나 어딘가가 잘린 놈들부터, 괴물이나 악마가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천사와 맞서야하기도 한다. ‘사탄’과 ‘침묵’ ‘주마등’ 등 보스도 매우 강력하지만, 그중 가장 충격적인 보스는 ‘엄마’다. 엄마를 물리쳐야 살 수 있는 아이작의 모습은, 마음을 절로 무겁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이 게임은 기독교, 그리고 아동학대를 보여주고 하는 의도가 많이 묻어난다. 특히 이 게임은 개발자 맥밀란의 개인 경험이 녹아있어 더더욱 마음 아프게 한다. 어렸을 적 맥밀란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이로 인해 육체적인 폭력을 겪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맥밀란은 종교로 인한 집안의 강압적 분위기로 갖게 된 자기혐오와 고립감, 종교에서 영감을 얻은 어두운 창의력 등을 게임에 녹였다. 아동학대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로 인해 한 아이의 세계가 얼마나 잔인하고 처참하게 무너지는지 게임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아동학대가 한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죽기 전까지 무너져갔던 정인이의 처절한 아픔을 일각이나마 느껴보고 싶다면 이 게임을 한 번 해보길 권한다. 어쩔 때는 게임이 우리에게 무거운 교훈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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