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자의 인사이트] 5. 마음의 소리가 들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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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의 인사이트] 5. 마음의 소리가 들리시나요?
  • 신용수 에디터
  • 승인 2020.12.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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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뮤지엄 : 너의 감정과 기억

여러분은 어느 감각을 다른 감각을 통해 느껴본 적 있는가. 사실 의외로 어려운 경험은 아니다.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냄새를 맡고, 조리하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면, 여러분은 다른 감각으로 미각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소리, 즉 청각의 경우에는 조금 애매하다. 물론 신경을 간지럽힌다는 ASMR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소리를 통해 보거나 촉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서울 용산구 디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사운드뮤지엄 : 너의 감정과 기억'
서울 용산구 디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사운드뮤지엄 : 너의 감정과 기억'

소리를 볼 수 있을까? 소리를 만질 수 있을까? 다른 감각을 통해 청각을 느끼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있다. 물론 소리 자체에 대한 새로운 경험도 느낄 수 있다. 서울 용산구 디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사운드 뮤지엄: 너의 감정과 기억’이다.

사실 올해는 유독 예술계에 찬바람이 불었던 한 해다.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자니 코로나19가 걱정돼 좋은 공연이나 전시가 있어도 섣불리 가지 못한 까닭이다. 

11월 8일 오전 10시경 방문한 디뮤지엄은 다행히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주고 있었다. 우선 시간 예약제를 통해 특정 시간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방지했다. 또 체온 측정, 손 소독제 구비, 직원 및 방문객 마스크 착용 의무화, 전자출입명부 작성, 비닐장갑 제공까지. 코로나 시국을 맞아 관람객의 불안감을 줄이고자 무던히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는 전시를 전시답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줬다. 과거 팀 버튼 전시회를 보러 갔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 전시회에 온 것인지 도떼기 시장에 온 것인지 헷갈렸다. 사람에 치이면서 작품을 여유있게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 예약제가 도입되고 일정 인원 이하만이 전시장에 들어설 수 있게 되면서, 전시를 여유롭게 감상할 공간이 생겼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만약 코로나19 상황이 조금 나아진 상황에서라면 한번쯤 전시회를 방문해 여유로운 관람을 해보길 추천한다.

 

로빈 미나드의 ‘Climate change(Blue)’
로빈 미나드의 ‘Climate change(Blue)’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들어섰다.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파란 빛으로 가득한 방이었다. 로빈 미나드의 ‘Climate change(Blue)’였다. 계단을 내려오자 수많은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쏟아졌다. 오롯이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방. 소리에서 푸른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색깔이 주는 감각이 소리에 미치는 영향이 몸으로 전해졌다.

다음에는 노란 커튼이 쳐져 있는 방이었다. 다비드 헬비히의 ‘House of Ear’였다. 이곳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를 통해 작가가 몇 가지 동작을 알려줬다. 귀 요가를 통해 귀를 풀어준 뒤 손가락을 귓구멍에 두들김으로서 테크노 음악을 만들어내는, 아주 간단한 동작으로 새로운 소리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번에는 크리스틴 오펜하임의 ‘Sail on Sailor’다. 끊임없이 메아리치는 청아한 노랫소리. 신비한 멜로디.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의 목소리일까. 어두운 복도, 최소화한 설치 요소, 소리만으로 바다와 파도가 가벼이 일렁이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랩212의 작품 '나의 리듬이 빛나는 음악이 되어'
랩212의 작품 '나의 리듬이 빛나는 음악이 되어'

조금 지나자, 또 다른 검은 방이 나왔다. 랩212의 작품 '나의 리듬이 빛나는 음악이 되어'다. 입구에는 빛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저 멀리 피아노 쪽에는 조명이 어렴풋이 비춰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아주 가느다란 빛의 기둥이 있었다. 철사 같은 재질로 이뤄진 이 선을 퉁기자 서로 다른 피아노의 선율이 방을 가득 채웠다. 연주를 하는 건 아닌데 연주를 하는 듯한, 고요한 공간에서 하프를 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작가 박보나가 폴리 아티스트 이창호와 협업해 제작한 ‘코타키나 블루’
작가 박보나가 폴리 아티스트 이창호와 협업해 제작한 ‘코타키나 블루’

이번에는 네모난 기둥이 튀어나온 하얀 벽으로 이뤄진 공간이다. 박보나가 폴리 아티스트 이창호와 협업해 제작한 ‘코타키나 블루’였다. 하얀 기둥 전면에는 스피커 구멍이 있었는데, 이곳에 귀를 기울이면 마치 ASMR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작가 박보나가 폴리 아티스트 이창호와 협업해 제작한 ‘코타키나 블루’
작가 박보나가 폴리 아티스트 이창호와 협업해 제작한 ‘코타키나 블루’

차이라면 어떤 물건인지 모른 채 소리만 오롯이 듣는다는 것. 기둥 뒤로 가면 실제로 어떤 소리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 기둥의 경우 가볍게 치는 파도소리가 들렸는데 현실은 빨래하는 소리였다. 유쾌한 상상의 파괴다.

 

도론 사제의 ‘The Sound of Light in a Silent Room’
도론 사제의 ‘The Sound of Light in a Silent Room’

이번에는 도론 사제의 ‘The Sound of Light in a Silent Room’를 만날 차례였다. 흡음재로 가득한 어두운 공간, 벽마다 한가운데 전구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박수를 치면 소리에 반응해 전구의 색상이 바뀐다. 생각보다 민감해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 격렬한 흔들림을 선사한다. 마치 공간 속 사람의 감정까지 함께 요동치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공간은 마치 무한한 공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로버트 헨케의 ‘Fragile Territories’는 거울을 활용해 레이저가 무한히 뻗어 나가는듯한 느낌을 준다. 레이저의 무질서한 패턴은 사실 소리와 동기화돼있다. 눈과 귀의 감각을 오롯이 집중하면 느낄 수 있다. 기하학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이 공간은, 눈과 소리로 수학과 공학을 체감할 수 있게 만드는 곳이었다.

 

모놈의 ‘Lost Spaces Rainforest Variations’
모놈의 ‘Lost Spaces Rainforest Variations’

이번에는 잠시 쉬어갈 차례다. 커다란 어두운 공간에 전구 하나, 그리고 평상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모놈의 ‘Lost Spaces Rainforest Variations’ 이곳에서는 자연, 숲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공간을 제대로 즐기려면 평상에 누워 눈을 감아야 한다. 소리만으로도 숲속의 풍경을 그릴 수 있고, 숲 내음을 맡을 수 있다. 심지어 이슬의 촉촉함마저도 느껴진다. 물론 실제로 있지는 않지만, 뇌는 이를 느끼고 있다. 소리가 이끌어낸 놀라운 감각이다.

사실 소리와 다른 감각, 특히 시각을 연결하는 예술적 시도는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 왔다. 이번 전시가 마련한 ‘보이는 소리 극장’에서는 오스카 피싱거, 조던 벨슨, 줄스 엥겔, 메리 엘렌 뷰트 등 오늘날 뮤직비디오의 초석이 된 ‘비주얼 뮤직’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다소 옛스러운 느낌은 있지만, 최근 ‘레트로’가 유행이라고 하지 않던가. 귀와 눈이 하나가 되는, 원초적이고 ‘클래식’한 연결의 경험을 느낄 수 있다.

 

바스크와 클루그의 ‘Breath of Light’
바스크와 클루그의 ‘Breath of Light’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시는 바스크와 클루그의 ‘Breath of Light’였다. 분홍색 방 안에 샹들리에처럼 보이는 거대한 설치물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사실 수많은 전구를 각각 매달하 놓아 샹들리에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전구들은 신기하게도 입김을 불면 마치 숨을 쉬는 듯 서서히 점멸하면서 소리를 펼쳐낸다. 마치 물감이 퍼지듯 부드럽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코로나19로 현재는 직원들만 간간히 입김을 불어넣도록 돼 있어 직접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한 가지 작품이 더 있지만, 기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작품인 ‘즐거운 인디언(Happy Hoppi)’이다. 인디언 신화와 인류의 소통을 비디오 아트와 전자 음악의 융합으로 풀어낸 작품인데, 실제로 볼 수는 없었다. 희귀 작품이라 오후 2~5시라는 한정된 시간대에만 전시실을 개방한 까닭이다. 

관람을 마친 뒤, 기자는 왜 전시의 부제가 '너의 감정과 기억'인지 알 수 있었다. 소리를 통한 다양한 감정과 경험의 공유, 소리를 통해 여러 감각이 교차하는 느낌. 그 속에서 발생하는 새롭게 느껴지는 감정 그리고 새롭게 쌓이는 경험. 소리를 통해 너는 무엇을 느끼고 있니? 그리고 어떤 기억으로 너에게 남았니? 그렇게 전시는 끊임없이 관람객에게 묻고 있었다.

전시에 대한 경험이 너무 좋아 이렇게 글로 남기지만, 전시기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아있다는 사실이 아쉽다. 전시 종료일인 12월 27일까지 약 한달 남짓 남아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크리스마스 때는 이 전시를 볼 수 있으니, 혹시나 크리스마스 때 전시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픈 독자들이 있다면 이 전시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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