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자의 전라도 전주한옥마을 여행기
태조 이성계 어진 모신 사당 경기전 ‘단풍 곳곳’…레트로 감성 물짜장집도 ‘꿀맛’

 

내 고향은 전주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도 전주다. 3살 무렵 서울에 네 식구가 올라왔지만 명절엔 고속버스를 타고 친할아버지 댁이 있는 완산구 서서학동을 향했다. 방학 때도 다르지 않았다. 2주 동안 동생과 함께 할아버지댁에 머물 때가 많았다. 

7살 무렵, 할아버지는 가끔 손자들의 손을 나란히 붙잡고 서서학동 옆 교동으로 향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길 사이사이로 크고 작은 기와집들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사당과 성당으로 손자들을 이끌고 가셨다. 그곳이 전주한옥마을과 전동성당 그리고 경기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주한옥마을과 경기전이 수년 전부터 ‘여행지로 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이미 ‘가본 곳’이라는 이미지가 뇌리에 남아 여행지를 고를 때에도 전주한옥마을은 의식적으로 배제했다. 미지의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이후 전주한옥마을을 여행차 들른 기억이 없는 이유다.

그러다가, 지난달 17일 오후 2시경 전주한옥마을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전주한옥마을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오색빛깔 한옥들은 길가를 빛나게 만들었고 과일 찹쌀떡부터 솜사탕까지 먹거리가 가득했다. 

자동차가 없어 사람들이 한가로이 다닐 만큼 여유가 넘쳤고 기와를 이고 있는 카페들이 정취를 뽐내고 있었다. 곳곳에 있는 분수와 팔각정에서도 가을의 청량함이 느껴졌다. 

카페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면 빌딩숲과 도로, 그리고 차가 보이는 서울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무 냄새나는 기와집들이 건물을 대신했다. 

어느 가족들은 삼삼오오 전동차를 운전하면서 골목길을 채웠는데 엔진 소음이 크지 않았다. 그마저도 전주한옥마을을 채우는 그림의 일부 같았다. 

한옥마을을 돌아본 이후 자연스레 경기전을 향했다. 경기전은 제1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사당이다. 경기전 나무들이 고풍스러운 기와집들과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몰 시간이라서 경기전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어진이 모셔진 사당 옆 작은 대나무숲 공간에서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여유를 느꼈다.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기분이랄까. 언제나 시계를 확인하면서 일을 해온 직업인지라, 시간이 멈춘 느낌이 들 때는 황홀했다. 분초를 다투지 않아도 되고 시간과 공간 안에서 충분한 여유를 느끼는 것은 잊을 수 없는 행복이었다. 나무 옆 돌바닥에 앉아서 사당 쪽을 오랫동안 지켜본 이유다.  

 

 

인간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과 바다 위 일출에 시선을 두는 시간이 간절하고 소중한 이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분 정도만 시선을 두고 눈을 돌린다. 자연을 오랫동안 누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을 오래 응시하고 있으면 시공간이 감싸는 느낌이 들면서 그윽한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에게는 경기전이 그랬다. 

경기전 관람을 마친 후에는 배고픔이 밀려왔다. 전주에서는 비빔밥을 먹어야 한다는데 고향이 전주인 어머니 밑에서 30년 넘게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니, 왠지 전주비빔밥이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화덕만두였다. 화덕 만두는 함께 여행하는 여자친구를 위한 맛집의 마스코트 메뉴였다. 

닭가슴치즈만두와 고기만두가 있었는데 필자는 닭가슴치즈만두를 골랐다. 여자친구는 고기만두를 선택했다. 그런데 아뿔싸, 만두 맛이 별로였다. 여자친구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맛있다’를 연발했지만 건조한 표정은 ‘無맛’을 말해주고 있었다. 죄책감이 가슴에 남았다. 여행 전에 전주한옥마을 맛집을 1시간 넘게 검색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먹어 본 사람만 안다는 그 전주 '물짜장'
먹어 본 사람만 안다는 그 전주 '물짜장'

 

두 번째 음식은 결코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수많은 음식점이 있었지만 여자친구는 앱을 통해 물짜장 집을 골랐다. 맛집 선택 실패로 자신감을 잃었던 필자는 여자친구의 뜻대로 물짜장집으로 향했다. 물짜장이란 무엇일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쟁반짜장, 간짜장은 들어봤어도 물짜장은 처음이었다. 

물짜장집에는 사람이 많았다. 첫 번째 만두집은 맛집이라고 하기에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물짜장집은 사람들이 많아 안심했다. 여자친구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갑자기 안부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시키지 않으면 너무 기다릴 것 같아 통화 도중 “짜장 하나에 물 탕수육 주세요”라고 실언을 해버렸다. 다행히 점원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물짜장이 나왔다. 물짜장 맛은 기가 막혔다. 화덕만두의 절망이 물짜장의 환희로 바뀌면서 우리는 탄성을 질러댔다. 탕수육의 바삭바삭한 식감도 예술이었다. QR 코드 명부에 방문자 지역을 보니 서울경기 지역이 많았다. 과연, 전주한옥마을 맛집다웠다. 

필자는 힐링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전주한옥마을에서 화덕만두가 아닌 물짜장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웬만하면 한옥마을 쪽보다는 경기전을 반드시 가보기를 권한다. 한옥마을에서는 가을의 충만한 감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짜장과 경기전, 두가지 만으로도 전주 여행은 가치가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고향이 전주인 사람도 “전라도 맛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자만심으로 물짜장집을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전주도, 한옥마을도, 이전의 맛과 차원이 다르다.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여 더욱 맛있다. 필자처럼 어머니 손맛에 익숙해져 전주 맛집들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평생 동안 전주한옥마을 맛집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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