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세번째 이야기
2년간의 은신생활을 일기로 풀어낸 안네 프랑크 하우스와 자화상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고흐 박물관 방문기

 

암스테르담을 떠나기 전, 잠시 남는 오후 시간을 이용해 둘러보는 안네 프랑크 하우스와 빈센트 반고흐 박물관, 밝고 재미 있는 이야기 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품은 곳에서 잠시 그들의 삶을 돌아본다.

풍차마을을 둘러보고 돌아온 암스테르담은 비행기 시간까지 잠시간의 여유를 준다. 시내길을 따라 커피숍에 앉아 잠시 여유를 부려볼까 생각하다, 암스테르담에 오면 꼭 방문해 보고 싶었던 곳을 찾아 보기로 한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프랑크 하우스와 자화상, 해바라기 등의 명작을 남긴 빈센트 반 고흐 박물관이다. 걷기와 대중교통을 적절히 이용하여 찾아본 두 곳은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단순히 어디를 가봤다 라는 것보다, 그 곳에서 역사를 배우고, 시간을 내어 그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과정은 단순한 관람 이상의 감동을 준다.

제법 쌀쌀한 날씨 속에 입장 대기 줄이 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 들어간다. 
 

안네 프랑크 박물관에서 한국어로 된 '안네의 일기'를 판매하고 있다.
안네 프랑크 박물관에서 한국어로 된 '안네의 일기'를 판매하고 있다.

‘언젠가 이 무서운 전쟁은 끝이 나겠지. 우리가 단지 유대인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정받는 날이 반드시 올 거야.’ 안네 프랑크(1944년 4월 11일)

로 시작하는 한국어 안내서를 받아 들었다. 한국어로 된 무삭제 완전판 ‘안네의 일기’도 판매를 한다. 

우리와 역사적 공통점이 있어 그런지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서 그런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여하튼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어로 된 안내서와 책자를 보면서 괜한 반가움이 든다.

안네 프랑크는 1929년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출생하였는데,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대인 탄압정책을 펼치자 유대인이었던 프랑크 일가는 네덜란드로 망명하여 암스테르담에서 자리를 잡고 그녀의 아버지 오토는 현재 박물관으로 되어 있는 이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940년 5월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하면서 나치는 이곳에서도 유대인 탄압정치를 펼치게 되고, 1942년 7월 6일 안네 프랑크 가족은 은신에 들어가게 된다. 

 

프린선흐라흐트 263번지 '안네 프랑크 박물관'
프린선흐라흐트 263번지 '안네 프랑크 박물관'

프린선흐라흐트 263번지에 위치한 회사 건물인 이곳은 안네 프랑크 가족 4명 외에, 헤르만 반 펠스와 그의 아내 아우그스트, 아들 페터와 프리츠 페퍼도 합류하여 총 8명이 별관 위층에 숨어 지낸다. 

안네 프랑크는 13세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이 곳에서의 은신 생활을 기록하기 시작하는데, 이 후 전쟁이 끝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안네의 일기를 책으로 출판하게 되면서 그녀의 은신 생활 중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이 기록된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1960년 그녀의 은신처는 박물관으로 개조 된다. 

 

안네 프랑크 박물관에 전시 중인 이동식 책장
안네 프랑크 박물관에 전시 중인 이동식 책장

지금도 전시되어 있는 이동식 책장은 당시 사용하였던 실제 책장으로 은신처인 별관으로 통하는 입구를 은폐하고 있기 위하여 특수 제작된 것이다. 또한 별관으로 통하는 마루 창문은 반투명 글라신 페이퍼로 커버 되어 있어, 앞 건물 어느 곳에서도 뒤쪽 별관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제 이곳 비밀 별관은 진짜 비밀이 되었다. 쿠글러씨는 우리 방 앞에 책장을 세워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1942년 8월 21일)

2년간을 8명이 함께 숨어 지낸 이곳은 하루 24시간을 실내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고, 별관의 커튼은 단 1인치도 열수 없는 상황 있었다. 

낮시간 동안 공장 사람들이 아래층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앉아 있어야 했으니, 답답한 공간에 갇혀 있으면서 들키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은 상당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다. 

비밀 별관에 있는 공동 거실에는 소형 라디오가 있었고, 가끔 BBC 방송에서 전해주는 전쟁 상황에 대한 뉴스를 들으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은신기간이 시작되면서 오토(아버지)와 에디트(어머니)는 딸들의 키가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를 벽에 눈금으로 표시해 두었는데, 2년간 안네는 13센티 이상을 자랐다고 한다. 한참을 뛰어놀 나이에 숨어 지내는 답답함을 일기로 풀어낸 안네는 자신의 감정을 일기에 자주 표출 하였고, 아래와 같은 내용을 보면 그 답답함을 알 수 있다. 
 

‘밖으로 나가 자전거도 타고 싶고 춤도 추고, 휘파람도 불고, 세상을 보고 싶다. 다른 아이들과 뛰놀고 싶고 내가 자유라는 것도 느끼고 싶다.’ (1943년 12월 24일)

공동 거실은 요리하고 식사도 하며 아이들은 공부하고 책도 읽는 공간인데, 은신 기간이 길어질 수록 심리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식료품이나 일반 물품들이 줄어들었고 이는 사람들을 더욱 초초하게 만들었다.

‘내일이면 버터나 마가린이 바닥날 것 같다. 오늘 점심은 으깬 감자와 절인 배추가 전부였다. 몇 년된 절인 배추가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거야!’ (1944년 3월 14일) 

같이 은신생활을 하던 두어 살 위의 페터 반펠과는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둘은 다락으로 올라가서 바깥 세상을 함께 내다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은신 생활은 지속될 수 없었고, 익명의 제보를 받은 독일 비밀경찰은 1944년 8월 4일 이곳을 급습하고 이들 모두는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를 제외한 전원은 나치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유일한 생존자 오토 프랑크는 1945년에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서 안네의 일기를 책으로 출간하게 되는데, 이때가 1947년 6월 25일이다. 안네 프랑크는 그 무섭고 힘든 은신 생활 동안 일기를 적으면서 걱정을 떨쳐내고 작가가 되고자 했던 그녀의 꿈을 차곡차곡 쌓았는데, 나치 수용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작가의 꿈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그녀의 일기 자체가 책이 되어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출간이 되어 있다.

안네프랑크 하우스를 나와 빈센트반고흐(Vincent van Gogh) 박물관으로 향한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상당한 작품을 남긴 그의 삶은 같은 공간에 있으나 다른 시대를 살았던 안네 프랑크의 삶과는 또다른 감동을 준다.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

생존을 위해 고된 삶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부터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그리고 <자화상>으로 유명한 그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비극적이고 짧은 삶을 살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의 1인이 된 그의 삶에 대해 배워본다. 

2개의 박물관을 둘러보고 호텔로 향하는 길은 암스테르담에 대한 역사 인식과 함께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참의 사춘기를 겪을 나이에 있었던 안네 프랑크의 은둔 생활에 대한 생각 그리고 고흐의 짧은 삶에 대한 생각들이 호텔로 돌아가는 길가에 흩어지고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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