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김정민 | 앙상블 안음 대표

▲ 김정민 작가 제공
▲ 김정민 작가 제공

 

‘아르헨티나에 있는 작은 도시 바친(Bachin).

멋스러운 레스토랑 창가에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창밖에는 허름하고 꾀죄죄한 청바지를 입은 한 소년이 서 있습니다. 몇 송이 장미를 손에 쥔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긴장한 눈으로 사람들을 올려다봅니다.

누군가 다가와 이 꽃을 사주길 바라면서 말이죠. 소년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탱고의 아버지 피아졸라(A.Piazzolla). 피아졸라의 조부모는 전쟁과 기근을 피해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떠난 이민자였습니다. 가난했던 그들은 작은 항구도시 보카(bocca)에 정착했고, 허드렛일 하며 힘겹게 살아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돌아갈 수 없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졌습니다.

향수가 짙어질수록 고향에서 듣던 선율을 흥얼거리고, 서로의 몸을 맞대며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애잔하면서도 열정적인 그들의 노래와 춤은 따뜻한 위로가 되어 현실의 고단한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탱고’는 시작되었습니다.

▲ 피아졸라 @김정민 작가 제공
▲ 피아졸라 @김정민 작가 제공

이민자 3세였던 어린 피아졸라와 가족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도 가난한 삶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피아졸라에게 미국은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탱고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선물해 준 반도네온을 곧잘 연주했고, 길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를 들으러 다녔지요.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간 피아졸라는 반도네온 연주자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탱고는 하층민이 즐기는 저급한 음악이란 인식이 강했기에 피아졸라가 아무리 노력해도 음악가로서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탱고가 가진 한계를 느끼며 고민에 빠진 피아졸라의 관심은 클래식 음악으로 향했고, 곧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많은 피아니스트의 스승인 나디아(Nadia Boulanger)에게 장학금을 받으며 음악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피아졸라는 나디아에게 자신이 작곡하고 있던 교향곡, 실내악, 현악 4중주 등 철저히 클래식 기법으로 만든 곡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입을 열자마자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잘 만들었어. 하지만 너의 음악에는 라벨,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힌데미트가 보일 뿐... 피아졸라는 없네?”

피아졸라는 ‘부끄러운 음악’인 탱고 연주자였던 자신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나디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피아노에 앉아 탱고를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바보야, 모르겠어? 이게 진짜 피아졸라야. 다른 음악은 다 버려도 돼!”

나디아는 음악가에게 모방이나 테크닉 보다 자신의 색과 내면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준 참 스승이었습니다. 이후 피아졸라는 지난 10년 동안 해왔던 음악을 뒤로하고,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 자신만의 탱고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탱고라는 뜻의 ‘누에보 탱고(Nuevo Tango)’. 하층민의 저급한 음악이라 취급받던 탱고는 피아졸라를 통해 비로소 예술로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 피아졸라와 나디아 @김정민 작가
 ▲ 피아졸라와 나디아 @김정민 작가

피아졸라가 바친의 레스토랑 창을 통해 바라본 소년의 이름은 파블로였습니다.

파블로는 장미를 팔다 해가 지면 구겨진 상자에 몸을 숨기고 잠을 청합니다. 길고양이가 신발을 훔쳐 가는 날에는 맨발로 다니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기념하고 즐거워하는 주현절에도(기독교 절기 중 하나) 파블로는 홀로 웅크리고 앉아 차가운 밤하늘을 바라보지요. 파블로에게 가족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늘 길에서 배회하며 아이를 돌보지 못했습니다. 파블로에겐 그 어떤 울타리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 소년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거리를 헤매던 어린 피아졸라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어린 날의 자신과 닮은 소년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홀로 슬픔과 외로움을 감당하고 있는 소년을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Chiquilin de Bachin.(바친의 소년)

그는 바친의 레스토랑에 함께 있었던 친구 페러(H. Ferrer)의 시를 노래 가사로 사용하며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어른들은 길을 헤매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음악을 통해 사회가 가져야 할 책임의 부재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야기한 것이지요. 

어른이 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언가 내 눈에 보이고, 신경 쓰인다는 것은 나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서로에게 관심과 위로를 주던 아르헨티나 이민자들은 아름다운 탱고를 만들어냈고, 스승 나디아의 관심과 격려는 탱고의 대가 피아졸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꽃을 팔던 소년 파블로를 향한 피아졸라의 관심과 사랑은 음악으로 남아 계속해서 메시지를 던집니다.

"지금 당신의 관심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Chiquilin de Bachin(바친의 소년)>

밤이면 꾀죄죄한 청바지를 입고,
먼지 묻은 얼굴을 한 천사 같은 아이가
바친의 어느 식당 근처에서 장미를 파네
달이 높이 떠 그릴 표면이 빛날 때
그 빛 속에서 그을린 빵을 먹는다

슬픔에 잠긴 하루하루 
새벽이 두려워 마지못해 깨어나고
*주현절 별이 비스듬히 매달릴 때 
세 마리 고양이들이 
신발을 훔쳐 달아났다네
왼쪽, 오른쪽 모두를.

작은 꼬마야,
네 목소리로 엮은 꽃다발을 나에게 주렴
그러면 꽃이 나의 부끄러움을 가려줄까
너의 배고픔을 이해하지 못한 나를 향해
내게 상처가 될 세 송이의 장미를 던지렴
작은 꼬마야.

석양이 질 때 배우기 위해 
작업복을 입는 소년들.
이 꼬마는 얼마나 많은 ‘0’을 
여전히 배워야만 하는 걸까.
거리에서 배회하는 엄마를 발견하지만
보고 싶지 않아 눈길을 돌린다.

매일 새벽 쓰레기 더미 속에서 
빵과 국수를 손에 쥐고 
떠나기를 갈망하며 연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현재에 머물고 있다.
 
꼬마의 내면에는 끈으로 꽁꽁 묶인 
천 살 먹은 아이가 들어있다.
마치 이상한 수수께끼처럼.

작은 꼬마야,
네 목소리로 엮은 꽃다발을 나에게 주렴
그러면 꽃이 나의 부끄러움을 가려줄까.
너의 배고픔을 이해하지 못한 나를 향해
내게 상처가 될 세 송이의 장미를 던지렴
작은 꼬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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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기독교 절기 중 하나,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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