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푸짐한 인심과 손맛이 느껴지는 곳
암 환자들도 찾아서 먹는다는 꽃물김치는 맛도 단연 최고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엄마, 아빠의 고향인 전라남도, 그곳에 가면 마치 내 고향인 듯 마음이 편해진다. 전라도의 사투리, 전라도의 밥상이 내겐 모국어 같고, 음식의 기준이었다. 특히나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이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는 최고의 밥상이었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 법성포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가 김치를 담가 서울로 오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할머니 댁에서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법성터미널까지 오면 영광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족히 한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다시 영광터미널에서 4시간을 걸려 서울에 도착하면 또 다시 시내버스로 그 많은 짐을 가지고 한 시간 넘게 걸려서 우리 집에 도착하시곤 했다.

거의 온종일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서울까지 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웃는 얼굴로 두 손 가득 무겁게 오셨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짐은 꽤 묵직했다. 그 무거운 짐을 들고 혼자 서울에 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귀하게 가지고 온 김치를 우리 가족은 오래도록 두고두고 먹었다. 내가 김치맛을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된 날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평소 밥을 한 그릇 먹던 내가, 처음으로 할머니가 만든 김치 때문에 밥 두 그릇을 먹었다. 간장게장이 아니라 김치가 밥도둑이었다. 김치가 맛있으면 밥 한 공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에게 김치는 전라도 김치가 기준이 되어버렸다. 오리가 처음 태어나서 본 사람을 엄마라고 믿는 것처럼, 내가 먹은 할머니의 김치는 나에게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에게 맛있는 김치는 할머니 김치였고, 우리 할머니 김치가 최고였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몇 년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뒤로 나는 할머니의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없었다. 할머니 손맛을 기대했던 엄마에게서는 아쉽게도 할머니의 김치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순천 선암사에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예쁜 어느 봄날,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 순천 선암사의 절밥은 할머니가 해주는 집밥처럼 내 입맛에 딱 맞았다. 템플스테이를 하러 간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절밥이 맛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런데 선암사에서 몇 번 만나 알게 된 스님이 정말 맛있는 집을 소개해주겠다며 나와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꽃물김치와팥죽’이라는 식당이었다.

푸근한 인상을 가진 주인아주머니의 투박한 손에서 만들어져 나온 음식들은 외할머니 집에서 명절 때 볼법한 밥상이었다. 마치 외할머니가 아들, 딸, 손주, 손녀들이 오랜만에 온다고 명절 때 잔뜩 차려놓은 밥상이랑 흡사했다.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크고 화려한 접시에 음식을 조금씩 담아 플레이팅을 하며 맛을 뽐내는 그런 음식이 아니었다.

작고 소박한 그릇에 담긴 음식은 마치 밑반찬 같지만, 충분히 메인 메뉴로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음식이었다. 예쁘고 더 넉넉한 접시에 담기면 그 음식 하나만으로도 돋보일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요리였다.

하지만 밥상 하나가 부족할 만큼 준비한 많은 음식은, 하나라도 더 맛보여주고 싶어 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을 담아 작은 접시에 담겨 있었다. 음식 하나하나 모두 집밥처럼 맛있었다.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요령을 부리지 않고,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만든 하지만 손맛과 정성이 더해져 맛있는 외할머니의 밥상이 생각났다. 한입 먹을 때마다 외할머니가 떠오르는 곳이었다.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그리고 이곳 사장님이 만든 꽃물김치는 순천에서 직접 재배한 홍갓(붉은갓)을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는 사장님만의 특별한 김치였다.

홍갓에서 붉은색 물이 배어 나와 핑크색 갓 물김치였다. 갓김치는 먹어봤지만, 갓 물김치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예쁜 핑크색 꽃처럼 보여서 만들어진 꽃물김치는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한 맛이어서 암 환자들도 먹을 수 있어서 인기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꽃물김치 뿐만 아니라 사장님이 만든 모든 김치는 할머니의 김치처럼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나에게 김치 순위를 정하라면 사장님의 김치가 단연 1위였다.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엄마가 만든 김치보다 맛있었다.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또한, 사장님께서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김치 나눔 봉사도 하시고, 절에는 김치 시주, 교회와 성당에도 김치 나눔 봉사를 하신다고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장님의 밥상은 말해 무엇하랴. 사람들을 따뜻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소울푸드가 바로 ‘꽃물김치와 팥죽’ 사장님의 밥상이었다.

마치 외할머니가 차려주는 것같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그런 밥상을 나는 이곳에서 찾았다. 그리워했던 할머니의 김치맛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젠 나에게 최고의 밥상을 꼽으라면 나는 순천 ‘꽃물김치와 팥죽’ 사장님의 밥상이다. 힘이 들고 지칠 때 사장님이 차려준 밥상이 그리워 나는 전라남도 순천으로 간다.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꽃물김치와 팥죽                                      @사진=박종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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