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등대에 불을 밝히고 햇살에 늘어지는 숭어 훌치기
맛있는 음식,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는 삶의 에너지로 다가온다

 

일출 속 '송이등대'
일출 속 물치항 '버섯등대'

24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무엇을 할까? 집콕하며 티브이 앞에 대충 누워 뒹굴 거리는 여유를 부려볼까, 한 권의 책을 꺼내 들고 밑줄 쫙 그어가며 꼼꼼히 마음의 양식을 쌓을까, 근처 산이라도 올라 생각을 정리해 볼까 아니면 소리부터 시원한 파란 동해 바다를 보러 갈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속초 방향에 있는 시원한 동해 바다에 대한 접근이 쉽다. 서울에서 두어 시간이면 닿는 양양 IC,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천년 고찰 낙산사와 낙산해변이 기다린다. 양양 서퍼 비치도 좋고, 물치항, 설악항, 대포항으로 이어지는 자연산 회 마니아들의 성지도 좋다. 

특히나 설악항 회센타는 선주들이 잡아온 싱싱한 횟감을 그의 아내들이 판매를 하는 곳이니, 제철의 회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동해 바다는 어디서 어떻게 봐도 시원함 자체라서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끊임 없이 밀려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시원한 파도와 어느 지점에서 봐도 푸른색이 끝없이 펼쳐지는 그래서 하늘과 바다가 어디서 갈라지는지도 모호한 수평선!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고 걷고 낚시꾼들 구경도 하다가 점심때가 훌쩍 넘어간다. 동해오면 매번 들리는 단골 음식점들도 좋지만 이번에는 명태회냉면을 먹어 보기로 한다. 

 

명태회냉면
명태회냉면

함흥냉면옥, 수요 미식회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제대로 타기는 했지만, 사실 이 집은 1951년에 개업하여 2018년에 백년가게 인증을 받은 곳으로 1980년에 국내최초로 명태회냉면을 개발한 곳이다. 전통 이북식 함흥냉면으로 함경도 현지의 맛을 재현한 명태 회무침을 새콤달콤한 양념에 비벼 먹으면 도시에서 느끼는 못하는 원조 집만의 맛이 있다. 

5,000원을 더 내면 명태회 무침을 추가할 수 있는데, 서너 명이 나눠 냉면에 더 올려도 좋다. 회냉면에 따라 나오는 육수도 그 맛이 깊고 담백하여 살짝 매운 비빔냉면과 좋은 조화를 이룬다.

잘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좀 걸을 수 있는 아바이 마을로 가보자. 행정구역으로는 청호동인 아바이 마을은 가을동화라는 드라마의 주무대가 되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하였는데, 그 후에 1박2일 등 국내 유명 티비 프로그램에 소개가 되기도 한 곳이다. 

티비에 나오지 않은 집이라는 광고 문구가 있을 정도로 많은 식당들이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다리가 잘 놓여져 있어서 자동차로도 쉽게 들어가지만, 여전히 아바이 마을로 들어가는 갯배는 많은 관광객들이 필수코스처럼 여겨 체험을 해 보는 경우가 많다. 

이 곳은 한국전쟁당시 피난을 내려온 함경도 실향민들이 금방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고향과 가까운 곳에 정책한 곳으로 아바이 마을의 아바이는 함경도 사투리로 나이 많은 남성을 뜻한다. 

 

아바이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징어, 아바이 순대
아바이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징어, 아바이 순대

과거 이곳은 오징어 등 어업을 위주로 생계를 꾸려가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관광지로 더 유명하여 함경도식 음식을 파는 식당과 해변가 카페들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 오면 필수 코스처럼 맛봐야 하는 오징어 순대, 아바이 순대 그리고 특정 몇 집에서만 명맥을 이어가는 명태 순대 등이 있고, 생선구이와 식혜, 젓갈 또한 유명하다. 

가을동화의 추억이 있는 은서네집을 지나 아바이 마을을 걸으며 저녁에 숙소에서 먹을 요량으로 오징어 순대와 아바이 순대를 포장하고, 카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쉬어 간다. 벽에 가득 붙은 각종 메모들을 읽는 재미도 좋고 잔잔한 음악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잠시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것도 좋다.

설악항 진흥호에 들러 제철 회를 포장하고 숙소로 향한다. 여전히 인심 좋은 표정의 사장님은 따님과 열심히 손님을 맞고 있다. 제철 자연산 회를 뜨고 가자미를 굽고 이것 저것 해산물들을 챙겨주는 손이 바쁘다. 바닷가에는 큼지막한 진흥호 어선이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제법 손님들이 많아서 포장을 해서 숙소로 가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주인장 입담에 바닷바람 맞으며 먹는 회가 최고의 맛이기 때문에 살짝 미련이 남는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인 한화리조트 체크인을 하고, 포장해온 음식들을 풀어 놓으니 식사용 테이블이 꽉 찬다. 자연산회에 미리 준비해온 화이트 와인으로 좀 이른 식사를 시작한다. 

작가에게 숙소는 그냥 잠시 잠을 자는 곳이라는 개념인데, 이번에는 좀 쉴 생각으로 외부 활동을 좀 줄이고, 숙소 내에서의 시간에 할애를 한다. 

싱싱한 횟감에 아바이마을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와 오징어 순대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이 취기가 오름을 느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눈을 뜨니 시계는 6시 30분을 넘어가고 있다. 창 밖을 보니 날이 맑다. 무엇을 망설이랴? 카메라 가방을 메고 평소 꼭 담고 싶었던 물치항 버섯등대로 향한다. 

처음 가보는 일출 포인트이기 때문에 주차를 하고 어디서 일출을 담을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버섯 등대위로 불을 밝혀 보기로 한다. 갈매기와 놀고 있는 꼬마 아가씨 동상에도 불을 밝혀 주고, 여행객을 따라 장난스런 포즈를 취해 보기도 한다. 

 

한껏 포즈를 취해봐도 좋은 구도이다.
한껏 포즈를 취해봐도 좋은 구도이다.

이번 일출은 장황한 소망이나 다짐 보다는 재미에 더 중점을 두고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날은 밝았고, 바닷가에 수많은 낚시꾼들이 보인다. 

젊은 친구들부터 나이가 지극하신 어르신까지 제각기 낚싯대를 드리우고 숭어를 잡고 있다. 산란을 앞둔 지금의 겨울 숭어는 최고의 가치로 인증을 받는데, 잡는 방법이 미끼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굵은 바늘로 채어 잡는 훌치기 방식이다. 숭어의 방향을 따라가기 보다는 숭어가 오는 방향에 바늘을 드리우고 기다리다가 힘껏 감아 올리는 것이다. 

물가에 나온 녀석들 중에도 제법 씨알이 굵은 놈들이 있다. 지금의 숭어는 아삭한 느낌으로 다가와 고소함으로 머물다 달콤한 맛으로 마무리되는 그런 군침 도는 맛이다. 

물치항 어부들의 바쁜 움직임을 지켜보는 사이 어느새 아침 해는 중천으로 떠오르고, 숙소로 돌아와 반신욕으로 피로를 풀어 본다. 

체크 아웃 시간에 맞춰서 객실을 나서서는 타우린 가득한 동해 섭국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잠시 바다를 바라보며 돌아갈 준비를 한다. 아쉬움이 남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것일 기약해 본다. 

에너지 충전이 필요할 때가 되면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쉼이 필요하면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시리도록 파란 바다가 그리우면 문득 이곳을 찾으리라.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이 필요하면 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그 기운 가득 안고 다시 삶의 터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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