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길고양이 잔열 남은 엔진 룸 들어가, 운행 전 두들겨 봐야
알레르기 있지만… 약 먹고 기르기로 결정, 책임감 갖고 키울 것

 

 

추운 겨울 바로 운행을 마친 차량에는 고양이가 있을 법 하다.
추운 겨울 바로 운행을 마친 차량에는 고양이가 있을 법 하다.

2020년을 돌아보면, 정말 잊지 못할 한 해였다.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마수는 제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혼자 살던 집에 새로운 여자가 둘이나 들어온 까닭이다. 한명은 2월에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 그리고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12월 우리 집을 찾아온 두 번째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12월 9일, 코로나19가 다시 한 번 기승을 부리던 시점으로, 이날은 기자도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재택근무 중이던 상황이다. 이날 점심 무렵 기자는 점심 먹기를 포기하고 한의원으로 향했다.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노트북을 안고 카페 등 다소 불편한 장소에서 기사를 쓰는 일이 많은 기자들은 으레 목과 허리에 통증을 안고 산다. 

추운 날씨에 대충 운동복과 패딩점퍼를 걸치고 집 앞 근처 한의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자는 이날 한의원을 가지 못했다. 발길을 붙잡는 애처로운 소리 때문이었다. 

‘냐아아아앙~ 냐아아아앙~~“
 

귀로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아주 조그만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 귀를 쫑긋 세워 소리의 출처를 찾아냈다. 이윽고 시선은 한 자동차로 향했다. 분명 이 차에서 나는 소리인데, 고양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추운 날씨에 고양이들은 으레 차량 엔진룸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바닥의 공간을 통해 파고들어 숨는 것이다. 운행을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엔진룸은 잔열로 한창 따끈한 상태, 햇빛도 들지 않으니 고양이들이 몸을 녹이고 잠을 청하기 딱 알맞은 장소다. 

하지만 이 상태로 차량의 시동을 다시 건다면, 고양이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된다. 자동차도 심할 경우 엔진 고장으로 수리하는 데만 수백만 원이 들게 된다. 고양이에게나 차주에게나 비극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겨울철 출발 전 보닛을 두드리거나 차 문 세게 닫기, 경적 울리기 등으로 고양이를 깨워 스스로 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우선 보닛에 손을 대고 온도를 확인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운행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차다. 새끼 고양이가 이곳에서 몸을 녹이고 있을 확률이 크다. 무례를 무릅쓰고 보닛을 몇 차례 두들겼지만, 소리만 날 뿐 고양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지나가던 고등학생 2명까지 합세했다. 

차에 적혀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씀드리고, 보닛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차주는 곧바로 나와서 흔쾌히 보닛을 열어줬다, 그러자 소리는 더욱 커졌다. 기자는 휴대전화 플래시로 고양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냐아아아아!!”

엔진 룸 아래쪽에서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조그만 새끼고양이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약 2~3개월 남짓 됐을까. 성별은 알 수 없지만 털 색깔이 노랑과 검정, 흰색의 삼색 고양이인 것으로 보아 공주님일 가능성이 크다. (유전적 특성상 삼색 고양이는 대부분 암컷이다) 당장 구하고 싶었지만 엔진이 가로막고 있어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차를 계속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이윽고 훅 튀어나와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옆 차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아이구야. 이번엔 옆 차의 휠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휠 안쪽에 있는 고양이를 살짝 만질 수는 있었지만, 빼내기가 어려웠다. 빈틈을 노린 고양이가 잽싸게 엔진 룸으로 또 들어갔다. 다시 한 번 전화를 들어 이번에는 다른 차의 차주를 불렀다.

이번에도 친절한 차주분께서 상황을 듣고 나와 보닛을 열어주셨다. 다시 한 번 안쪽에서 덜덜 떨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고양이는 울음소리와 함께 밑으로 잽싸게 튀어 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자동차 뒷바퀴 쪽에 몸을 숨겼다. 

이번에는 양동작전, 고등학생이 앞에서 시선을 끌고 내가 뒤에서 고양이를 잡는 작전이다. 고등학생은 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자 고양이가 뒤로 움직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에서 기다리던 내가 양손으로 덥석 고양이를 낚아챘다. 고양이를 구조하기 시작한지 1시간  반만의 일이다. 

고양이는 잠깐 저항하는 듯 했지만 이내 지친 채 서럽게 울기만 시작했다. 구조하는 동안 어미 고양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이도 어미 고양이가 돌보기엔 살짝 큰 나이였다. 세상 혼자였던 고양이에겐 엔진 룸이 그나마 유일한 온기였을까.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고양이를 옮겨야 했다. 우선 부랴부랴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부쩍 놀란 눈치였다. 한의원 간다던 남편이 갑자기 아기고양이를 안고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선 급한 대로 종이상자에 고양이를 뉘이고, 고등학생이 구해다 준 고양이용 통조림과 물을 줬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고양이는 한 1시간 쯤 지나자 넣어둔 밥과 물을 다 먹어치웠다. 어찌나 허겁지겁 먹었던지 온몸이 통조림 범벅이 됐다.

일련의 소동이 끝나자마자 목과 허리를 비롯한 온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여기저기 긁힌 곳도 있었다. 하지만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아내에게 잠시 맡긴 뒤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동물병원을 가야하니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고양이를 구조하는 데 시간을 좀 쓰긴 했지만 다행히 기사가 늦지는 않았다. 밥과 물을 먹은 덕분인지 고양이는 기운을 조금 차린 듯 했다. 하지만 낯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급히 인근 동물병원으로 운송해갔다. 이동장이 없어 푹신한 마트 새벽배송 가방에 고양이를 넣고 이동했다(지퍼를 살짝 열어 숨구멍을 내줬다).   

병원에서 살펴보니 다행히 몸에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오늘은 구충제를 먹이고 다음 주부터 예방주사만 맞으면 될 것 같다는 것.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종일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동장과 장난감을 비롯한 이것저것을 구매했다. 같이 구출한 고등학생도 사료와 화장실, 모래, 고양이용 샴푸 등을 지원했다.

 

고양이 임보(임시보호)는 처음이다.
고양이 임보(임시보호)는 처음이다.

하루 종일 정신없었던 하루가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우리 부부는 고양이를 임시보호하게 됐다. 우선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 고양이를 씻겼다. 원래는 하루 정도 안정을 취한 뒤 씻기려고 했지만, 통조림 범벅이 된 상태로 상자 안에 방치하면 더 안 좋을 것 같았다. 

아내가 서둘러 세면대에서 고양이를 목욕시켰다. 먼지와 때들이 물에 씻겨 나갔고, 이내 온몸을 말려주자 뽀송뽀송한 자태가 드러났다. 그 옛날 숙종도 귀여운 새끼고양이를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하던가. 숙종이 ‘냥줍’한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일은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사실 기자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 없는 상황이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까닭이다. 눈과 코, 목이 모두 간지러워지는 데다, 코와 목의 경우 부어오르기까지 한다. 

 

입양이 결정되자마자 원래 자기집인냥 아주 익숙하다.
입양이 결정되자마자 원래 자기집인냥 아주 익숙하다.

결국 우리 부부는 고양이를 거둬 기르기로 결정했다. 고양이를 키우기를 고민하는 며칠 사이, 고양이는 우리 집에 완전히 적응했고 발랄함을 한껏 뽐냈다.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마시고 대소변도 잘 가렸다. 가끔 우리 부부 앞에서 애교를 부리면서 여우짓을 하기도 했다. 귀여움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이후 기자는 내과에 방문해 알레르기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처방받으면 그런대로 버틸 만하다. 알레르기 약을 먹으면서 고양이를 키운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본인이 될 줄은 몰랐다. 앞으로도 오랜 기간 알레르기 약에 의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양이 이름은 ‘쿠키’로 지어줬다. 삼색 털이 예쁘게 어우러진 것이 꼭 마시멜로와 초코 칩이 쏙쏙 박힌 쿠키 같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말하기를 쿠키는 예상대로 ‘공주님’이 맞는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 집에 두 번째 여자, 어여쁜 고양이 딸이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2020년 나와 아내, 그리고 쿠키는 가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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