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자의 인사이트] 1. 민주주의의 맛, ‘첵스 파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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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의 인사이트] 1. 민주주의의 맛, ‘첵스 파맛’
  • 신용수 에디터
  • 승인 2020.08.1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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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투표 이벤트 조작 논란 이후 16년 만에 식탁 올라
낯선 ‘단짠’ 시리얼 출시, 민주주의 정착 과정과 닮았네

‘첵스 파맛’이 나왔다. 부정선거(?)가 치러진 지 16년 만의 일이다. 첵스 제조사인 켈로그가 백기 투항을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파가 들어간 첵스를 출시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유는 16년 전 있었던 한 이벤트 때문이다. 첵스 제조사인 켈로그는 2004년 제품 홍보를 위해 인터넷 투표 이벤트를 진행했다. ‘체키 대 차카’ 첵스왕국 대통령 선거다.

체키는 더 진한 초콜렛 맛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차카는 첵스에 파를 넣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제조사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리얼인 만큼 당연히 체키의 압승을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투표 결과 차카는 무려 4만 표 이상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4200표를 받은 체키보다 10배 가까이 득표한 압승이었다. 짓궂은 ‘어른이’들의 장난기가 발동해, 차카에게 몰표를 던진 것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초콜릿 맛 시리얼에 파를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조사는 투표 조작을 택했다. 중복 투표 등 악성 투표를 걸러낸다는 명목으로 차카의 표를 대부분 몰수하고, 롯데월드 현장투표와 ARS 투표를 급히 추가해 체키를 대통령 자리에 앉힌 것이다.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16년간 꾸준히 이의를 제기했다.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명백한 부정선거라는 것. 네티즌들은 차카를 민주화 투사로 추앙했고, 선거 이후 차카가 벌인 악행 또한 민주화 투쟁 과정으로 해석했다.

결국 16년 만에 켈로그는 첵스 파맛을 출시하면서 백기를 들었다. 광고의 주제가 또한 태진아의 ‘미안 미안해’. 사실상 부정선거를 인정하고 잘못을 사과한 셈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렵게 첵스 파맛을 맛보게 됐다.

포장지를 뜯고 그릇에 시리얼을 부었다. 첵스 파맛은 그 자태부터 ‘나는 파맛이다’라고 뽐내고 있었다. 이파리에서 볼법한 짙은 연두색 색깔에, 코를 찌르는 파 냄새까지. 완벽한 파맛 비주얼이었다. 우유에 타서 먹으면 어떤 맛이 날까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우유를 붓기 전 생으로 시리얼을 먹어봤다. 바삭하게 부서지면서 익숙한 파 맛이 났다. 이와 함께 파를 볶은 듯한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다. 채소맛 비스킷 느낌에 단맛 한 스푼을 추가한 느낌이랄까.

우유를 붓고, 한술 떠 입으로 가져갔다. 우유와 함께 ‘단짠단짠’이 온 입으로 퍼졌다. 낯선 맛이었다. 외국인이 만든 설렁탕이 이런 느낌일까. 우유의 고소함과 시리얼의 강한 맛이 살짝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운 맛이었다.

하지만 떡볶이에 넣어 먹어봤을 때는 잘 어울리는 맛이 나왔다. 튀김같이 바삭한 시리얼과 떡볶이 국물의 조화는 ‘떡볶이에 튀김’ 못지않은 조합이었다.

인터넷 상에서도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렸다. 누군가에겐 별미였지만, 누군가에겐 괴식으로 느껴졌다. 시리얼에서 느껴보기 힘들었던 익숙지 않은 맛이라 사람들의 반응도 갈렸다.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첵스 파맛은 ‘민주주의의 맛’일수도 있겠다.

오랜 기간 투쟁으로 어렵게 얻어낸 승리. 하지만 뭔가 익숙지 않은 느낌. 과거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처음 역사에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민주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일부 시민들은 왕정으로의 회귀를 꿈꾸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독재 시절이 나았다고 향수병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나라나 낯선 것을 꺼리는 것은 똑같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첵스 파맛의 맛에도 익숙해질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단짠’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짠은 이제 ‘JMT(존맛탱의 약자)’의 핵심요소 중 하나가 됐다. 그렇게 사회의 다양성은 늘어나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그랬다. 이제는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자체장을 뽑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심지어 대통령이 잘못하면 목소리를 높여 끌어내리는 것도 가능한 사회가 됐다. 과거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민주주의로 인해 이제는 일상이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첵스 파맛은 민주주의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누군가 첵스 파맛을 무슨 맛으로 먹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것은 첵스 파맛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맛이다.”

 

첵스파맛                                                                       @사진=신용수 에디터
첵스파맛                                                                       @사진=신용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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