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삭면(刀削麵)과 소고기 장육(醬肉)에 분주(汾酒) 한잔
소탈하면서 호방함을 느끼다!

중국에 가면 고급 재료로 만든 화려한 요리도 끌리지만, 서민들이 평소에 먹는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현지에 와 있다는 느낌이 확 든다. 가끔 역한 음식도 접하지만, 그럭저럭 중국 음식이 입맛에 맞는 편이다. 

이 중에서 가장 무난하고 먹기 편한 것이 ‘면 음식’ 즉 국수이다. 중국 요리는 기름기가 많아서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질리게 되고 입맛도 떨어진다. 그럴 때면 단출하게 면 음식 하나로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한다. 마치 한국에서 자장면이나 짬뽕처럼 말이다. 조금 부족할 것 같으면, 요리 한두 가지를 추가하면 된다.

중국은 면 음식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이다. 보편적으로 육수가 있는 탕면(湯麵) 종류뿐만 아니라, 볶은 면인 초면(炒麵)도 많고, 면 위에 소스를 부어 주고 이를 섞어 먹는 개요면(蓋澆麵)종류도 많다. 각각의 종류에 따른 세부 방법과 재료에 따라서 아마도 수백 가지 이상의 면 음식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면 음식하면 산서성(山西省)을 빼놓을 수 없고, 그 대표적 국수가 도삭면(刀削麵, 따오샤오미엔)이다.

도삭면은 면 만드는 방법이 독특한데, 반죽한 밀가루 덩어리를 어깨나 손 위에 올려놓고, 얇은 철판 같은 날카로운 도구를 상하로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면을 깎아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 모양이 가운데는 굵고 두툼하고 양끝은 얇다. 가운데 두툼한 부분은 약간 수제비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얇은 부분은 면의 느낌을 받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독특한 식감 때문에 도삭면을 좋아한다.

지난 주말에 대림동에 갔다가 도삭면 전문점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도삭면 하나를 주문하였다. 5~10분 정도 지나서 도삭면이 나오고, 면 위에 소고기와 더불어 고수, 파 등이 고명으로 올라왔다. 

한 젓가락을 먹어보니 면이 쫄깃쫄깃하며, 국물 맛은 구수하다가 뒷맛이 약간 맵다. 한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한 듯하다. 여기에 술이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산서성의 백주이자 중국 명주 중에 하나인 분주(汾酒, 펀지우) 작은 것을 마셔본다. 

그리고 약간의 요리를 추가하였다. 소고기 장육(醬肉)과 가지・감자・피망으로 만든 지삼선(地三鮮, 띠산시엔)을 주문하였는데, 담백한 맛의 소고기와 단맛이 도는 가지 요리가 분주에 잘 어울렸다. 

문득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작은 주점에서 한 접시의 삶은 소고기와 한 그릇의 국에 분주를 혼자서 마시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서 분주를 먹게 되면 가끔 소탈하지만 호방함을 느끼곤 한다.

▲ 수출용 자기병 분주 53%(왼쪽)와 우유빛깔 유리병 분주 48%로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분주 제품이다. 2~3년 전에는 국내에 활발히 유통되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품절된 상태임.▶ 수출용 갈색 유리병 분주 42%로 요즘 유통되는 제품. 도수를 낮추고 외형을 고급화 했음.
▲ 수출용 자기병 분주 53%(왼쪽)와 우유빛깔 유리병 분주 48%로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분주 제품이다. 2~3년 전에는 국내에 활발히 유통되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품절된 상태임.▶ 수출용 갈색 유리병 분주 42%로 요즘 유통되는 제품. 도수를 낮추고 외형을 고급화 했음.

처음 도삭면과 분주를 접한 것은 2008년 11월 즈음이다. 북경에서 일을 마치고, 3일 더 체류하면서 산서성 대동시(大同市)에 갔다. 그 전 8월에 용문석굴을 본 다음에 산서성 운강석굴(雲岡石窟)도 유명하다고 하여 대동에 간 것이었다. 기차를 타고 대동시로 갔는데, 말로만 듣던 경좌(硬座)를 이용했다.

경좌는 중국어로 ‘잉쭤’라고 하는데 ‘딱딱한 의자 좌석’을 의미한다. 중국의 객차 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으로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좌석이다. 외국인으로서 피하고 싶었지만, 다른 표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객차 사이 통로 구간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과 시끄럽게 떠들면서 군것질을 하고 바닥에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대동시에 도착하는 5시간 동안 내가 중국 현지에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그렇게 대동에 도착하였고, 그 다음날 아침에 우선 현공사(縣空寺)에 갔다. 현공사란 ‘허공에 매달린 사원’이란 의미이다. 

중국 오악(五嶽) 중의 하나인 항산(恒山) 근처의 깎아지른 절벽에 세워진 목조 건축물로, 북위의 유명한 도사인 구겸지(寇謙之, 365~448)의 유언에 의해 세워진 도교사원이다. 그런데 너무 추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연못에 얼음이 언 것이 아닌가? 그 때가 11월 13일이었다. 

현공사
현공사

이렇게 추위에 떨면서 현공사 관광을 마쳤다. 그리고 운강석굴로 가기 위해 다시 대동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왔는데, 도착시간이 점심때여서 주변의 식당에 들어갔다. 추운 날씨에 몸을 녹여줄 뜨끈뜨끈한 도삭면 한 그릇을 시켰다. 그리고 여기에 분주 한잔을 먹었는데, 여독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그 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

분주는 중국을 대표하는 술 중의 하나로, 산서성(山西省) 분양시(汾陽市) 행화촌(杏花村)에서 제조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술이다. 1952년 제1차 중국평주회에 노주노교 특국(정확히는 노주대국주), 귀주모태주, 서봉주(西鳳酒)와 더불어 명주에 선정되었고, 그 뒤 5차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노주노교 특국은 농향형, 귀주모태주는 장향형 백주인데, 분주는 청향형 백주를 대표하는 술이다. 청향형 백주는 전체 백주 중 13%를 차지하며, 분주 외에 하남성의 보풍주(寶豊酒), 호북성의 특제황학루주(特制黃鶴樓酒)가 중국명주로 유명하고, 북경지역의 이과두주(二鍋頭酒)도 많이 알려졌다.

청향형 백주는 저급한 제품일수록 코를 찌르는 에탄올 향과 입안을 폭발시키는 맛이 강하지만, 품질이 괜찮은 것은 에탄올 향도 많이 완화되고 자극적인 맛도 적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향은 농향형처럼 짙고 여러 향이 복합된 것이 아닌, 비교적 담백하고 잡향이 적다는 느낌이 든다. 자세히 맡아보면, 에탄올의 경쾌한 마취제 종류의 냄새와 더불어 사과향, 싱싱한 풀냄새, 신맛 향기가 서로 섞여서 미세하게 난다. 좋은 제품일수록 향이 맑고 옅지만 기분 좋게 만들고 청아(淸雅)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청향형 백주의 맛은 농향형보다 에탄올의 자극적인 맛이 많이 느껴지고 짠맛도 쉽게 파악되며, 쓴맛도 강하다. 그러다가 뒷맛에서 쓴맛이 완화되면서 엷은 단맛이 돌고 점점 순화되면서 개운하고 깔끔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청향형 백주의 매력이다. 농향형 백주보다 자극적인 맛과 쓴맛이 강하지만, 뒷맛에서 확실히 이것이 해소되고 개운해지기 때문에 애주가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 우란산 이과두주 정품 15년 진양 52% ▶ 홍성 이과두주 56%(왼쪽)와 홍성 이과두주 8년 진양 43%
▲ 우란산 이과두주 정품 15년 진양 52% ▶ 홍성 이과두주 56%(왼쪽)와 홍성 이과두주 8년 진양 43%

현재 국내에 정식 수입되어 유통되는 청향형 백주는 분주와 이과두주 계열이 주를 이룬다. 분주의 경우 예전에는 자기병의 53% 분주와 우유빛깔 유리병의 48% 분주가 유통되었으나 요즘에는 찾기 힘들다. 대신 도수가 낮지만 약간 고급화시킨 42%의 갈색 유리병의 분주(出口型摩登棕瓶汾酒)를 대림동 차이나타운 중국식품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은 대략 2만 5천원 내외이다.

그리고 시중의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은 ‘홍성 이과두주 8년 진양(陈酿)’이다. 일반 이과두주보다 도수를 43로 낮추었고 자극적인 맛도 완화시킨 제품이다. 우란산 이과두주 제품으로는 ‘우란산 이과두주 정품 15년 진양’이 있다. 52도이지만 쓴맛이 완화되었고 뒷맛도 깔끔하다. 가격은 1만 5천원 전후인데, 2016년에 수입된 제품이기에 1~2년정도 지나면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백주 Tip〕


청향형 백주 음용법
청향형 백주는 에탄올의 자극적 맛이 많이 느껴지고 쓴맛도 강하다. 그래서 먹기가 힘들고, 자칫 사레에 걸릴 수도 있다. 이럴때에는 한 번에 마시는 술액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한잔에 다마시지 말고 두 번이나 세 번에 나누어서 적은 양을 마시면, 자극적인 맛이 많이 완화되고 뒷맛에서 옅은 단맛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진양(陈酿)의 의미
제품명 중에 진양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경우가 있다. 예컨대 ‘우란산 이과두주 15년 진양’, ‘홍성 이과두주 8년 진양’이 이에 해당한다. 진양이란 ‘숙성(aging)’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제품들을 중국에서는 ‘연분주(年份酒)’라고 말한다. 그런데 중국 백주 시장에서 숙성 표기는 아직까지 표준이나 법규가 정비되지 않았다. 각 회사마다 내놓는 ‘○○년의 연분주란 그 맛과 품질이 자연적으로 숙성된 ○○년 백주의 수준에 도달했음’을 각자의 입장과 이해에 의해 판별하여 만든 것일 뿐이다. 따라서 연분주를 술의 자연적 저장 기간에 상응하는 제품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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