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음악의 심장이다.

박은용 성악가 | 바리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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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출강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 대구 오페라 하우스, 국립극장 등
오페라 주역 가수및 음악회에서 활동 중

 

어두운 밤 숲길을 말 한 마리가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 말 위에는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앉아있고 무엇인가 급한 듯 열심히 말을 재촉하며 달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의 뒤를 저승사자처럼 생긴 무엇인가가 따라오고 있다. 좀더 가까이 가 보았다.

 

어렴풋이 들리는 대화를 들어보니 뒤에서 따라오는 저승사자는 아이를 유혹하여 자기와 함께 가자고 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두려움에 떨고 있고, 아버지는 유혹의 손길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며 저승사자로부터 도망치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두려웠지만 혹시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좀더 가까이 가 보았더니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소름이 끼칠 정도의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과 함께 가자고 아이를 유혹을 하고 있고, 아이는 뒤를 따라오는 검은 물체와 그의 목소리가 너무 두려워 아버지의 품에 꼭 안겨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팔로 꼭 안고서 아들이 보고 듣는 것은 늙은 나무가지이며 바람소리에 불과하다고 이야기를 하며 말을 좀더 급하게 달린다.

 

이렇게 아버지는 말을 열심히 달려 저승사자를 따돌리고 무사히 집에 도착한다. 한숨 돌린 아버지는 아이를 가슴에 꼭 안고 아주 편안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아이의 축 처진 팔이 보인다.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일까요?
아니면 그림형제의 소설로 만든 영화의 한 장면일까요?
이미 눈치를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바로 독일의 대 문호 괴테의 시에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마왕(Erkönig)’을 필자의 관점에서 구성해 본 것이다.

이 가곡에는 4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필자가 표현한 내레이터, 아빠와 아이를 뒤따라오며 아이를 유혹하는 마왕, 마왕에 의해 겁에 질린 아이, 그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아버지 이렇게 4명이 등장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부르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성악가 한 사람이 가곡 마왕을 부르면서 4명의 역할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가곡은 사랑, 이별, 슬픔, 죽음 등의 감정을 표현한 시에 곡을 붙여서 하나의 내용을 다루는데 슈베르트의 마왕은 극적인 요소를 넣어서 한 사람이 4명의 등장인물을 표현하게 만든 것이다. 내레이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인 표현을 해야 하며, 마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꾀어내기 위한 달콤하면서도 무서운 표현을 해야 하며, 아이는 겁에 질려 아버지에게 도와 달라는 표현을 해야 하고, 아이를 안심시키고 급하게 집으로 가려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 가곡을 부르면서 한사람이 표현을 해야 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 곡을 부르는 성악가는 다양한 감정과 성격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불러야 한다.  

성악가가 이런 곡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와 괴테, 단테(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시인), 윤동주 등의 작품들을 읽어야 하고, 슈베르트, 베토벤, 베르디 등의 작곡자들에 대해서 작품 성향과 기법 등을 공부해야 한다. 이것이 성악가가 지녀야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그래야만 인문학을 노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만약에 인문학이 없다면 뼈대는 견고할 수 있어도 심장이 없는 음악이다.

내용은 있을지라도 감동이 없는 음악이다. 어딘가로는 가고 있지만 방향이 없는 음악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질문 중에 하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 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음악이 좋아서 한다. 중 •고등학교때 우연히 음악회에 갔는데 너무 감동을 받아서 음악을 한다. 등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성적으로는 수도권의 좋은 학교를 갈 수가 없어서 지금 성적에 음악을 하면 수도권의 좋은 대학을 갈 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음악을 했다는 이야기 이다. 이렇게 음악을 시작한 친구들이 아주아주 극소수이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래서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특히 다가오는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음악적 테크닉을 익히는데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다른 친구들 보다는 공부시간이 줄어 들어서 성적이 그들에게 조금 못 미치게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공부가 뒤처지지 않게 하겠다 라는 마음 가짐이 나중에 무대에서 인문학을 연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줄 것이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인문학이 있습니까?

쉴 틈 없는 업무에, 불안한 미래에, 하루 종일 들여다 보는 핸드폰과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바쁘게 출근하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들과 기울이는 술잔에 인문학이 있습니까?

만약에 없으셨다면, 여러분에게 괴테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마왕(Erk önig)’을 소개합니다.
들으시면서 내레이터과 되어 보시고, 마왕이 되어 보시며, 아들이 되어 보시고, 아버지가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웅 이라는 작곡가가 곡을 붙인 윤동주 시인의 편지를 독자들께서는 어떻게 감상하고 해석할지 기대하며 시를 적으며 글을 마무리 한다.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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