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이유로 착한 천사가 될 필요는 없다.]

세상을 숙제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지고 가는 사람들,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 사랑을 할 때도 애인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애인의 기쁨이 곧 자신의 기쁨이 되는 사람들, 항상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느낌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나 판단이 아닌 타인의 필요와 감정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자기 주장을 하기 보다는 언젠가 남들이 자신의 희생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으며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녀는 일명 천사로 통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그녀는 누가 어려운 일을 겪으면 발 벗고 나서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다. 누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선뜻 자기 돈을 빌려주고, 누가 외롭다고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 술친구가 되어 준다. 그런데 이런 여자를 애인으로 둔 남자는 어떨까?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과연 중요한 사람이기는 한 건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이상하게도 이런 천사들은 그들이 노력한 만큼 인정과 대우를 받지 못한다. 힘든 일은 늘 도맡아 하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주위 사람들이 모두 천사를 이용하려 드는 사악한 존재라서 일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천사들 스스로 무덤을 판다. 그들은 무의식 중에 희생을 대가로 애정을 갈구하고, 희생함으로써 상대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며, 남들이 자신을 필요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가지려는 동기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은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천사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보다는 왠지 편치 않은 감정을 느끼고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러면 언젠가 그들은 희생에서 기쁨을 얻기 보다는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 결과 만성적 공허와 우울에 빠지게 된다.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항상 희생만 할 경우 사람들은 그런 관계에 익숙해져 으레 그러려니 한다. 천사이니 힘든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의아해 하며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가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누가 너보고 하랬어? 네가 좋아서 했잖아?”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직장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있다면, 생각해 보라. 혹시 사랑의 거래로 또는 인정받는 댓가로 희생을 택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 희생은 자기를 내주는 모양이 되고 만다. 즉 자기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타인의 사랑을 얻고 인정을 받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 자신을 잃어 버리는 것이고 당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을 얻을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진심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희생이 아니라면, 내일부터 그만 해도 좋다.

여자라는 이유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Good Girl Complex)에 더 이상 허우적거려서는 안된다. 착한 여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잘하려 하거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하거나,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여자를 보면 안타깝다.

과거 우리 어머니들은 괴롭고 힘들어도 내가 조금만 희생하면 모두 편안하니 내 목소리를 줄이고, 먹고 싶은 것을 참고,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면서 살아왔다. 화병이 생기고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방치한 채 말이다. 심지어 세상은 이것을 진정한 여성상이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누군가 여자의 미덕을 이야기하고 진정한 모성을 운운하면서 자식과 남편, 가정과 사회에 대한 희생을 강요한다면, 귀를 닫아 버려라. 여자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뭐든지 잘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수퍼 맘이 될 필요는 없다.

만약 그런 이유로 상대방이 “참 못됐다”라고 말하면 칭찬으로 들어라. 그럴바에야 차라리 못된 여자가 되라. 남에게 피해나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건강한 자기애(自己愛),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그래야 많은 역할을 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당신은 남의 사랑을 꼭 받아야 할 필요도 없고, 또 그것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켜서도 안된다. 정말로 삶의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당신이 평생 알게 될 모든 사람 중에서 당신이 결코 떠나지도 잃어버리지도 않을 유일한 사람은 당신뿐이다. 착한 여자로서의 역할과 의무가 당신을 짓누르고 세상이 희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땐 차라리 남들에게 못된 여자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로 당당히 맞서라.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윤경 더리드(The Lead) 대표변호사 겸 아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윤경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7기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파트너 변호사 △現 공동법률사무소 더리드(The Lead) 대표 변호사 겸 아하에셋 자산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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